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I등재
17세기 후반 조각승승호(彫刻僧勝浩)의 활동과 불상 연구 = A Study on Activities and Buddhist Statues of the Monk-Sculptor Seungho
저자
발행기관
학술지명
권호사항
발행연도
2010
작성언어
Korean
주제어
KDC
228.705
등재정보
KCI등재
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83-119(37쪽)
제공처
본 논문은 17세기 후반에 활동한 조각승 승호에 대한 연구이다. 현재까지 승호가 제작한 불상은 개별적으로 조사되었지만, 그의 활동과 불상 양식에 대한 구체적인 검토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조각승 승호에 관한 가장 빠른 기록은 1640년에 수화승 청허와 경남 거창 연수사 목조아미타불좌상(현재 거창 포교원 봉안)을 제작한 것이다. 그는 1655년에 수화승 도우와 경북 칠곡 송림사 배전 목조아미타삼존불좌상을 제작하고, 1657년에 칠곡 송림사 대웅전 목조석가불좌상과 1668년에 경북 경주 기림사 대웅전 기와 제작에 시주자로 참여하였다. 그후 승호는 수화승으로 1678년에 경북 청도 화악산 천주사 석조석가삼존불좌상과 석조지장보살좌상(현재 청도 덕사 봉안)을, 1684년에 부산 기장 장안사 석조아 미타삼존불좌상을, 1688년에 경북 군위 인각사 석조석가삼존불과 16나한상 등을 만들고, 1704년에 경북 영천 수도사 노사나불괘불도 조성에 시주자로 참여하였다. 또한 그는 1707년에 수일, 두심 등과 전남 장흥 보림사 신법당신법당(新法堂)불상 개금과 불화 개조(改造)에 참여하였다. 그와 관련된 마지막 문헌은 1719년 경주 기림사 중수·도금발원문에 승호영가(勝浩靈駕)라는 문구를 통해 1717년부터 1719년 사이에 열반에 들었음을 알 수 있다. 승호가 제작한 석조불상의 높이와 무릎 너비는 1:0.62-1:0.80으로, 조선 후기에 목조불상의 신체비례와 유사하다. 승호는 주로 응진전과 지장전에 불상을 제작하였는데, 이는 중소도시 사찰의 부속 전각이 1670~1980년대에 건립되었기 때문이다. 승호가 제작한 불상의 높이와 무릎 너비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높이에 비하여 무릎 너비가 넓어지고, 신체에서 머리가 차지하는 비중이 늘어난다. 승호가 제작한 불상의 대의 처리는 오른쪽 어깨에 걸친 대의 끝자락이 U자형이나 V자형인데, 수연과 수일이 조성한 불상은 펼쳐지거나 U자형으로 처리되어 차이가 있다. 특히, 승호가 제작한 불상의 하반신에 걸친 옷자락은 복부에서 수직으로 흘러내린 끝부분이 옷깃 같이 접혀 있다. 조각승 승호의 계보는 道祐(道雨, -1633-1664-) → 勝浩(勝湖, -1640-1719경-), 尙倫(-1657-1688-), 呂岑(-1678-1688-) → 守日(守-, -1675-1730-), 守衍(-1681-1709-), 守宗(-1684-1685-), 法宗(-1684-1730-) 등으로 이어졌다. 특히, 조선후기 제작된 석조불좌상은 영남의 승호와 호남의 충옥 계보에 속하는 조각승들이 활발하게 제작하였다. 조선후기 제작연대를 알 수 없는 무기년명 불상 가운데 양산 신흥사 대광전, 울주 석남사 대웅전, 대구 동화사 영산전, 부산 육주사(통도사 성보박물관 봉안), 달성 용연사 영산전, 달성 북지장사 대웅전(석조보살좌상), 청도 대비사 대웅전, 창원 성주사 영산전, 고성옥천사 대웅전 등의 석조불좌상은 전체적인 인상이나 대의 처리 등에서 승호와 그 계보 조각승이 1680년부터 1720년 사이에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까지 알려진 발원문과 사적기를 중심으로 조각승 승호의 생애를 살펴보면, 그는 1620년대 출생하여 승려가 된 후, 1640년대 불상 제작의 수련기를 거치고, 1650년대 중반에 부화승(副畵僧)으로 활동하였다. 그는 1670년대 수화승(首畵僧)으로 경주, 청송, 기장, 군위 등 경상도 지역의 사찰에 응진전이나 지장전 등에 많은 석조 불상을 조성하였다. 특히, 그는 경주 기림사에 많은 시주를 한 점이나 조선후기 경주 골굴암에서 석조불상을 만든 원석을 채굴한 점으로 미루어 기림사에 거주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더보기This is a study about monk sculptor Seungho(勝湖), who was active between the late 17th C.E and the early 18th C.E. Although several studies, dealing Seungho`s works, have been published, these studies did not try to analyze a comprehensive approach to Seungho`s sculptures. The earliest written record, mentioning Seungho`s name, was found in wood Amitabha 1640`s votive inscription in Yeonsusa Geochang. This document showed that Seungho participated in monk sculptor Chengheo`s project. In 1655, Seungho worked with another monk sculptor Dou in Songnimsa Chilgok. Seungho also participated in 1657 wood Sakyamuni sculpture project at Songnimsa Daewoongjun. In 1668 Seungho donated money for roof tiles to Girimsa Gyeongju. After late 1670s, Seungho seemed to be a leader of his own monk sculptor school. He created a stone 1678 Sakyamuni triad and a stone Ksitigarbha