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I등재
청대 중엽 西北史地學 발흥의 배경 = The Background of the Rise of Researches on Northwestern Region’s History and Geography in the Mid-Qing Period
저자
최희재 (단국대학교)
발행기관
학술지명
권호사항
발행연도
2015
작성언어
Korean
주제어
등재정보
KCI등재
자료형태
학술저널
발행기관 URL
수록면
109-133(25쪽)
KCI 피인용횟수
4
DOI식별코드
제공처
소장기관
Many scholars have so far noted that in the mid-Qing period there arose a sudden rush ofresearches on northwestern region’s history and geography, but new generations of scholarsrecently began to look into the topic on rather new perspectives. These new approaches appearto be related with new trends both in China and Western scholarships concerned with thesignificance of Qing rule in Chinese history.
Taking into account such new trends, the author attempted to look into the background of therise of researches on northwestern region’s history and geography in the mid-Qing period in thisstudy, paving way for elucidating its significance in a later research to be followed.
Among other things, at the bottom of such mid-Qing scholarships were Qing conquest ofXinjiang region and surrounding areas in the mid-18th century and ensuing Manchu attempts topropagate their achievement of great unification through a series of related large-scale publicationprojects. Such publications as Xiyutuzhi, Xiyutongwenzhi, and Qianlong Yitongzhi came to attractHan Chinese officials and literati to be interested in contemporary Qing history and frontier areaswhich by then had been rather ‘prohibited areas’ for them. Consequently, a growing number ofHan Chinese officials and literati began to acknowledge the Manchu rulers’ achievement ofterritorial expansion.
Backed-up by such achievements, from the 1760’s the Manchu rulers began to assert thelegitimacy of their takeover of the Ming and their rule over China more positively, relying on thelogic that the requirement of legitimacy is the unification of territory and practical rule overChina. They also changed their estimation of formerly criticized Ming loyalists such as Shi Kefa,now praising their loyalty to their dynasty.
From the late Qianlong period, there arose political and social disturbances across the countrydue to drastic population growth, corruption of bureaucrats and natural disasters, which brought about the reforms of the succeeding Jiaqing period. The so-called Jiaqing Restoration formerly tended to be regarded as of only minor importance at best, but recently its significance is being noted by a growing number of scholars. Among others, with the channel of communication opened rather widely, Han Chinese officials and literati now began to present their opinions on national as well as provincial agendas actively, expanding the scope of their participation.
Under such a context, not a few scholars who had been under strong influence of empirical positivism now began to get involved in pursuing Confucian statecraft in earnest, led by rather politically motivated Jinwen Gongyang school. As a result, a growing number of Han Chinese officials and literati began to be concerned with national agendas, both internal and external. In due course, many of them began to acknowledge the importance of the new territories once considered ‘barren land’ for solving contemporary problem, consequently giving credit to the Manchu rulers in securing them, undertaking researches on the northwestern region and the Qing military conquest.
중국 국내외에서 청대사에 대한 새로운 관심과 연구가 확대되는 가운데 청대 중기 즉 18세기 말 19세기 초의 역사적 위치에 대한 새로운 평가도 제기되고 있다. 필자는 이런 새로운 시각과 관련하여 청대 중엽에 서북사지학연구가 크게 확대되었다는 사실과 그 의미를 재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였으며 본고에서는 그전제 작업으로서 배경적 측면을 살펴보고자 하였다.
요점을 간략히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로 18세기 중엽 신강정복으로 중국의 영토가 크게 확대되었으며, 이에 고무된 만주족 지배층은 적극적으로 그 것을 역사상 유례없는 대일통의 위업으로 강조하며 대내적으로 과시하고자 하는 가운데 대규모의 관련 편찬사업이 추진되었다. 정복과정에 관한 기록으로서의 『평정준가르방략』 외에 신강지역 이해를 위한 『서역도지』, 『서역동문지』가 편찬되었고, 나아가 신강지역을 중국의 영역으로 새롭게 확정한 「건륭내부여도」, 『건륭일통지』 등도 간행되었다. 이에 따라 종전에는 禁區였다고 할 수있는 청대사와 변경문제에 대한 한인 관료 지식인층의 관심과 지식도 점차 확대되고 나아가 현지의 사정에 관한 기행문들도 늘어나면서, 청조의 위업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가 강화되기 시작하였다.
이에 따라 18세기 후반에 이르면 건륭제는 유관 서적편찬사업과 관련하여 좀 더 적극적이고 당당하게 청조중국지배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시작하였다. 황제 자신이 최종 재정권을 행사하여 민간 야사나 사사를 관사로흡수하고자 시도하는 가운데 충의의 관점에서 명청교체기의 역사인물에 대한 재평가를 시도하며 사가법등 명조 순절자를 포상하고 『승조순절제신록』을 간행케 하였다. 그 과정에서 건륭제는 명의 멸망시기를 이자성군에의한 북경함락이 아니라 청조에 의해 남명의 복왕이 사로잡힌 순치 2년으로 설정하며, 사실상 명청교체를 천명에 따른 역성혁명으로 선언하였다. 이후 『사고전서』 편찬 과정에서 역대왕조의 정통문제가 부각되자, 건륭제는 대일통의 관점을 표준으로 해야 한다며 요 금은 중원을 장악하지 못했으나 원은 ‘중화의 주’가 되어 송의정통을 이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청조 중국지배의 정당성과 합법성을 당당하게 주장하게 되었다.
