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I등재후보
서둔벌의 근대농학 교육과 과학기술 전개 = Outrunning of Modern Agricultural Education and Technology in Seodun-Field
저자
발행기관
학술지명
권호사항
발행연도
2010
작성언어
Korean
주제어
KDC
520.9
등재정보
KCI등재후보
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97-135(39쪽)
KCI 피인용횟수
1
제공처
한국의 근대농업교육은 1895년 고종의 교육조서로 태동된 대한제국 농상공부의 상공학교(1899. 6.), 동 농상공학교(1904. 6. 4.), 동 농림학교(1906)로부터, 조선총독부 농림학교(1910), 동 농림전문학교(1918), 동 고등농림학교(1922)와 후기 동 농림전문학교(1944)로 일관되게 이어져 왔고, 오늘의 서울대학교 농과대학(1946. 10. 15.)은 서울 수진방 재용감과 성수동의 뚝섬 및 수원의 서둔벌에 자리하여 일관되게 나라의 농학교육을 이루어 온 총본산이다. 100여년의 역사와 전통을 통하여 서둔벌의 농학교육이 이룩되어 온 성과와 교육전개의 내력을 살펴보고(광복 이후는 배제) 대략 다음과 같다. 서둔벌 위치 선정의 배경: 수원 서둔벌은 지정학적으로나 풍수적으로, 또는 정조대왕의 농업입국 정신을 받드는 입장이나 위치선정 당시의 농업환경적 입장에서 타당한 곳으로 판단된다. 특히 농사시험기관인 권업모범장과의 근접연계성은 현실적이며 능률적이었다. 한국의 근대농업교육 시작은 1895년과 1899년 고종의 교육칙서에서 시작되고 뚝섬에서 수원으로 옮겨져 수많은 명칭으로 변신되어 오늘에 이르렀지만 고종황제와 순종의 칙서에 담긴 내용을 받들어 학교의 역사와 전통을 이어 왔다. 국가적·민족적으로 대표되는 농업·농학교육의 장으로 그 정통성을 유지해 왔다. 일제강점기의 서둔벌 농학교육에 대한 일제의 의도나 한인 지식층의 의도는 한결같이 농림교육을 고등화·전문화된 교육기관으로 진화시키는데 있었고, 현실적으로 그렇게 진화되어 왔으나 양국측이 같은 의도였음에도 내면적으로 동상이몽이어서 일본측에는 부정적인 문제덩어리로 커 왔고 한국측에는 기대 이상의 귀중한 독립정신과 애국문화를 고취시켜 올 수 있게 커 왔다. 이런 양극화 동기는 일인학생의 입학과 점유비율증대를 수반하고 공학제 허용으로 비롯된 것이었다. 서둔농학의 얼과 상록수운동을 위시한 젊은 학생들의 항일 저항운동과 야학운동·고농항쟁 등은 고등전문인력들이 애국·애족 정신과 농학(철학)을 바탕으로 하여 서둔벌 항쟁의 전통문화를 창조하고 역사적으로 전례가 드문 사례들로서 민족혼을 지키고 발현시킨 상록수정신으로 표출된 것이었다. 심훈의 소설『상록수』에 잘 묘사되어 있으며, 이런 까닭은 주인공 채영신을 실제인물의 모델로 내세웠던 데 있고, 이 소설의 내용은 동아일보가 창립 15주년 기념행사로 모집·당선시켜 연재하였던 바 있다.
더보기Modern agricultural education of Korea has oriented by the Royal ordinance of Emperor Kojong, Choseon dynasty(1895), and started by establishment in order of Sangong School(商工學校, 1899. 6), Nongsangong School(1904. 6), and Nonglim School(1906), respectively. This school was continually changed into newly upgraded and advanced level of education, namely as Nonglim S.(1910), Nonglim Professional S. (1918), High Nonglim S. (1922), and later Nonglim Professional S. (1944). On this respect, the College of Agriculture and Life Science of Seoul National University(1946. 10. 15), Seodun-field, Suwon should be counted as the original home and main head campus of Korea agricultural education. Seodun-field as a Campus location? Considering the geopolitical and geomantic characteristics of Suwon, and the socio-economic reformation spirits of Emperor Jeongjo, the location choice of Nonglim school at seodun-field of Suwon would be supported as practically and efficiently responsible. Specially, neigboring with Head Experiment Station of Agricultural Technology [Kwonupmobeomjang, 勸業模範場] was also one of a logical consequence for the School to be located at seodun-field, Suwon. Orthodoxy of the School? The School, even changed many times in education systems, had observed its historical and conventional notion of agricultural mission released from the Emperor Kojong`s Royal ordinances. such a consistant achievement could be spoken for the School to held his own Upgrading of the School? The systemic phase of the School had continually upgraded by political intension of not only Japanese Imperials but also Korean intellectuals. However the advancing and professionalizing of the School was resulted nothing but a negative dream of colonization policy for Japanese Imperials, and for Korean peoples, really positive phase change for higher and strong power of young students to release devotion for their country and people. Such a both two extremes were resulted from the Japanese education policy to promote the School entrance rule and to increase the ratio of Japanese in enrolled students. Sangroksu spirits and resistance of Korean students? Originally and fundamentally, Korean student-power oriented from the same dormitory [Dongryo] could be rather easily and unifically activated their resistance movements against Japanese Imperials, such as Sangroksu campaigns [a mass-education drive], teaching a night class [around the near villages of the School], and Konong-student`s resistances [mainly 3 times events for Korean students of the High Agricultural School to directly and nationwidely lead the resistance way], respectively. As well presented in Shimfun`s novel "Sangroksu", Korean students living in a dormitory [Dongryo] would be applauded as heroes who create the advanced resistance culture depending on their professional resistant movements against as an systematic aggressors, Japanese Imperials.