at Cheonjusa Chengdo. In 1684 he made stone Amitaha at Jangansa, Gijang. Seungho rendered a stone Sakyamuni triad and 16 Buddha`s disciples at Ingaksa, Gunwi in 1688. Seungho participated various Buddhist sculptures projects such as Sudosa`s Nosanabul gwaebul in 1704 and Borimsa Sinbeopdang(新法堂)`s regilting Buddha as well as repainting of Buddha painting. The last written document, which could trace Seungho`s activity, was found in Girimsa Gyeongju. This document, written in 1717, was a record about Buddha`s regilting. In this document, in front of Seungho`s name the term Yeongga(靈駕) was situated. This term is only used for a person who died within two or three years ago. Based on the usage of this term, Yeongga, we assume that Seungho passed away dead between 1716 and 1719. The body ratio of Buddha sculpture, which was made by Seungho, is similar to other late Joseon dynasty Buddha sculptures. The ratios of height verse width of knees are between 1: 0.62 and 1: 0.8. He mainly rendered Buddha sculptures for Eungjingeon and Myeongbujeon. The reason is that during Seungho`s active period, between 1670s and 1710s, there were great demands to build Eungjingeon and Myeongbujeon for middle and small size temples. The Buddha body ratio well displays Seungho`s stylistic feature. As long as approaching 18th C.E. Buddha sculptures, its the width of knees and size of head becomes longer and higher respectively. The ``U`` shape drapery on Buddha`s right shoulder is another feature of Seungho`s works. In addition the third feature can be found at the lower body of Buddha. The central draperies of a lower body of Buddha are folded identically. Such identically pleated draperies are only found on Seungho`s works. The pedigree of Seungho`s monk sculpture is summarized like this: Dowoo(道祐,-1633-1664-) → Seungho(勝浩, -1640-1719-), Sangryun(尙倫, -1657-1688-), Yeojam(呂岑, -1678-1688-) → Suil(守日, -1675-1730-), Suyeon(守衍, -1681-1709-), Sujong(守宗, -1684-1685-), Bubjong(法宗, -1684-1730-). Based on analyzed stylistic features, Seungho seemed to be specialized in stone carving, and his active area was mainly Yeongnam province. Inside of Yeongnam province, there were many Buddha sculptures, which might be Seungho`s works. These sculptures are in Sinheungsa, Donghwasa, Yongyeonsa, Bukjijangsa, Daebisa, Seongjusa, okchensa. All of these temples are in Yeongnam province. These undated Buddha sculptures also share Seungho`s sculptures stylistic features, so we can estimate that these were rendered by Seungho himself or Seungho`s followers between 1680 and 1720. Based on found votive inscriptions and temple histories, we can presume Seungho biography. He might be born around 1620 and finish his apprentice as a monk sculptor in 1640s. Seungho became the second rank monk master around 1650s. In 1670s he led his own monk sculptor school and rendered various Buddha sculptures in Eungjingeon and Myeongbujeon in Yeongnam province. Especially the fact that Seungho created Buddha sculptures at Golguram and donated two times to Girimsa well reflects that Seungho was Girimsa`s monk.
