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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지역 일본인 사회의 형성과 변천(1882∼1945) = The Way Japanese Society Was Formed and Changed in Yongsan(龍山)(1882∼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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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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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3-297(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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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article examines how Japanese society was formed and changed in Yongsan before 1945, resulting in a society composed of an army, government, and the private sector.
Japanese society began to form in Yongsan in 1882. The treaty made between Korea and Japan that year designated Yanghwajin(楊花津) as an open city(開市場). Afterward, the place of open city was changed from Yanghwajin to Yongsan as a result of an agreement made in 1884 between Korea and several countries, including Japan. Despite the fact that the follow-up measures necessary to make Yongsan an open city were not taken, Japanese people had already begun to settle down there illegally. However, the Korean government did not protest this, which the Japanese viewed as implied consent. Furthermore, the Japanese government expropriated a vast amount of land in Yongsan to build a permanent military base for the Japanese government constructed railway facilities and established a Japanese commercial area. This entire area that was expropriated by the Japanese was given the name “New Yongsan”, and the area that was originally declared an open city came to be called “Old Yongsan”.
Both New Yongsan and Old Yongsan were the result of spatial reorganization. However, there is a difference between them, which should not be overlooked. In the case of Old Yongsan. which originated as an open city, the population was a mix of Koreans and Japanese. In contrast, New Yongsan, which was established through land expropriation, was comprised of only Japanese people. However, the fact that a mixed population resided in Old Yongsan did not mean that Koreans and Japanese lived next to each other, and the fact that only Japanese people settled in New Yongsan did not mean that there was homogeneity, without any discrimination, in New Yongsan. Regardless of the different circumstances, discrimination between people always seemed to arise in any colonial society beyond space and ethnicity.
이 글은 해방 이전 용산 지역 일본인 사회의 형성 및 변천의 과정을 군・관・민의 사회라는 규정 위에 공간을 중심으로 검토한 것이다.
용산 지역 일본인 사회의 단초가 마련된 것은 1882년이다. 이 해에 체결된 朝日修好條規續約에서는 양화진을 개시장으로 개방할 것을 명시한 바 있는데, 후에 조선과 각국 사이에서 양화진 대신 용산을 개시한다는 합의가 이루어진 까닭이다. 그러나 개시구역 설정과 같은 후속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음에 따라, 개시장 용산의 공간적 성격은 애매한 상태로 남게 되었다. 그럼에도 현재의 원효로 일대를 중심으로 일본인의 불법적인 거주는 시작되었고, 조선정부의 이의제기가 없음을 이유로 그것은 ‘묵허’된 것으로 간주되었다. 러일전쟁 발발 이후에는 일본군의 한반도 영구주둔을 획책한 일본정부에 의해 용산일대에서 대규모 토지수용이 이루어졌다. 이곳에는 군사기지를 비롯하여 철도 관련 시설들과 일본인 상가 등이 들어섰는데, 이를 통해 형성된 시가지를 ‘신용산’이라고 부름에 따라 기존의 시가지는 ‘구용산’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구용산과 신용산 모두 일본에 의한 식민지적 공간 재편의 결과라 고 말할 수 있으나, 양자 사이에는 간과하기 어려운 차이들도 존재했다. 개시장에 기원을 둔 구용산 지역에서는 조선인과 일본인 사이에 다양한 수준의 잡거가 이루어졌다. 반면 신용산 지역은 조선인의 강제 이주를 동반한 대규모 토지수용을 통해 건설되었던 만큼 거의 완전한 일본인 사회를 형성하였다. 그렇지만 구용산 지역의 잡거가 조선인과 일본인 간의 이웃함을 의미했던 것도 아니고, 신용산 지역의 분거가 일본인 사회 내의 균질성을 보장해 주지도 않았다. 차별과 피차별의 끝없는 연쇄만이 공간의 경계를 넘어 작동하였다.
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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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KCI등재 |
2017-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등재 |
2016-02-26 | 학술지명변경 | 외국어명 : The History of Seoul -> Seoul and History | KCI등재 |
2016-02-03 | 학술지명변경 | 한글명 : 鄕土서울 -> 서울과 역사외국어명 : The Hyangto Seoul -> The History of Seoul | KCI등재 |
2015-10-22 | 학회명변경 | 한글명 :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 서울역사편찬원영문명 : The City History Compilation Committee Of Seoul -> Seoul Historiography Institute | KCI등재 |
2013-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1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KCI등재 |
2009-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7-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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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0.27 | 0.27 | 0.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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