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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대 조선총독부의 금강산 관광개발 = The Japanese Government-General of Korea’s Geumgang Mountains Touring Development during 191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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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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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관광에 대한 연구가 21세기에 접어들면서 비교적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독립운동사와 식민지 지배정책사연구를 중심으로 했던 한국근대사 연구가 20세기말 일상사 영역으로까지 연구 영역을 확대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일상사의 연구에서 주의해야 할 점은 ‘근대(성)’를 어떻게 파악하는가 하는 데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근대(성)’가 ‘나’의 일상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것을 보다 면밀히 파악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식민지를 경험한 우리의 입장에서는 근대문물의 수용에 따라 ‘나’의 생활이 어떻게 변화하였는가도 연구해야 하겠지만 그 근대문물이 어떠한 방식으로 ‘나’의 생활을 변화시켰는가도 연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근대관광1)은 이러한 점에서 매우 유용한 주제가 될 수 있다. 근대 관광은 산업화와 대중화라는 특성을 갖는다. 이는 식민지 근대관광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다만 식민지라는 특성상 식민지 근대관광은 산업화, 대중화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피지배민족을 야만시하는 이중의 시선이 작용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식민지에서의 관광개발은 산업화로서의 관광개발, 지역개발이 이루어지는 동시에 피지배민족에대한 지배민족의 우월감, 지배민족에 대한 피지배민족의 열등감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여기에 일본의 경우에는 대내외적으로 자신들의 식민지 지배가 식민지 조선의 근대적 발전을 이루어냈다는 선전효과도 필요하였다. 그리하여 식민지 조선의 발전상을 대내외에 선전하기 위한 각종 자료나 사진집을 출판하고 서구 각국에 배포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일제의 식민지 지배정책에 부합하는 선전대상은 금강산 관광이라 할 수 있다. 금강산은 당시 식민지 조선의 실상을 대내외에 선전할 수 있는 대표적인 상징물이었기 때문이다. 식민지시기 금강산 관광에 대해서는 몇 편의 연구가 제출되었다.2) 이 연구들은 주로 기행문이나 사진 자료 등을 텍스트로 분석한 것이어서 조선총독부의 금강산 관광개발 추진 과정이나 추진 주체 등에 대해서는 거의 알 수 없다. 따라서 금강산 관광개발의 과정이나 그 주체에 대한 연구가 시급하다고 할 것이다. 이는 더 나아가 조선총독부 혹은 일본제국주의가 식민지 근대관광을 추진한 정책을 파악하는데도 매우 유용한 작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본고는 1910년대 조선총독부의 금강산 관광개발의 추진과정과 그 내용을 검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를 위해 먼저 개항 이후 금강산 관광에 대한 논의를 살핌으로써 금강산 관광개발이 조선총독부 혹은 일제의 아이디어에서 나온 것만이 아니라 대한제국 이래 근대산업으로서의 관광개발이 논의되었다는 점을 먼저 밝히고자 한다. 그리고 일제의 조선 강점 직후인 1915년 조선총독부가 개최한 조선물산공진회를 계기로 금강산 관광개발을 본격화하는 과정을 살핀다. 이는 1914년 경원선 개통 이후 금강산에 대한 접근성을 강화하기 위한 도로의 건설과 숙박시설의 정비, 통신시설의 설치를 중심으로 살필 것이다. 이를 통해 금강산 관광개발이 본격화된 것은 1910년대이며 이는 조선물산공진회의 개최를 통해 식민지 지배를 통해 조선이 근대적으로 발전하였다는 것을 대내외에 알리고자 하였던 조선총독부의 정책에 기인한 것이라는 점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본고에서는 대한제국과 조선총독부의 관광정책에 대한 자료를 아직 발견하지 못한 관계로 주로 ꡔ독립신문ꡕ과 ꡔ매일신보ꡕ 등 당시에 발행되었던 신문기사를 기본 자료로 활용하였음을 밝혀둔다. 그리고 향후 지금까지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조선총독부 혹은 일제의 지배정책을 실증적으로 파악하는 연구가 보다 활성화되기를 기대한다.
더보기Geumgang Mountains touring development after Japan’s occupation of Korea by force was proceeded under the control of the Japanese Government- Genetal of Korea. We could confirm that Geumgang Mountains touring
development officially initiated after the competitive exhibition of Chosun local products that is opened at 1915. This Geumgangsan Mountains touring development is judged to have reflected the demands of local residents regarding the opening of Gyeongwon line and related lands devlopment at 1914. The foremost matter to be repaired and constructed for Geumgang Mountains touring development was the terminal route from Wonsan station, terminal station of Gyeongwon line, to Geumgang Mountains, and thus, this traffic route fundamentally possessed the traits of a sightseeing road. The cooperation of military police unit stationed at the region was essential for the construction of Geumgang Mountains’ sightseeing road, owing to safety matters in a road construction procedure. Furthermore,
Gangwon-do Province or its county office helped as road construction had the trait of land development, and sponsoring organization operated to facilitate public involvement. As one can see in the case of Seong Suyeong
especially, there are cases in which private citizens voluntarily donate their own lands and assets to repair and construct roads. This shows the passion of locals on the land development of their region. Road construction was premised on the running of vehicles, and vehicles running on Geumgang Mountains roads have appeared. As such, Geumgang Mountains touring have become much more convenient after road traffic activated. Traffic that took one night and two days from Gyeongseong from Geumgang Mountains now takes one day if one uses Gyeongwon line
and roads. Therefore, I believe that touring days or expenses have gone cheaper. Along with a road construction, another matter that the Japanese Government-General of Korea had paid attention was the expansion of accommodations. During 1910s, inns managed by Japanese amd Koreans were established in Geumgang Mountains. However, there were no accomodations for Westernerd, so Western style hotels were built at
Onjeong-ri and Jang-an temple with the competitive exhibition of Korean local products as a turningpoint. These hotels were managed by the Railway Bureau of the Japanese Government-General of Korea, but civilians didn’t
visit them a lot because the costs were too high for civilians. Considering that the registering rate of Onjeong-ri hotel and Jang-an temple hotel at 1924 were under 20%, only 17.5% and 19.3% accordingly, the Japanese Government-General of Korea would have taken the business of other inns around Geumgang Mountains into consideration. In addition, it /endeavored for the safety and communication of tourists through the establishment of information and guarding facilities. In conclusion, Geumgang Mountains touring development officially initiated since the competitive exhibitions of Korean local products at 1915 was realized according to the policy of the Japanese Government-General
of Korea. Therefore, Geumgang Mountains touring development of the Japanese Government-General of Korea during 1910s was achieved as a part of colonization policy. This was in effect in order to notice domestic and foreign countries that the modernization of colony Chosun was possible through the colonization.
日本帝国主義の朝鮮の強制占領以来、金剛山の観光開発は朝鮮総督府の主導の下で進められた。1915年に開催された朝鮮物産共進会をきっかけに金剛山の観光開発は本格化した。こうした金剛山の観光開発は、1914年の京元線の開通とこれに伴う地域開発という地域住民の要求が反映したものと考えられる。金剛山の観光開発にあたって最優先に考慮すべきことは京元線の終着駅である元山駅から金剛山に至る交通路の整備、建設であって、この交通路は基本的には観光道路の性格を有するものであった。金剛山の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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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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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등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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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07-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KCI등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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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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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 | 0.85 | 0.85 | 0.73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0.66 | 0.61 | 1.461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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