더보기분석정보
서지정보 내보내기(Export)
닫기소장기관 정보
닫기권호소장정보
닫기오류접수
닫기오류 접수 확인
닫기음성서비스 신청
닫기음성서비스 신청 확인
닫기이용약관
닫기학술연구정보서비스 이용약관 (2017년 1월 1일 ~ 현재 적용)
학술연구정보서비스(이하 RISS)는 정보주체의 자유와 권리 보호를 위해 「개인정보 보호법」 및 관계 법령이 정한 바를 준수하여, 적법하게 개인정보를 처리하고 안전하게 관리하고 있습니다. 이에 「개인정보 보호법」 제30조에 따라 정보주체에게 개인정보 처리에 관한 절차 및 기준을 안내하고, 이와 관련한 고충을 신속하고 원활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개인정보 처리방침을 수립·공개합니다.
주요 개인정보 처리 표시(라벨링)
목 차
3년
또는 회원탈퇴시까지5년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3년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2년
이상(개인정보보호위원회 : 개인정보의 안전성 확보조치 기준)개인정보파일의 명칭 | 운영근거 / 처리목적 | 개인정보파일에 기록되는 개인정보의 항목 | 보유기간 | |
---|---|---|---|---|
학술연구정보서비스 이용자 가입정보 파일 | 한국교육학술정보원법 | 필수 | ID, 비밀번호, 성명, 생년월일, 신분(직업구분), 이메일, 소속분야, 웹진메일 수신동의 여부 | 3년 또는 탈퇴시 |
선택 | 소속기관명, 소속도서관명, 학과/부서명, 학번/직원번호, 휴대전화, 주소 |
구분 | 담당자 | 연락처 |
---|---|---|
KERIS 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정보보호본부 김태우 | - 이메일 : lsy@keris.or.kr - 전화번호 : 053-714-0439 - 팩스번호 : 053-714-0195 |
KERIS 개인정보 보호담당자 | 개인정보보호부 이상엽 | |
RISS 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대학학술본부 장금연 | - 이메일 : giltizen@keris.or.kr - 전화번호 : 053-714-0149 - 팩스번호 : 053-714-0194 |
RISS 개인정보 보호담당자 | 학술진흥부 길원진 |
자동로그아웃 안내
닫기인증오류 안내
닫기귀하께서는 휴면계정 전환 후 1년동안 회원정보 수집 및 이용에 대한
재동의를 하지 않으신 관계로 개인정보가 삭제되었습니다.
(참조 : RISS 이용약관 및 개인정보처리방침)
신규회원으로 가입하여 이용 부탁 드리며, 추가 문의는 고객센터로 연락 바랍니다.
- 기존 아이디 재사용 불가
휴면계정 안내
RISS는 [표준개인정보 보호지침]에 따라 2년을 주기로 개인정보 수집·이용에 관하여 (재)동의를 받고 있으며, (재)동의를 하지 않을 경우, 휴면계정으로 전환됩니다.
(※ 휴면계정은 원문이용 및 복사/대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습니다.)
휴면계정으로 전환된 후 1년간 회원정보 수집·이용에 대한 재동의를 하지 않을 경우, RISS에서 자동탈퇴 및 개인정보가 삭제처리 됩니다.
고객센터 1599-3122
ARS번호+1번(회원가입 및 정보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