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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근대 불교개혁론의 전개와 교단개혁 - 조선불교유신론을 중심으로 -
저자
서재영 (조계종 불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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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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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작성언어
Korean
주제어
KDC
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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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281-326(4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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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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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의 한국불교는 수백 년간 지속된 억불정책으로 인해 주류사회에서 밀려나 핍박과 은둔의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19세 말 개항과 더불어 국내외의 정치적 상황이 급박하게 전개되면서 불교계도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정세가 급변하면서 공고하던 유교적 통치체제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때를 같이하여 유교적 통치이념에 의해 지탱되던 억불정책의 기조도 와해되기 시작했다. 안팎에서 진행되는 이 같은 변화는 수백 년 동안 불교를 짓눌러 오던 억압구조의 해체를 가져왔다. 바로 이 때 일본불교가 곳곳에 포교소를 설립하기 시작했다. 비록 일본불교였지만 불교가 도심으로 진출하고 존경받는 일승(日僧)의 모습은 억압받아 오던 조선불교계에 충격을 던져주었다. 반면 외세를 등에 업은 천주교와 개신교의 급격한 교세신장은 불교계에 강력한 위기의식을 촉발시켰다. 이 같은 국내외 상황과 종교지형의 변화는 불교계의 자각으로 이어졌고, 그것이 체계적으로 응축되어 나타난 것이 바로 1910년대에 발표된 불교개혁론이다. 불교개혁론이 세상에 처음 등장한 것은 1912년 <조선불교월보>에 연재되기 시작한 퇴경(退耕) 권상로(權相老)의 <조선불교개혁론>이다. 퇴경은 이 논문에서 조선불교는 구습과 낡은 인식을 떨쳐버리고 변화된 시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개혁을 단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1913년 만해(萬海) 한용운(韓龍雲)은 조선불교유신론을 출판하고 혁신적인 불교개혁론을 주장했다. 만해는 이 논문에서 불교계의 침체된 상황과 승려들의 안일한 인식을 신날하게 질타하고 사람과 제도, 의례와 신앙에 이르기까지 전면적인 개혁을 부르짖었다. 그 후 10년 뒤인 1922년 범란(梵鸞) 이영재(李英宰)가 <조선일보>에 <조선불교혁신론>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세 편의 개혁론 중에서 퇴경의 개혁론은 잡지에 연재된 관계로 미완으로 끝나고 말았다. 그리고 범란의 개혁론은 비록 세밀한 개혁내용을 담고 있었지만 많은 부분에서 만해의 주장을 수용하고 있다. 따라서 세 편의 개혁론 중에서 내용의 충실성이나 논리적 완결성 등에서 만해의 개혁론이 단연 돋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게다가 조선불교유신론은 비록 1913년에 출판되었지만 내용이 탈고된 것은 1910년이므로 불교개혁에 대한 실질적인 포문을 연 것은 만해였다. 이상과 같은 불교개혁론은 오랫동안 계속된 억불로 인해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던 조선불교계를 자극하기에 충분했으며, 약 100년이 경과한 지금 개혁론을 통해 주창되었던 대부분의 내용들이 실현되었다. 따라서 이들 개혁론은 시대를 직시하고 다가올 미래를 준비한 것으로써 한국불교 근대화의 촉매제가 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나아가 불교개혁론을 통해 불교의 근대화가 진행되고, 불교가 근대화됨으로써 불교대중의 근대화를 촉진하는 계기를 마련했다고도 평가할 수 있다. 본고는 이 같은 맥락에서 불교개혁론의 등장 배경과 개혁론의 주요 골자를 살펴보고자 한다.
