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I등재후보
20세기 초 서간도(西間島) 거주 조선인(朝鮮人)의 거주 양태-‘변계호적(邊界戶籍)’ 자료의 분석 사례- = The Residential Situation of Koreans Who Lived in the West Kando('西間島') in Early 20th century: A Case Study on the New-type Census Register of Pyŏongye [Boundary Limit, '邊界']
저자
임학성 (인하대학교)
발행기관
학술지명
권호사항
발행연도
2009
작성언어
-주제어
등재정보
KCI등재후보
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33-69(37쪽)
KCI 피인용횟수
12
제공처
소장기관
이 연구는 20세기 초 西間島 지역에서 거주했던 조선인들의 거주 양태를 戶籍 자료를 통하여 考究한 것이다.
17세기 후반 淸정부는 자신들의 발상지인 滿洲(東北)지역을 封禁區로 정하여 기타 민족의 거주를 엄금하는 ‘封禁’ 정책을 실시하였다. 또한 朝鮮정부도 조선인이 압록강과 두만강을 넘어 간도 지역으로 潛入·이주하는 것을 엄금하는 ‘越江禁止’ 정책을 실시하였다. 그러다가 19세기 후반에 이르러 ‘봉금’과 ‘월강금지’ 정책이 폐지됨에 따라 수많은 조선인이 間島 지역(압록강 對岸의 西間島와 두만강 대안의 東間島)으로 이주해 갔다. 이주 조선인의 대부분은 평안북도와 함경북도에 거주하던 주민들이었다. 생계를 모색하기 위한 新天地의 개척(농지 개간)이 그 이유였다.
호적 자료의 분석 결과, 20세기 초 西間島에 거주한 조선인들은 1호당 평균 2.4명의 인구수를 보였는데, 이는 미성년 여자 인구가 거의 호적에 등재되지 않은 때문이었다. 이에, 남녀 姓比도 162.5로 심한 불균형을 보였다. 家戶 내의 인적 구성이 이러하다보니 戶主 夫婦로만 이루어진 2인 가족이 전체의 절반 가까이(45%)나 되었다. 이에다가 戶主 혼자 거주하는 1인 가족(16%)을 합치면 그 비율이 무려 60%나 되었다.
직업은 98%가 農業이었다. 조선인들이 間島로 이주한 이유가 농토 개간 및 소작에 있었던 사실과 부합되는 결과였다. 그런데 교육, 통역, 문서 대리 작성, 祭儀·占卜, 상업 등에 종사하는 자들도 확인되고 있어 서간도 지역의 조선인 사회는 나름대로 ‘정착형’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음을 살필 수 있었다.
서간도 거주 조선인들의 가옥의 형태는 모두 草家였으며, 남의 집을 빌어서[借有] 사는 자가 무려 절반 가까이(45%)나 되었다. 가옥의 크기는 己有와 차유 모두 3칸이 가장 많은 것(32%와 28%. 합 60%)으로 나타났다.
This article deals with the residential situation of Koreans living in the West Kando in early 20th century through the Census Register.
In the late 17th century Q’ing government designated its own birthplace, North-east Manchu as the forbidden district and forbade other tribes to live there, the policy that was called "Ponggŭm [Seclusion and Prohibition]". The Chosun government did not permit Koreans to cross the Yalu and Tuman River to secretly enter and stay as well, the policy that was called "Wŏlgang gŭmji [No Cross the River]" policy. As the above mentioned policies were abolished in the late 19th century, many Koreans moved to Kando which were composed of Western and Eastern part, corresponding to the areas across the Yalu and Tuman River each. Most Korean immigrants came from North Pyŏngan and North Hamgŏyng Province. Therefore, the reason of Korean immigration was to cultivate new lands for the living.
Through the analysis of the census register, I found following information about the West Kando Koreans in the early 20th century.
1) Average household member was very few like 2.4 persons. It seems that the non-marital women were not registered, therefore, the sexual ratio was uneven: 1.625 male versus 1 female.
2) The family type having only husband and wife was the half of the whole numbers like 45% while single household was also 16%; both two types were 60% of the whole population.
3) Almost all the occupation, 98% was agriculture, the fact that shows that most Korean immigrants came to the region for land cultivation and tenancy. There are some people who participated in education, translation, document writing agency, ritual ceremony and fortune-telling, commerce. It means that the West Kando Korean society shows somewhat 'sedentary' aspect.
4) All the residential building type was a thatched cottage. The rent type was almost half of the population, 45 %. The size of the house was mostly 3 kan: 60 % of the whole houses, Holding (32%) and Rent (28%) each.
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
2027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1-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KCI등재 |
2018-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15-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11-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KCI등재 |
2010-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8-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2006-07-12 | 학회명변경 | 영문명 : Institute of Korean Studies -> Center for Korean Studies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
2016 | 0.75 | 0.75 | 0.68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0.62 | 0.59 | 1.314 | 0.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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