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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기자(箕子)에 대한 인식과 기자(箕子) 유상(遺像) = The Literati`s understanding of Jizi and Jizi Portraits in Joseon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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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불교미술사학회(한국미술사연구소)(THE ART HISTORY RESEARCH INSTITUTE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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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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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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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244(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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箕子는 중국 上古時代 商나라의 賢人으로서 商이 周에게 멸망하자 유민을 이끌고 동쪽으로 이주하여 箕子朝鮮을 세웠다고 알려진 인물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 고구려에서 기자를 始祖神으로 숭배하였고, 고려·조선시대에는 유교적 敎化君主로 인식하고 국가적 치제의 대상으로 하였다. 16 세기 후반 성리학의 심화와 함께 기자에 대한 이해와 관심은 더욱 깊어져서 기자는 조선에 와서洪範九疇의 구체적 실천을 이룬 왕도정치의 구현자로서 孔·孟·程·朱에 비견되는 조선의 성현으로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조선에 기자상이 처음 전래된 것은 1600 년(선조 33) 徐省이 중국에서 元代의 趙孟咐가 그렸다고하는 <기자진홍범도>를 구득해 오면서였다. 이는 商·周 교체기 周武王이 商을 멸망시킨 후 紂王에 의해 옥에 갇혀 있던 기자를 석방시켜주고 무왕이 직접 찾아가 天道의 彛倫을 물었더니 기자가 왕에게 洪範九疇를 설명해주었다는 기자 행적 중의 한 장면을 그린 것이다. <기자진홍범도>는 평양의 仁賢書院에 보관되었으며, 기존에 기자의 畵像이 全無했기 때문에 조선에 알려진 최초의 기자 유상으로서 중요하게 인식되었다. 1626 년(인조 4) 예조판서 李廷龜가 화사 李信欽을 평양으로 파견하여 임모하도록 한 일을 비롯하여 수많은 모사본이 제작되었고, 이후 수백 년간 문사들의 글 속에 인현서원의 기자화상을 배알한 감회를 읽을 수 있다. 서성이 구입해 온 <기자진홍범도>가 현재 전해지지는 않지만 19 세기의 모사본이 오늘날 전해지고 있어 귀중한 자료가 된다. 조선말기 선전관을 지낸 韓應儉은 1807 년 평양 인현서원에서 이 그림을 손수 모사하였다. 한응검의 <진홍범도>에는 초옥이 크게 배치되었고 담장이 둘러져 있으며, 초옥안에 기자와 무왕이 마주 앉았고, 마루 아래에 史官이 홍범의 내용을 받아 적고 있다. 마당에는 召公과 太公이 공수 자세로 서 있다. 기자는 상나라 冠制인 帿冠에 백색 深衣를 걸친 모습으로 그려졌다. 그림의 도상은 조선시대 문사들의 기록에 묘사된 그림의 도상 특징과 일치하고 있어, 畵者가 충실히원래의 그림을 모사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흥미로운 것은 이 그림 중의 箕子像이 『箕子志』卷首에 수록된 <箕子像> 판화의 저본이 되었다고 여겨진다는 점이다. 『기자지』는 윤두수가 1580 년 편찬한 책이지만 이후 李珥의 「箕子實記」와 韓百謙, 柳根, 許筬 등의 관련 글을 함께 엮어 재편되었고, 이 재편본 .기자지.가 조선시대 기자와 관련된 자료집 및 해설서로서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현재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된 윤두수 편 『箕子志』(奎4929)가 가장 오랜 현존본으로 광해군 연간의 판본으로 추정되고 있다. <기자상> 판화는 『기자지』가 새롭게 재편될 때 포함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기자상> 판화와 함께 수록된 기자 행적도 판화는 『抗議新編』수록 판화(1613-1615 년 제작)와 『東國新續三綱行實圖』판화(1612-1616 제작)등과 양식적 유사성을 보이고 있어 17 세기 초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기자지』의 <기자상>은 이후 공인된 기자상으로서 조선에서 판각되거나 육필로 그려진 수많은 기자 유상의 저본이 되었다. 기자의 초상은 중국 元·明시대에 간행된 聖賢·君臣의 초상화집 판본에는 포함된 예가 없어기자유상의 도상은 오히려 조선에서 먼저 정립되었다고 할 수 있다. 청대의 『古聖賢像傳略』(1830년 刊)에서 비로소 <기자상>이 등장하지만 이는 조선에 영향을 미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후기 기자 숭봉은 확대 일로였고, 아울러 기자유상의 제작도 매우 활발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기자진홍범도> 모본을 봉안한 箕子影殿이 인현서원 외에 두 곳에 더 건립되었고, 이 외에도 새로운 기자영전의 건립을 희망하는 유생들의 상소가 이어졌다. 평양의 인현서원에는 <기자진홍범도> 외에 당내 벽에 걸린 기자 영정도 있었음을 기록으로 확인할 수 있다. 현존하는 기자화상으로는 윤두서가 1706 년에 그린 《五聖圖》 중의 <기자상>과 윤두서 필 성현·군신도상 화첩인《照史》중의 <기자상>이 있다. 이 밖에 성현·군신도상 또한 윤완식 소장 《역대군신도상첩》은 수묵으로 그린 중국과 조선의 역대 성현·군신도상 화첩으로 <기자상>을 포함시켰다. 대한제국 성립 전후시기에 기자숭배가 절정에 달하였는데, 조선말기의 유학자 鄭胤永은 일찍이箕子의 ‘眞像’을 배알하고 감회가 일어 1874 년에 기자상을 손수 베꼈으며, 이를 《箕子畵象帖》으로 꾸몄다. 또다른 군신도상첩으로 중국과 조선의 성현·군신 222 인의 초상화를 엮은 개인소장의 《역대군신도상첩》에는 기자의 반신상과 전신상 두 폭이나 포함되어 있어 기자에 대한 존숭의 뜻을 담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채용신은 1908-1909 년에 정읍 영양사에 봉안할 열두성현의 화상을 그리면서 <기자상>을 제작하였다. 충북 증평에 소재한 箕子影殿인 箕聖殿에는 1914 년 함흥의 지방화사인 金貳參이 모사한 <기자상>이 봉안되어 있다. 이들 기자 유상은 모두 동일한 도상으로 한결같이 『箕子志』의 <기자상> 판화를 저본으로 제작한 작품들이다. 중국 청대에 간행된 『古聖賢像傳略』과 같은 판본에 판이한 도상의 기자상이 등장하였음에도 영향 받지 않고 조선의 기자 유상은 동일한 도상을 독자적으로 꾸준히 계승·전승해 왔음을 볼 수 있었다.