더보기In the late Chosun era, due to the government's anti-Buddhist policy which had lasted for hundreds of years Korean Buddhism was pushed away from mainstream society, suffering from oppression and withdrawing from the society. However, as political conditions at home and abroad developed rapidly after the government opened its ports to foreign nations, the Buddhist community took a new turn, As situations surrounding the Korean peninsula changed rapidly, the Confucian ruling system which had been maintained solidly began to falter, which in turn weakened the foundation of the anti-Buddhist policy supported by the Confucian ruling ideology. That is, changes being made at home and abroad dismantled the structure of oppression that had been directed towards Buddhism for hundreds of years. At the same time, propagation offices of Japanese Buddhism began to be established throughout Chosun Kingdom. Japanese Buddhism which was making its way into cities and Japanese Buddhist monks who got lots of respect from people were a great shock to the Chosun Buddhist community. In the meantime, the Chosun Buddhist community felt very threatened by a surge in the number of Catholic and Christian believers boosted by foreign powers. That is, changes in conditions at home and abroad and the proportion of the believers of various religions led to the realization of the Buddhist community. Such realization was expressed systematically through the reformism of Buddhism published within about a decade after 1910. The reformism of Buddhism was introduced to the world in the form of Gwon Sang-ro(權相老)'s <The reformism of Chosun Buddhism(朝鮮佛敎改革論)> which began to be published in <Monthly Bulletin of Chosun Buddhism(朝鮮佛敎月報)>. In the thesis, Toegyeong(退耕) asserted that Chosun Buddhism needed to be reformed to shed its outdated practices and perception and to meet the demand of changing society. In addition, in 1913 Han Yong-un(韓龍雲) published <The Revitalizing Reformation of Chosun Buddhism(朝鮮佛敎維新論)>, advocating the innovative reform of Buddhism. In the thesis, Manhae(萬海) harshly criticized the Buddhist community for its depressed conditions and Buddhist monks for their indolent attitudes, crying for a full scale reform reaching rituals and faiths. In 1922, about a decade later, Lee Yeong-jae(李英宰) published <The Innovation of Chosun Buddhism(朝鮮佛敎革新論)> in Chosun-Ilbo. Of the three reformisms above, Gwon Sang-ro's reformism ended incomplete because it was published in the magazine. Lee Yeong-jae's reformism accepted a large portion of Han Yong-un's assertion, though it detailed the content of reform. Therefore, it can be said that of the three reformisms, Manhae's reformism is outstanding due to its substantial content and logical completion. Besides, although Manhae's <The Revitalizing Reformation of Chosun Buddhism> was published in 1913, it was in 1910 that the work was completed. Therefore, it is not exaggerating to say that Han Yong-un actually opened the way for the reformism of Buddhism. The reformisms of Buddhism above were enough to awaken the Buddhist community mired in the feeling of being victimized due to the government's anti-Buddhism policy which had been practiced for a long time. Moreover, now, about a century after the appearance of the reformism of Buddhism, most of the things advocated through the reformisms of Buddhism have been realized. Therefore, it is evaluated that the reformisms above served as a catalyst for the modernization of Korean Buddhism by facing up to reality and preparing for the coming future. Moreover, it is also evaluated that the reformism of Buddhism led to the modernization of Buddhism which in turn promoted the modernization of overall Buddhist believers. In this regard, this study tried to examine the background of the emergence of reformism of Buddhism and the main point of the reformism based on <The Revitalizing Reformation of Chosun Buddhism(朝鮮佛敎維新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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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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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8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2-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KCI등재 |
2019-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등재 |
2016-04-29 | 학술지명변경 | 한글명 : 韓國禪學(한국선학) -> 禪學(선학) | KCI등재 |
2016-02-04 | 학회명변경 | 영문명 : Korean Seon Studies -> The Korean Society for Seon Studies | KCI등재 |
2016-02-03 | 학술지명변경 | 외국어명 : Journal of Korean Seon Studies -> Journal of Seon Studies | KCI등재 |
2016-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등재 |
2012-01-01 | 평가 | 등재 1차 FAIL (등재유지) | KCI등재 |
2009-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KCI등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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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5-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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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0.68 | 0.68 | 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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