더보기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
2010-07-01 | 평가 | 계속평가 신청대상(기타) | |
2009-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FAIL(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7-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신규평가) | KCI후보 |
서지정보 내보내기(Export)
닫기소장기관 정보
닫기권호소장정보
닫기오류접수
닫기오류 접수 확인
닫기음성서비스 신청
닫기음성서비스 신청 확인
닫기이용약관
닫기학술연구정보서비스 이용약관 (2017년 1월 1일 ~ 현재 적용)
학술연구정보서비스(이하 RISS)는 정보주체의 자유와 권리 보호를 위해 「개인정보 보호법」 및 관계 법령이 정한 바를 준수하여, 적법하게 개인정보를 처리하고 안전하게 관리하고 있습니다. 이에 「개인정보 보호법」 제30조에 따라 정보주체에게 개인정보 처리에 관한 절차 및 기준을 안내하고, 이와 관련한 고충을 신속하고 원활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개인정보 처리방침을 수립·공개합니다.
주요 개인정보 처리 표시(라벨링)
목 차
3년
또는 회원탈퇴시까지5년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3년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2년
이상(개인정보보호위원회 : 개인정보의 안전성 확보조치 기준)개인정보파일의 명칭 | 운영근거 / 처리목적 | 개인정보파일에 기록되는 개인정보의 항목 | 보유기간 | |
---|---|---|---|---|
학술연구정보서비스 이용자 가입정보 파일 | 한국교육학술정보원법 | 필수 | ID, 비밀번호, 성명, 생년월일, 신분(직업구분), 이메일, 소속분야, 웹진메일 수신동의 여부 | 3년 또는 탈퇴시 |
선택 | 소속기관명, 소속도서관명, 학과/부서명, 학번/직원번호, 휴대전화, 주소 |
구분 | 담당자 | 연락처 |
---|---|---|
KERIS 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정보보호본부 김태우 | - 이메일 : lsy@keris.or.kr - 전화번호 : 053-714-0439 - 팩스번호 : 053-714-0195 |
KERIS 개인정보 보호담당자 | 개인정보보호부 이상엽 | |
RISS 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대학학술본부 장금연 | - 이메일 : giltizen@keris.or.kr - 전화번호 : 053-714-0149 - 팩스번호 : 053-714-0194 |
RISS 개인정보 보호담당자 | 학술진흥부 길원진 |
자동로그아웃 안내
닫기인증오류 안내
닫기귀하께서는 휴면계정 전환 후 1년동안 회원정보 수집 및 이용에 대한
재동의를 하지 않으신 관계로 개인정보가 삭제되었습니다.
(참조 : RISS 이용약관 및 개인정보처리방침)
신규회원으로 가입하여 이용 부탁 드리며, 추가 문의는 고객센터로 연락 바랍니다.
- 기존 아이디 재사용 불가
휴면계정 안내
RISS는 [표준개인정보 보호지침]에 따라 2년을 주기로 개인정보 수집·이용에 관하여 (재)동의를 받고 있으며, (재)동의를 하지 않을 경우, 휴면계정으로 전환됩니다.
(※ 휴면계정은 원문이용 및 복사/대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습니다.)
휴면계정으로 전환된 후 1년간 회원정보 수집·이용에 대한 재동의를 하지 않을 경우, RISS에서 자동탈퇴 및 개인정보가 삭제처리 됩니다.
고객센터 1599-3122
ARS번호+1번(회원가입 및 정보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