더보기Jizi was a sage at the end of Shang Dynasty, China, With the fall of Shang and the rise of Zhou, he is known to have led thousands of migrants and fled to Joseon and started there a new dynasty, Jizi Joseon. During the Three Kingdoms Period of Korea, the people of Goguryeo worshipped Jizi as the founding god. During the Goryeo and Joseon periods, Jizi was recognized as the confucian monarch who enlightened the people and turned them into civilized people. In late 16th century when the study of neo-confucianism intensified, and the scholarly understanding of Jizi deepened, Jizi began to be accepted as the king who practiced Hong-fan[洪 範], the most ideal statesmanship, and was equaled as the confucian sages, Kong-zi[孔子], Meng-zi[孟子], Cheng-zi[程子], and Zhu-zi[朱子]. It was in such a circumstance that the first ever Jizi portrait was introduced in Joseon. Seo Seong[徐省], governor of Pyeong-an Province, bought and brought from China in 1600 a painting of Jizi explaining Hong-fan[洪範] known to have been painted by Zhao Meng-fu[趙孟咐]. He had it kept in Inhyeon Seowon[仁賢書院] in Pyeongyang. Since there had been no Jizi portrait in Joseon until then, it was regarded as an important portrait. In 1626, Yi Jeong-gu[李廷龜], minister of Ritual, dispatched painter Yi Shin-heum[李信欽] to Pyeongyang to have the painting duplicated. Over the course of time, the painting was copied numerous times, and many literati visited the site and wrote about the painting. The painting, Jizi explaining Hong-fan[洪範] is not extant, but its replication done in 1807 by Han Eung-geom[韓應儉], a high-ranking military official, is still kept by his offspring. In the painting is a house with straw-thatched-roof, and four figures; Jizi, Wuwang of Zhou[周武王], Shaogong[召公]. and Taigong[太公]. Jizi wears a unique looking hat, which is known as xuguan [帿冠], and white outfit called shenyi[深衣]. Xuguan is known to be the official hat worn during the Shang dynasty. The painting corresponds to the explanations made by the literati in their writings during the Joseon period, and thus, can be presumed that Han Eung-geom copied the painting faithfully. The interesting part about this painting is that it became model for the woodblock print Jizi Portrait included in the book, Jizizhi[箕子志]. The book was first published in 1580 by Yoon Du-su[尹斗壽] and was enlarged in the early 17th century by adding Yi Yi[李珥]``s Jizishiji[箕子實記] and other works by a number of scholars. This enlarged version of Jizizhi[箕子志] served as the basic material for the study of Jizi. Accordingly the Jizi Portrait included in this enlarged version became model for all the Jizi portraits printed or painted in Joseon therafter. Jizi portrait had never been included in the book of the portraits of sages, kings, and ministers published in China until then, so Jizi iconography was established in Joseon independently. It was not until 1830 that the Jizi portrait was at last included in the Chinese book of portraits(古聖賢像傳略), but the features were defined quite differently. However, the Chinese version of Jizi was never accepted in the portrait of Jizi in Joseon. Quite a number of Jizi portraits painted during the Joseon period are extant today. There are a couple of Jizi portraits painted by Yoon Du-seo[尹斗緖] in the 18th century, and a couple of Jizi portraits included in the album of portraits(歷代君臣圖像) by unknown painters one from the end of the 18th century or later, another from the end of the 19th century or later. Jeong Yoon-yeong [鄭胤永], scholar from the end of Joseon dynasty also painted Jizi portrait in 1874 and made it into an album(箕子畵象帖). Chae Yong-shin[蔡龍臣], one of the most famous portrait painters at the end of the Joseon period painted Jizi portrait in 1908-1909 to be enshrined in the shrine for the sages. Kim Yi-sam[金貳參] also painted Jizi portrait to be enshrined in the Jizi Shrine in Jeungpyeong[증평] in North Chungcheong province. All these Jizi portraits were painted based on the Jizi portrait from the Jizizhi[箕子志]. It can be concluded that the iconography of Jizi portrait was established in the early 17th century in Joseon in the book Jizizhi[箕子志], while it was not until the 19th century that a Jizi portrait was presented in publication in China. This authorized Jizi portrait was presumably taken from the painting Jizi explaining Hong-fan[洪範] which Seo Seong brought from China in 1600. Unlike other portraits of sages, kings, and ministers, Jizi portrait was, thus, established independently and was faithfully followed by painters in Joseon until the early 20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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