하지만 건륭 말년에 들어 그 간 응축되었던 문제들이 다방면에서 분출하면서 심각한 정치 사회적 혼란이 확산되기 시작하였다. 백련교난, 묘족의 난 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청조체제가 자칫하면 급전직하 막다른 붕괴의위기에 직면할 수도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건륭제 사후 이른바 가경신정이 추진되면서 대대적인 인사개혁과함께 군기처 내무부 등 핵심권력 기구의 정비가 진행되고, 언로개방의 상유가 거듭되는 가운데 중하위 한인관료와 사인층의 정치적 참여와 활동영역의 확대가 현저하게 진행되기 시작하였다.
18세기에 인구가 급증하게 됨에 따라 과거를 준비하는 한인 지식인들도 크게 늘어 경쟁은 더 치열해 지며 인재적체의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었으나, 앞서 언급한 중앙정부 주도의 대규모 문화편찬사업이 어느 정도 그 숨통을 열어 주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상황에서 치밀한 분석과 실증을 중시하는 고증학이 번창하게 되었는데, 가경신정기에 지방관들과 신사층의 활동 공간이 확대되게 됨에 따라 지방지 편찬등 지역적 문화사업도 활성화되면서 한인 사인들의 동원이 확대될 수 있었 ...
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
2027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1-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KCI등재 |
2018-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15-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13-06-12 | 학술지명변경 | 외국어명 : 미등록 -> The Oriental Studies | KCI등재 |
2013-03-13 | 학회명변경 | 한글명 : 동양학연구소 -> 동양학연구원영문명 : Dankook University Institute of Oriental Studies -> Academy of Asian Studies, Dankook University | KCI등재 |
2011-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09-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07-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04-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KCI등재 |
2003-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1-07-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
2016 | 0.7 | 0.7 | 0.68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0.64 | 0.63 | 1.457 | 0.16 |
서지정보 내보내기(Export)
닫기소장기관 정보
닫기권호소장정보
닫기오류접수
닫기오류 접수 확인
닫기음성서비스 신청
닫기음성서비스 신청 확인
닫기이용약관
닫기학술연구정보서비스 이용약관 (2017년 1월 1일 ~ 현재 적용)
학술연구정보서비스(이하 RISS)는 정보주체의 자유와 권리 보호를 위해 「개인정보 보호법」 및 관계 법령이 정한 바를 준수하여, 적법하게 개인정보를 처리하고 안전하게 관리하고 있습니다. 이에 「개인정보 보호법」 제30조에 따라 정보주체에게 개인정보 처리에 관한 절차 및 기준을 안내하고, 이와 관련한 고충을 신속하고 원활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개인정보 처리방침을 수립·공개합니다.
주요 개인정보 처리 표시(라벨링)
목 차
3년
또는 회원탈퇴시까지5년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3년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2년
이상(개인정보보호위원회 : 개인정보의 안전성 확보조치 기준)개인정보파일의 명칭 | 운영근거 / 처리목적 | 개인정보파일에 기록되는 개인정보의 항목 | 보유기간 | |
---|---|---|---|---|
학술연구정보서비스 이용자 가입정보 파일 | 한국교육학술정보원법 | 필수 | ID, 비밀번호, 성명, 생년월일, 신분(직업구분), 이메일, 소속분야, 웹진메일 수신동의 여부 | 3년 또는 탈퇴시 |
선택 | 소속기관명, 소속도서관명, 학과/부서명, 학번/직원번호, 휴대전화, 주소 |
구분 | 담당자 | 연락처 |
---|---|---|
KERIS 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정보보호본부 김태우 | - 이메일 : lsy@keris.or.kr - 전화번호 : 053-714-0439 - 팩스번호 : 053-714-0195 |
KERIS 개인정보 보호담당자 | 개인정보보호부 이상엽 | |
RISS 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대학학술본부 장금연 | - 이메일 : giltizen@keris.or.kr - 전화번호 : 053-714-0149 - 팩스번호 : 053-714-0194 |
RISS 개인정보 보호담당자 | 학술진흥부 길원진 |
자동로그아웃 안내
닫기인증오류 안내
닫기귀하께서는 휴면계정 전환 후 1년동안 회원정보 수집 및 이용에 대한
재동의를 하지 않으신 관계로 개인정보가 삭제되었습니다.
(참조 : RISS 이용약관 및 개인정보처리방침)
신규회원으로 가입하여 이용 부탁 드리며, 추가 문의는 고객센터로 연락 바랍니다.
- 기존 아이디 재사용 불가
휴면계정 안내
RISS는 [표준개인정보 보호지침]에 따라 2년을 주기로 개인정보 수집·이용에 관하여 (재)동의를 받고 있으며, (재)동의를 하지 않을 경우, 휴면계정으로 전환됩니다.
(※ 휴면계정은 원문이용 및 복사/대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습니다.)
휴면계정으로 전환된 후 1년간 회원정보 수집·이용에 대한 재동의를 하지 않을 경우, RISS에서 자동탈퇴 및 개인정보가 삭제처리 됩니다.
고객센터 1599-3122
ARS번호+1번(회원가입 및 정보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