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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농민혁명 이전 천주교와 동학의 상호 인식 = Mutual Understanding among the Believers in Donghak and Catholicism before 1894
저자
박대길 (전북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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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작성언어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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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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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87(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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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paper is to examine the mutual understanding among the believers in Donghak and Catholicism before the Donghak peasant revolution of 1894. Specially the following aspects of the two religious faith would be highlighted. How did Catholic believers understand the stern realities of those days since they embraced Catholicism voluntarily, and suffered the bitter oppression from the government, thus strengthened their religious faith? Under what background was Donghak advocated? What change had Donghak undergone since then?
It was inevitable that Joseon's established system of the yangban class was in conflict with the tenet of Catholicism, which had been accepted as a religion in the end of the 18th century, and with the thought of Donghak, which had been advocated in the middle of the 19th century. Moreover, as the Joseon dynasty was facing a critical crisis in and outside the country in the end of the 19th century, the people sought to obtain a comfort from a religion. At that time Donghak and Catholicism attracted the people because they gave some amusement, although the one is native and the other is foreign. In short, their principle of equality and idea for a new world coincided with the emotions of the people.
It has been widely accepted that the believers of Donghak and Catholicism recognized each other in the negative. Donghak followers contained the rejection of Catholicism in the tenet, and also included Catholicism in their movement against the foreign influence. On the other hand, Catholic believers concluded that Donghak was an absurd superstition or paganism, and they even regarded Donghak peasants as a mob or guerrillas. Thus their difference of recognition led to the opinion that they were extremely hostile to each other.
But Donghak had something in common with Catholicism to some degree that the people thought Donghak was in the same or bad second category as “western learning”(seohak). And both of them also suffered a strong oppression and a lot of pressure from the government and the privileged class. It came from the plain fact that they shared the principle of equality, the denial of the present, and the eager desire for a new world with each other, and that these threatened the established system based upon the yangban class system. Thus, Catholic believers went through a cruel suppression from the privileged class, for example, the government, the ruling class, and the wealthy landowners, ever since the religion had been first accepted to the Joseon dynasty, while Donghak followers suffered from the same class ever since Choe Je-u had advocated it.
It should be remembered that there are essentially something both similar and different among all religions. So we need the mutual respect based upon the understanding about the other religion. But Joseon society was in difficult circumstances in the late 19th century under which such respect could not be permitted. This was a tragedy for the country.
본 논문은 1894년 동학농민혁명 이전 동학과 천주교의 상호 인식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하였다. 이를 위한 전제로, 천주교는 조선인의 자발적인 수용과 탄압 및 성장 과정 중에 형성된 그들만의 세계관에 대해서, 동학은 창도와 이후의 변화에 대해서 우선적으로 주목하였다.
18세기말에 이르러 종교로써 수용된 천주교와 19세 중엽에 창도된 동학의 사상과 종교적 교리는 신분제를 근간으로 한 기존의 사회질서와 충돌하였다. 더욱이 19세기 말엽의 조선사회는 대내외적으로 위기의식이 고조되던 시기로 민중은 정서적인 안정을 종교에서 찾고자 하였다. 마침 동학과 천주교는 민족종교와 외래종교라는 차이에도 불구하고 민중에게 위안을 주었다. 그것은 이들의 평등사상과 새로운 세상을 염원하는 이상이 민중의 정서와 부합된 까닭이었다.
한편 양자는 서로를 부정적으로 인식한 것으로 알려져 왔다. 동학은 자체의 교리에 천주교를 배척하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반외세운동에 천주교를 포함시켰다. 천주교는 동학을 미신이나 이교로 단정하였을 뿐 아니라 동학농민군에 대해서는 폭도나 비도 등으로 여겼다. 이러한 양자의 인식으로 인해 마치 극단적인 적대적 관계가 형성된 것으로 알려졌던 것이다.
그런데, 동학은 서학의 동류나 아류로 알려질 정도로 천주교와 공통성을 지니고 있었다. 또한 이들은 정부와 기득권세력에게서 탄압과 핍박을 받았다. 그것은 양자가 지니고 있는 평등사상과 현실부정 그리고 새로운 세상에 대한 열망 등이 신분제를 근간으로 하는 기존의 사회질서를 뿌리 채 부정하는 성격을 띠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천주교는 수용 초기부터, 동학은 교조인 최제우 때부터 정부와 지배층 그리고 토호세력을 비롯한 기득권층에게 핍박과 탄압을 받았다.
본질적으로 모든 종교는 유사성과 함께 차별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할 때, 타종교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상호존중은 필요하다. 그러나 19세기 후반 조선사회는 이것이 용납되기 어려운 상황에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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