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대(宋代) 이후의 『가례(家禮)』 연구와 조선(朝鮮)의 수용 = Studies of the Family Rite, Jiali 家禮, in China and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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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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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1(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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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家禮』는 흔히 『文公家禮』 혹은 『朱子家禮』로 불리는 禮書로서 중국 南宋代인 1170년에 朱子(朱熹, 1130-1200)가 편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책은 곧 분실되었다가 1200년 朱子가 사망한 날에 다시 발견되었다는 특이한 내력을 가지고 있다. 『家禮』는 저술과 전승 과정에 애매한 점이 많아 실제로 朱子가 저술한 책인지 여부를 두고 논란이 많았다.
『家禮』는 명나라 초기에 편찬된 『性理大全』에 『家禮』가 편입됨으로 서, 그 권위가 확고하게 되었다. 청나라 때의 성리학자 王懋竑(1668-1741) 등은 이 책이 朱子의 저술이 아니라고 비판하였지만, 세상에서는 아직도 朱子의 저서로 보는 것이 통설이다. 가례가 주자의 제자들에 의해 처음 출판된 이후 그에 대한 중국에서는 많은 주석서가 나왔고, 조선에서는 16세기 이후에 많은 번역서와 연구서들이 나왔다. 가례는 많은 판본들이 있지만, 대표적인 것은 性理大全 수록본과 四庫全書 수록본이다. 사고전서 본은 간략하지만, 비교적 가례의 원본에 가깝다. 성리대전 본은 많은 주석이 포함되어 있지만, 체제가 원본과 다르고, 특히 家禮圖는 주자의 학설과 달라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家禮』는 여러 가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그 간결성, 시의성, 보편성, 실용성, 내용의 일관성 때문에 선풍적인 인기를 모아 널리 보급되고 활용되었다. 무엇보다도 이것이 朱子의 저술이라는 믿음 때문에 권위를 더하게 되었는데, 특히 조선에서 그러하였다. 『家禮』는 朱子 사후에 南宋 사회에 널리 전파되었고, 원나라 때는 중국 전역에 보급되어 사대부 사회의 표준적인 예서가 되었다. 그것은 중국 주변 국가들에도 전파되어 많은 영향을 주었지만, 특히 우리나라에 큰 영향을 미쳤다.
14세기말에 高麗에 전파된 『家禮』는 사대부 계층에 보급되면서 조선 왕조를 유교 사회로 만드는데 기여하였고, 15세기에는 왕실 의례와 사대부 사회의 표준적인 예서가 되었다. 『家禮』는 조선초기부터 『小學』과 함께 과거 시험의 필수선수과목[學禮講]이 되면서 응시자들의 필독서가 되었다. 16세기 이후에는 『家禮』에 대한 연구서가 쏟아져 나오고 諺解本도 나오게 되어, 서민 계층에도 유교 예법이 널리 보급되었다. 『家禮』는 우리 전통 禮法의 기초가 된 것이므로 전문 학자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잘 이해하여 가정에서 활용할 필요가 있다.
The book Family Rite, Jiali 家禮, is usually called as Zhu Zi Jiali 朱子家禮 or Wengong Jiali 文公家禮, which is known that was compiled by Zhu Xi 朱熹(1130-1200) in 1170, during the southern Song Dynasty of China. However, this book has an unusual history. It was said to lost shortly after the writing, but was found again on the day of the death of the writer Zhu Xi in 1200. This book has many ambiguities in the writings and the handing down. So there was a lot of controversy about whether or not it was actually a book written by Zhu Xi.
As the Family Rite was included in the Complete Collection of Neo-Confucianism 性理大全, which was compiled at the beginning of the Ming Dynasty, the authority became firm. However Wang Mao Hong 王懋竑(1668-1741), a Confucian scholar in the Qing Dynasty, criticized that this book was not the work of Zhu Xi. Anyway Many people of the world is still seen as the book of Zhu Xi. Since the first publication of the Family Rite by the Zhu Xi’s disciples, many commentators came out in China. There have been many translations and studies in Korea since the 16th century.
Although there are many editions, the most common is a version in the Complete Collection of Neo-Confucianism and another one the Complete Library in Four Sections, Siku Quanshu 四庫全書. The latter is rather brief, but comparatively close to the original text. Though the former has many annotations, the system looks rather different from the original. Especially, the ritual images in the first volume are criticized much for the difference from the doctrines of Zhu Xi, the original auther.
There are many bibliographic problems in the Family Rite. However, its simplicity, timeliness, universality, practicality, and consistency of contents have attracted considerable popularity. So it was widely used and utilized. Above all, the belief in the writings of Zhu Xi gave great authority to this book, especially in Korea. The Family Rite spread widely in Southern Song Dynasty after the death of Zhu Xi. At the time of the Yuan Dynasty, it spread throughout China and became the normative example in the gentry class community. It spread to neighboring countries and had a lot of impact, a big impact on Korea. At the end of the 14th century, the Family Rite was spread to Goryeo Dynasty of Korea. It contributed to making the Joseon Dynasty a Confucian society, and in the fifteenth century it became the normative example of royal ritual ceremonies and the gentry class society. In the early Joseon period, both the Family Rite and the Elementary Teachings, Shao Xue 小學, also the book of Zhu Xi, became necessary books for the candidates of officials as it became a required subject of the entrance examinations. Since the 16th century, studies on the Family Rite has been pouring out in Korea and translated versions have also been published, which made the Confucian rites spread into the lower class in Korea. Through the process, the Family Rite became the basis of Korean traditional ritual customs. It is necessary to study the book for the use of common people as well as the professional schol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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