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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화가 장천용(張天鏞)과 작가정신 = Folk Artist Jang Cheon-yong and His Artistic Spirit
저자
발행기관
한국불교미술사학회(한국미술사연구소)(THE ART HISTORY RESEARCH INSTITUTE KOREA)
학술지명
권호사항
발행연도
2015
작성언어
Korean
주제어
등재정보
KCI등재
자료형태
학술저널
발행기관 URL
수록면
245-265(21쪽)
제공처
소장기관
장천용은 행적이 독특할 뿐만 아니라 작가정신이 뚜렷한 민화가다. 흔히 민화를 ‘본그림’이라고 하는데, 그의 행적을 살펴보면 그러한 시각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 본그림은 현대에 와서 이루어진 민화에 대한 인식이다. 그에 대해 기록으로 전하는 내용만 보더라도, 그의 작품이매우 개성적이었을 것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그는 조선시대 민화의 정신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권위에 타협하지 않고 뻔한 주제를 다루지 아니하며, 자신이 느낀 그대로를 과감하게 표출하는 것이 진정한 민화의 정신이라 하겠다. 장천용은 18 세기 후반에서 19 세기 초반까지 황해도 일대에서 활동했다. 그는 미천한 출신으로, 간혹 관청 일을 하기도 했다. 그는 그림뿐만 아니라 퉁소를 잘 불고 노래도 잘했다. 그런데 그의 행적은 괴팍하다고 할 만큼 기이했고 무엇보다 자의식이 강했다. 권력에 맞설 만큼 배짱도 두둑하고 묘향산, 금강산 들을 떠돌 만큼 자유로운 생활을 즐겼으며, 손을 자를지언정 맘에 맞지 않은 그림은 절대그려주지 않은 정도였다.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인 장천용은 작품세계도 평범치 않고 기이했다. 상식을 벗어난 내용에 그로테스크한 표현이 주조를 이루었다. 이러한 표현주의적 화풍은 그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이후19 세기 후반, 20 세기 전반에 제작된 해주백자에서도 전해져 ‘해주양식’이라고 부를 만큼 지역적 전통을 이루었다. 장천용의 기행은 개인적인 성향이 크지만, 시대적 변화 속에서 이루어진 자의식의 발현이라는 측면도 적지 않게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김명국과 최북은 궁중 화원이지만, 천용자는 무명화가라는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일단 실학자 정약용에 의해 무명화가의 기이한 행적이 주목을 받았다는 점이 시대적 변화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래서 장천용의 억압받지 않고 자유로운 삶과 강렬하고 개성적인 작품을 통해 18 세기 후반 활약한 민화가의 존재를 확인함과 동시에 민화가의 자유분방하고 표현주의적인 화풍에 대한 일면을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하여 주는 것이다.
더보기As an artist Jang Cheon-yong maintained a unique lifestyle and a deep passion for Korean folk painting Minhwa, Minhwa tended to be called "model painting" but his life and works clearly show that it would not be the right term to describe his art. The term reflects, in fact, an attitude toward Minhwa which emerged during the modern period. There are enough surviving records to suggest that his paintings were imbued with a strong personality. The works present a fine example of the artistic spirit embodied in Minhwa of the Joseon period. He neither complied with authority nor adopted stale subject matter. He believed that the bold expression of his artistic feeling as it was should be the true spirit of Minhwa. Jang Cheon-yong worked actively in Hwanghae-do between the late 18th and early 19th century. He was born into a low-class family and briefly worked at a local government office. He was a talented man and something of an all-rounder, being a good painter, pipe player, and singer. He was also an eccentric whose life deviated somewhat from the established norm, and was excessively self-assertive. He had the courage to stand up to power, enjoyed wandering around beautiful mountains such as Myohyangsan and Geumgangsan, and never painted for anyone he found detestable. The paintings of Jang Cheon-yong were as strange as his lifestyle. They are characterized by grotesque expressions portraying traditional artistic conventions which would be transmitted to the white porcelain works made in Haeju between the late 19th and early 20th century. The artistic expressiveness of these ceramic works would later be developed into a local tradition now referred to as the "Haeju Style". While much of the artist``s eccentric lifestyle may have been affected by his own personal disposition, it may just as equally have been affected by some of the changes that took place in Korean society during his lifetime and the growth of self-esteem. While he is now often compared with such great court painters as Kim Myeong-guk and Choe Buk, Jang Cheon-yong would never have been able to attain the fame he enjoys today if the social changes that led the great Silhak scholar Jeong Yak-yong (1762-1836) to pay attention to the unconventional art and lifestyle of this unknown artist had never occurred. Thanks to the social changes that occurred in Korea during the 18th and 19th centuries and the highly refined aesthetic taste of a great intellectual of this period, we art lovers of the 21st century have a valuable source of information about this great folk artist and his uniquely expressive artistic sty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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