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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기나 대 봉분과 마케도니아 왕조의 정치적 이데올로기 = The Great Tumulus of Vergina and Political Ideologies of the Macedonian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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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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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26(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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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기나는 마케도니아의 수도이자 왕가의 성소로서 고대 그리스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특히 대 봉분의 왕가 무덤들은 필리포스와 알렉산드로스부자가 통치하던 기원전 4세기 후반 급속하게 변화했던 마케도니아의 국가적 위상과 지배 계층의 사고방식을 집약적으로 반영하는 조형물로서 마케도니아자체의 문화적 전통에 대한 긍지와 고전기 그리스 문화의 계승자로서의 자부심이 혼재된 양상을 드러내고 있다. 본 논문에서는 대 봉분의 조형 양식적 특징과도상에 대한 분석을 통해서 알렉산드로스와 그 후계자들의 정치적 이데올로기와 선전 정책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한다. 알렉산드로스와 고대 마케도니아는 현재의 정치적 입지를 위해서 과거의 역사가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서, 기원전 4세기 후반 알렉산드로스의 후계자들은 이처럼 마케도니아 왕가의 장례 조형물을 활용하여 자신들의 정통성을 대외적으로 입증하고 이를 토대로 초기 헬레니즘 제국의 패권을 차지하려 하였다.
베르기나 대 봉분 내의 왕조 무덤들은 궁륭형 매장실과 신전 건축 형태의 파사드로 이루어진 소위 마케도니아 형 무덤들로서 이러한 구조 자체가 전통적인 그리스 매장 풍습과 대비되는 과시적인 성향과 개인에 대한 숭배 의식을 반영한다. 더욱이 사자 사냥의 테마를 다룬 프리즈 벽화를 비롯하여 부장품에 나타난 도상과 명문들은 마케도니아 왕조가 헤라클레스를 시조로 하는 영웅적인형통임을 강조하는 동시에 매장된 인물의 마케도니아적 정체성을 과시하려는 의도를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증거들은 필리포스와 알렉산드로스 시대에 발행된 주화 도상들의 변화와 맥을 같이하는데, 마케도니아의 전통적인 도상들 대신에 제우스/ 아테나 등과 같이 보편적인 도상들과 함께 알렉산드로스 개인의 신격화된 초상이 주화에 도입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는 기원전 4세기 후반에 와서 마케도니아가 고전기 그리스 시대까지 아테네가 누렸던 정치적 패권과 문화적 정통성을 이어받았음을 주장하는 일종의 선언이기도 하지만 또한 마케도니아의 문화적 전통이 약화되어 일반적인 ‘그리스’ 문화, 더 나아가서는 ‘헬레니즘’으로 불리는 보다 보편적인 성격의 문화권역으로 흡수되고 있음을 알리는 표지이기도 하다. 당시 필리포스와 알렉산드로스에 의해서 급속도로 성장했던 마케도니아는 알렉산드로스의 동방 원정 이후 새롭게 구축된 헬레니즘 사회 안에서 다시금 주변부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으며, 마케도니아의 문화적 전통과 정체성은 퇴색되는 결과를 낳았다.
The Great Tumulus in Vergina (ancient Aegae) is a monumental burial mound which was constructed by the Macedonian king Antigonos Gonatas around c. 270 BC. Underneath the tumulus there are four tombs which date back to the second half of the 4th century BC. The chronological gap between the inside tombs and the Great Tumulus shows that this massive artificial mound was constructed in order to conceal older state monuments at the time of great danger. The construction date of the tumulus was after the king Antigonos Gonatas was defeated by Pyrrhus, the King of Epirus in 274/3 BC and returned to Aegae, the old capital of Macedonia.
Although the capital of the Macedonian kingdom was transferred to Pella at the beginning of 4th century BC, the Macedonians maintained the tradition of burying their kings at Aegae. And the royal tombs in Vergina were of great symbolic meaning to the successors of Alexander the Great during the political turmoil of the 3rd century BC. The significance of the royal tombs in Vergina remains among modern Greeks as well, especially since the Socialist Republic of Macedonia was founded in the Balkan Peninsula. The political background of the excavation of Vergina by Manolis Andronikos in the late 20th century and the on-going arguments of ancient Macedonian history nowadays reveal that Alexander the Great and the ancient Macedonian Dynasty are still crucial factors of the legality of the Greek Nation and the ‘Greekness’, just as they were in the early Hellenistic age after the death of Alexander.
The ancient Macedonians drew elements from various contexts and combined into an original composition of architectural structure and painted decoration for their funerary monuments. Especially the themes and iconology of the painted Ionic frieze of a lion hunting scene and of other burial objects found at Tomb Ⅱ show the political culture and ideologies of the Macedonian dynasty during the second half of the 4th century BC, when the Macedonian kingdom was at its height. The royal tombs in Vergina and contemporary coinage are fine examples to show that Alexander and his successors in early Hellenistic period tried to blend general Greek icons into the traditional Macedonian standard, and by doing this, to build a new footing of an absolute monarch for the old society of inland Greece and the new society of Macedonian-occupied Mesopotamia altoge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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