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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선조대 지산 조호익의 유배생활 = A Study on Jo Ho-ik's Life in Exile during the Reign of King Seonj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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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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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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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122(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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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paper presents an investigation into Jo Ho-ik's life in exile. Jo had a peculiar career involving 17 years in exile from the age of 32 to 48. The study examined how he was sent into exile and how he looked on the journey to exile in many aspects. His life in exile was investigated in terms of suffering of confinement, educational activities, and excursions to mountains.
At the age of 32 when he was living in Changwon, Jo was designated as an illegal force in the country, being hated by Choi Hwang, the governor of Gyeongsang Province, who tried to have him sort out the army list. Eventually, he received a cruel punishment of being moved to a remote region with his entire family.
Analysis of his Seojeongbu(西征賦) offers some clues to how he looked on his journey of exile from Changwon to Gangdong. He loaded all the household goods in a cart and hit the road on the back of horse, being accompanied by a groom and servant. Some of his brothers and relatives would accompany him on the journey for some distance as long as their circumstances allowed. He had to pay for all the costs to the destination.
Arriving in Gangdong-hyeon, Pyeongan Province, his exile destination, he had a temporary house allocated to him. Later he built a house at a proper location and settled down there. His life in exile was a succession of loneliness, yearning, and inconvenience. Despite all that, he managed to accept his situation relatively well and sublimate it to deepen his study as an intellectual that had cultivated his academic quality. In addition, he taught many students gathering from neighboring areas and made them into his pupils. It was a great reward for him to meet and teach such talented scholars as Lee Shi-jik and Kim Yuk.
Though he was sentenced to exile, he was allowed to live a relatively free life within the perimeters of the designated area. Since he was from a noble family with knowledge, the local chief administrators in charge of his supervision applied flexibility when dealing with him. He was even permitted a holiday once every several years to visit his hometown and made an excursion to Mt. Myohyang and Mt. Hyangpung in the vicinity.
이 논문은 조호익의 유배생활을 다룬 글이다. 조호익은 32세에서 48세까지 17년간 유배생활을 한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였다. 본고에서는 유배를 떠나게 된 경위를 살폈고, 유배길에서의 여러 모습도 아울러 살폈다. 그리고 유배지에서의 생활을 구속의 고통, 교육활동, 산수유람 등의 측면으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조호익은 창원에 거주하던 32세 때 그에게 軍籍 정리를 담당케 하려던 경상도 都事 최황의 미움을 사서 향촌의 불법적인 세력가로 지목되었다. 결국 변방지역으로 가족 모두를 이주시키는 가혹한 형벌에 처해졌다.
창원에서 강동에 이르는 유배길의 모습은 그가 쓴 「西征賦」의 분석을 통하여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다. 수레에 가재도구를 모두 싣고 말을 타고 길을 떠났다. 마부와 종자를 대동하였으며, 형제와 친척이 자신의 형편에 맞추어 일정 거리를 동행하다가 돌아가곤 하였다. 목적지까지 이르는 길에서의 모든 경비는 본인이 부담하여야 하였다.
목적지인 평안도 강동현에 도착하여서는 임시 거처를 배정받았다. 그 후 적당한 곳에 집을 짓고 정착하였다. 외로움과 그리움, 그리고 불편함의 연속이었다. 그런 가운데 그는 학문을 닦은 지식인답게 자신의 처지를 비교적 잘 수용하면서 그것을 학문을 깊이 하는 기회로 승화시켰다. 그리고 주변 지역에서 몰려드는 많은 학생들을 제자로 길러내었다. 이시직이나 김육 같은 인재를 만나 가르친 것도 큰 보람이었다.
한편 전가사변형에 처해졌다고는 하지만 해당 현의 범위를 벗어나지만 않으면 비교적 자유롭게 살 수가 있었다. 그리고 학식이 있는 사족의 신분이었기 때문에 감독 책임을 진 수령들도 대개 융통성있게 대해 주었다. 수년에 한 번 정도씩은 휴가를 받아 고향에도 다녀왔으며, 인근 지역에 소재한 묘향산과 향풍산을 유람하기도 하였다.
분석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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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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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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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0.87 | 0.87 | 0.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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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7 | 0.98 | 2.253 | 0.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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