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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京江 지역 실태와 江民의 특성 = The Characteristic of the Han River and Gang Min(江民) in late Joseon Dynasty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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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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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paper has examined the actual life and livings conditions of residents near the Han River outside the capital city of Joseon Dynasty in its late period. The Han River in early Joseon Dynasty period played a key role as a river behind the capital city. This is why the Han River was called the ‘Gyeong Gang(京江)’ literally meaning the river of Seoul from the early stage of Joseon Dynasty.
The villages in the vicinity of Gyeong Gang were different from those of the capital city, which is within the administrative jurisdiction of Hanseongbu, or the capital city of Seoul. The officials of the administrative office were not uniformly applied or operated between the capital city and the Gyeong Gang. During the reign of King Sukjong, the organization called the Ogajaktong(五家作統) was formed to prevent the occurrence of robberies and drifting migrants and to reform the custom but did not extend its reach as far as the Gyeong Gang area. When it comes to tax collection, Hanseongbu took charge of imposing compulsory labor on villagers near the Han River while land taxes were imposed by different local authorities, such as Yangju-gun and Goyang-gun The dichotomous perception of Hanseongbu was also demonstrated by the way of naming the people of Hanseongbu, which was split into Gyeong Min(京民) and Gang Min(江民), literally meaning the people of Seoul and the people of river, respectively. They were sharply separated in terms of economic status as well with Gyeong Min being much better off than Gang Min.
In a bid to resolve the economic deprivation, these Gang Min had confrontation with each other and sometimes conflicted with local officials using governmental authority. They frequently appealed to the central government and the people of the capital city about their sufferings through various means, including Sangeon(上言), Gyeokjaeng(擊錚) and Soji(所志), which gave the central government and the people within the capital city an impression of being lawsuit seekers or whiners pursuing their own interests. Therefore, Gang Min were disregarded with contempt dubbed as the "river bums" instead of being respected as "river villagers".
본 논문은 조선후기 도성 밖 강민의 실태에 대해서 살펴본 것이다. 조선전기 한강은 도성 배후 하천으로서의 기능이 컸다. 그렇기 때문에 조선초기부터 한강은 서울의 강 즉, ‘경강’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민간에서는 경강의 주요 중심지를 근거로 삼강, 오강, 팔강 등으로 불렀다.
이러한 경강 주변 촌락은 한성부 5부의 행정체제에 있었던 도성 안과는 차이가 있었다. 경강의 촌락들은 한성부 행정체계에 포함되었지만 조선후기 여전히 ‘성중5부’, ‘경중5부’라는 표현처럼 도성 안을 강조하는 경향이 강하였다. 행정 관청의 관리도 도성 안과 경강에 균일하게 적용, 운영되지 않았다. 숙종대 오가작통 조직을 이용해 도적 및 유민방지, 풍속 교화 등을 강화했으나, 경강지역에는 시행되지 않았다. 조세수취 또한 人戶는 한성부가 맡아 강민의 坊役을 징수한 반면, 토지는 한강진 주변은 양주군에서, 용산은 고양군에서 담당했다.
조선후기 한성부 도성 안과 경강의 이분법적 인식은 한성부 민을 호칭하는 방식에서도 나타났다. 한성부 민은 京民과 江民으로 구분되었다. 이들의 경제적 처지는 경민은 다양한 경제기반으로 생활이 넉넉한 반면, 강민은 운부역에 한정된 열악한 빈민으로 파악되었다.
이러한 강민들은 자신의 경제적 침탈을 해결하기 위해 강민 간 상호 대립했으며, 공권력을 이용한 관속과 충돌하기도 하였다. 이들은 자신의 경제권이 침탈 받지 않도록 상언, 격쟁, 소지 등을 통해 억울함을 호소하였고, 이러한 행위는 중앙정부나 도성 안 사람들에게 ‘소송을 좋아하는 사람’, ‘이익만을 일삼는 모리배’라는 인식을 주었다. 따라서 강민은 도성 안 경민에게 ‘강사람’으로서의 대우를 받는 것이 아니라 ‘강가에 사는 놈’으로 천시를 당하였다.
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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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KCI등재 |
2017-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등재 |
2016-02-26 | 학술지명변경 | 외국어명 : The History of Seoul -> Seoul and History | KCI등재 |
2016-02-03 | 학술지명변경 | 한글명 : 鄕土서울 -> 서울과 역사외국어명 : The Hyangto Seoul -> The History of Seoul | KCI등재 |
2015-10-22 | 학회명변경 | 한글명 :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 서울역사편찬원영문명 : The City History Compilation Committee Of Seoul -> Seoul Historiography Institute | KCI등재 |
2013-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1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KCI등재 |
2009-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7-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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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0.27 | 0.27 | 0.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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