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I등재
石顚과 漢岩을 통해 본 불교와 시대정신 = Buddhism and Zeitgeist seen with Seogjeon(石顚) and Hanam(漢岩)
저자
염중섭 (대한불교조계종)
발행기관
학술지명
韓國佛敎學(The Journal of the Korean Association for Buddhist Studies)
권호사항
발행연도
2014
작성언어
Korean
주제어
등재정보
KCI등재
자료형태
학술저널
발행기관 URL
수록면
63-95(33쪽)
KCI 피인용횟수
3
제공처
Under the Japanese Buddhism that fully allowed monks to take wives and eat meats in the early Meiji Restoration, Korean Buddhism faced a great crisis in keeping the pure tradition of home-leaving saṃgha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In those days, many Buddhist scholars led the reckless movement to learn the Japanese Buddhism, criticizing the powerless Korean Buddhism and comparing it with Japanese Buddhism actively supported by mighty Japanese government. The typical person was Han Yong-wun. He made effort to make Korean Buddhism ‘advanced’ as like Japanese one, sending the Japanese Governor a letter of suggestion about the monk’s wife-taking. But, it was a wrong judgment that destroyed the tradition of Korean Buddhism.
Seogjeon(石顚), a monk in the age of Japanese colony, was one of the most excellent Buddhist scholars who was expert in Zen(dhyāna), Doctrinal(vinaya) and Disciplinary(śīla) Buddhism. When the wife-taking became an issue, he tried to block the influence of Japanese Buddhism through the disciplinary education. The result was his book <Gyehag Yagjeon(戒學約詮)>. Furthermore, Seogjeon himself kept on the pure disciplinary way of life, showing an upright standard for monks. With this, Seogjeon’s status went high in the Buddhist world and he was elected as Gyojeong(敎正) the highest master of Korean Buddhism in 1929 and 1946.
Hanam(漢岩) was a little younger than Seogjeon. Hanam became the supreme Zen master in those days. He was very strict in the doctrine and the discipline which had been frequently neglected by other Zen masters.
Due to this, he came to develop the soft and rather feminine style of Zen while his master Gyeongheo(鏡虛) showed the masculine style of Zen.
Especially, Hanam’s Zen style was combined with the strict discipline to establish a peculiar range named ‘Seongye Ilchi(禪戒一致, unity of Zen-Discipline).’ This fresh Zen style of Seongye Ilchi is noteworthy for a very appropriate and desirable practice method in the present Korean society which is going into the advanced one.
Hanam was so expert in Doctrinal and Disciplinary Buddhism as well as Zen that he became a good model of Korean Buddhism. Therefore, he became Gyojeong and Jongjeong(宗正) of Korean Buddhism four times in 1929, 1935, 1941, and 1948.
Seogjeon and Hanam were the leaders of Korean Buddhism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and right after the Korean independence, laying the foundations of present Korean Buddhism. Their teachings will be a good guideline for the Korean Buddhism that is preparing the future development.
일제강점기 한국불교는 메이지유신 초에 娶妻.肉食이 완전 허용된 일본불교의 영향으로, 청정한 출가승단의 전통이 위기에 직면한다. 당시 불교지식인들은 조선조의 무력한 한국불교에 대한 자기비판과, 강국 일본의 위상을 후광으로 가진 일본불교를 비교하며, 무분별한 일본불교 배우기에 앞장선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한용운이다. 한용운은 총독부에 帶妻에 대한 건의서까지 제출하면서, 한국불교를 일본불교와 같이 선진화시키고자 노력한다. 그러나 이것은 한국불교의 전통을 무너트리는 오판이었다.
石顚은 일제강점기 禪.敎.律에 능한 최고의 敎學 승려로써, 대처가 문제되자 戒律교육을 통해 일본불교의 영향을 막아내고자 한다. 이렇게 해서탄생한 저술이 ..戒學約詮..이다. 또 석전은 스스로도 청정한 戒行을 지켜, 승려로서의 반듯한 모범을 보인다. 이와 같은 석전의 불교계 위상은, 1929년과1946년에 한국불교의 최고 어른인 敎正에 추대되도록 한다.
