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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바이마르헌법에서의 연방대통령 — 바이마르헌법 제정 백주년에 즈음하여 — = Federal President in the German Weimar Constitution — On the Occasion of the 100th Anniversary of the Weimar Constitution —
저자
송석윤 (서울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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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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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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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onstitution of the Weimar Republic, formed as a result of the November revolution 1918, was the most democratic constitution in the world at the time. However, the Weimar Republic was not stable politically, economically and socially under the burden of defeat. Like many countries in transition, the elites of the old system did not readily accept the new constitutional democracy. In the early days of the Weimar Republic, there was a state of unrest from the far-right and the far-left, and it suffered an economic crisis caused by hyperinflation. Afterwards, the situation stabilized to some extent, but in the Great Depression of 1929, the coalition government ran aground and a presidential cabinet was established. Federal Chancellor Bruning aimed to make the constitutional order authoritarian and enforced a stubborn deflationary policy, resulting in the advancement of the left and right extreme forces. Although the German conservatives did not intend the totalitarian destruction of the Nazis, by appointing Hitler as Federal Chancellor, it brought catastrophe not only to Germany but also to the whole world.
There have been many studies on the causes of the failure of the Weimar Republic after World War II. As time went by, as distance and historicization progressed, a consensus was formed that a unilinear explanation was not appropriate because complex factors acted together. Therefore, it is not appropriate to find the cause of failure in the Constitution and constitutional provisions. The Weimar Constitution was a good constitution that met the wrong times. Also, the Weimar Republic did not self-abandon, but was frustrated by the attack from the enemy of democracy.
In the midst of various types of emergencies, Federal President Ebert used the state emergency power based on Article 48 of the Weimar Constitution as a way to protect and establish constitutional democracy. However, Hindenburg used the power of emergency orders for the purpose of undermining the constitutional order. The state of excessive demand that the Weimar Republic faced is symbolized by the overload of Article 48 of the Weimar Constitution. For constitutional democracy to succeed, it is not enough to have a good positive constitution.
1918년 11월 혁명의 성과로 형성된 바이마르공화국의 헌법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 민주적인 헌법이었다. 하지만 바이마르공화국은 패전의 부담 속에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으로 안정되지 못하였다. 많은 체제전환국이 겪는 바처럼 구시대의 엘리트들이 새로운 입헌민주주의를 흔쾌히 받아들이지 못하였다. 바이마르공화국의 초기에는 극우세력과 극좌세력의 소요사태가 있었고 초인플레이션에 의한 경제위기를 겪었다. 이후 상황이 어느 정도 안정되었지만 1929년의 경제대공황 속에서 연립정부가 좌초하고 대통령내각이 들어선다. 연방수상 브뤼닝은 헌정질서의 권위주의화를 목적으로 하였고 완고한 디플레이션정책을 실시하여 좌우 양 극단세력의 약진을 초래하였다. 독일의 보수주의세력이 나치의 전체주의적 헌법파괴를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히틀러를 연방수상으로 임명함으로써 독일 뿐 아니라 전 세계에 참사를 가져왔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바이마르공화국 실패의 원인에 대한 많은 연구가 있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거리두기와 역사화가 진행되면서 여기에는 복합적인 요소가 함께 작용한 것이므로 단선적인 설명은 적절하지 않다는 합의가 형성되었다. 따라서 실패의 원인을 헌법과 헌법조항에서 찾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바이마르헌법은 시대를 잘못 만난 훌륭한 헌법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바이마르공화국은 자멸한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적으로부터의 공격에 좌절한 것이다.
다양한 유형의 긴급사태 속에서 연방대통령 에버트는 바이마르헌법 제48조에 기초한 국가긴급권을 입헌민주주의를 수호하고 정착시키는 방안으로 활용하였다. 하지만 힌덴부르크는 긴급명령권을 헌정질서를 훼손하려는 목적으로 사용하였다. 바이마르공화국이 처했던 과부하상태는 바이마르헌법 제48조의 국가긴급권에 대한 과부하로 상징된다. 입헌민주주의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좋은 실정헌법을 가지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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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7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1-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KCI등재 |
2018-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15-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11-05-03 | 학회명변경 | 한글명 : 국제헌법학회한국학회 -> 세계헌법학회한국학회영문명 : Korean Branch Of International Association Of Constitutioanl Law -> Korean Association of International Association of Constitutional Law | KCI등재 |
2011-01-01 | 평가 | 등재 1차 FAIL (등재유지) | KCI등재 |
2009-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06-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KCI등재 |
2005-05-25 | 학술지명변경 | 외국어명 : 미등록 -> World Constitutional Law Review | KCI후보 |
2005-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3-07-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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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1.6 | 1.6 | 1.2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1.15 | 1.11 | 1.468 | 0.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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