漢岩은 석전과 조금 늦은 동시대인으로, 일제강점기 禪수행의 최고 경지에 이른 분이다. 한암은 禪師들이 등한시하기 쉬운 敎學과 戒行에도 철저했다. 그로 인하여 스승인 鏡虛의 남성적인 禪風과는 다른, 부드러운 여성적인선풍을 개척하게 된다. 특히 한암의 선풍은 엄격한 계율과 결함되어 ‘禪戒一致’라는 독특한 경계를 정립한다. 이러한 禪戒一致의 청정한 선풍은, 오늘날선진국으로 접어드는 한국사회에 있어서 가장 적합하고 귀감이 되는 수행방식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한암의 敎學과 律에도 능통한 禪師로서의 모습은, 한국불교의 사표가 되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1929년.1935년.1941년.1948년, 이렇게 무려 4차례나 敎正과 宗正이라는 한국불교의 최고 지위에 오르게 된다.
석전과 한암은 일제강점기와 해방직후 한국불교를 주도했던 분들로, 오늘날 한국불교의 초석을 다지신 분들이다. 그러므로 미래로 나아가는 한국불교에 있어서, 이 분들의 가르침은 더 없는 이정표가 될 것이다.
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
2026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KCI등재 |
2017-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등재 |
2013-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1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07-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KCI등재 |
2006-01-01 | 평가 | 신청제한 (등재후보2차) | KCI후보 |
2005-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4-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3-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
2016 | 0.27 | 0.27 | 0.37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0.35 | 0.34 | 0.743 | 0.1 |
서지정보 내보내기(Export)
닫기소장기관 정보
닫기권호소장정보
닫기오류접수
닫기오류 접수 확인
닫기음성서비스 신청
닫기음성서비스 신청 확인
닫기이용약관
닫기학술연구정보서비스 이용약관 (2017년 1월 1일 ~ 현재 적용)
학술연구정보서비스(이하 RISS)는 정보주체의 자유와 권리 보호를 위해 「개인정보 보호법」 및 관계 법령이 정한 바를 준수하여, 적법하게 개인정보를 처리하고 안전하게 관리하고 있습니다. 이에 「개인정보 보호법」 제30조에 따라 정보주체에게 개인정보 처리에 관한 절차 및 기준을 안내하고, 이와 관련한 고충을 신속하고 원활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개인정보 처리방침을 수립·공개합니다.
주요 개인정보 처리 표시(라벨링)
목 차
3년
또는 회원탈퇴시까지5년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3년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2년
이상(개인정보보호위원회 : 개인정보의 안전성 확보조치 기준)개인정보파일의 명칭 | 운영근거 / 처리목적 | 개인정보파일에 기록되는 개인정보의 항목 | 보유기간 | |
---|---|---|---|---|
학술연구정보서비스 이용자 가입정보 파일 | 한국교육학술정보원법 | 필수 | ID, 비밀번호, 성명, 생년월일, 신분(직업구분), 이메일, 소속분야, 웹진메일 수신동의 여부 | 3년 또는 탈퇴시 |
선택 | 소속기관명, 소속도서관명, 학과/부서명, 학번/직원번호, 휴대전화, 주소 |
구분 | 담당자 | 연락처 |
---|---|---|
KERIS 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정보보호본부 김태우 | - 이메일 : lsy@keris.or.kr - 전화번호 : 053-714-0439 - 팩스번호 : 053-714-0195 |
KERIS 개인정보 보호담당자 | 개인정보보호부 이상엽 | |
RISS 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대학학술본부 장금연 | - 이메일 : giltizen@keris.or.kr - 전화번호 : 053-714-0149 - 팩스번호 : 053-714-0194 |
RISS 개인정보 보호담당자 | 학술진흥부 길원진 |
자동로그아웃 안내
닫기인증오류 안내
닫기귀하께서는 휴면계정 전환 후 1년동안 회원정보 수집 및 이용에 대한
재동의를 하지 않으신 관계로 개인정보가 삭제되었습니다.
(참조 : RISS 이용약관 및 개인정보처리방침)
신규회원으로 가입하여 이용 부탁 드리며, 추가 문의는 고객센터로 연락 바랍니다.
- 기존 아이디 재사용 불가
휴면계정 안내
RISS는 [표준개인정보 보호지침]에 따라 2년을 주기로 개인정보 수집·이용에 관하여 (재)동의를 받고 있으며, (재)동의를 하지 않을 경우, 휴면계정으로 전환됩니다.
(※ 휴면계정은 원문이용 및 복사/대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습니다.)
휴면계정으로 전환된 후 1년간 회원정보 수집·이용에 대한 재동의를 하지 않을 경우, RISS에서 자동탈퇴 및 개인정보가 삭제처리 됩니다.
고객센터 1599-3122
ARS번호+1번(회원가입 및 정보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