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I등재
남사당의 이합집산과 당진지역 걸립패의 활동 = Repeated reorganization of Namsadang and Activities of Gulrippae in Dangjin Area
저자
발행기관
학술지명
권호사항
발행연도
2016
작성언어
Korean
주제어
등재정보
KCI등재
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101-135(35쪽)
KCI 피인용횟수
1
제공처
이 글은 1960년대 중반 민속극회남사당이 출현하기까지 충남 당진에 은거하던 정일파, 최성구 등 남사당 예인들과 두레문화에 뿌리를 내리고 꽃피운 당진 지역 걸립패의 활동에 주목한 연구이다. 남사당놀이와 당진의 마을농악이 걸립과 전수를 통해 습합된 내력과 양상들을 포착했다. 특히 최성구와 같이 이름난 예인들을 초빙하여 마을에 기거하게하고 마을농악을 전승하던 내력에 천착하였다. 남사당으로 활약하던 정일파의 영향으로 쇄납 연주자의 활약이 도드라졌으며, 마을 상쇠나 쇄납쟁이의 이름을 내건 걸립패들이 성행하였다. 기량 좋은 재주꾼들은 걸립패를 따라 마을 밖으로 떠나기도 했다. 남사당패가 해산된 이후 심우성의 주도로 다시금 재결성하게 되기까지 내막을, 당진에 은거하던 최성구을 중심으로 파악할 수 있다. 외지에서 머슴살이를 하며 떠돌던 예인들이 당진과 서산 등지에서 마을 주민들에게 남사당놀이를 전파하던 내력도 확인된다. 부포놀이가 뛰어났던 최성구는 직접 인형을 깎아 진관리 주민들에게 꼭두각시놀음을 선보이고, 대접돌리기나 열두발상모놀이 등을 가르쳤으며, 인근 마을에 초청되어 농악을 가르쳤다. 또한 최성구와 교류가 잦던 정일파, 전근배, 송순갑 등의 뛰어난 예인들의 인맥을 따라 그들의 기예도 전승경로를 확보하게 되었다. 이들의 교류관계와 기예 학습과정을 통해 최성구의 기예 습득 과정도 가늠할 수 있다. 최성구의 대접돌리기나 버나놀이, 박첨지놀이 등은 김승서와 송순갑, 남운용의 영향이 큰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어린 시절 최성구는 송순갑과 함께 심선옥패에 가담하여 걸립을 다녔다. 아산만을 건너면 바로 안성장이 나오는 내포지역 특유의 입지조건은 남사당의 유입 동기가 되기에 충분했다. 농악에 애착이 깊은 마을 유지들은 남사당의 적극적인 후원세력으로서 자임했으며, 떠돌이로 생계를 유지하던 남사당의 생존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남사당패에 대한 학문적 열정으로 남사당패의 재결성과 문화재지정에 관여하면서 예인들의 생계유지에 힘을 실어준 민속학자 심우성도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본고에서는 실증적인 현지조사를 바탕으로, 당진농악의 공연예술적 면모를 갖추게 이끈 뜬쇠들의 활동과 남사당의 활동반경, 마을 단위 농악 전승의 맥락과 가락과 판굿 등의 연행양상과 활동반경 등을 살폈다.
더보기This study focused on entertainers (e.g., Ilpa Jung and Sunggu Choi), who were retired to hermitage in Dangjin, Chungnam, and the scope of movement and the origin of Gulrippae based on the Dure culture until the Minsok-Gukhoi-Namsadang appeared in the middle of 1960s. Several circumstances indicated that Namsadang plays and Maul Pungmul were merged through Gulrip and Junsu or talented entertainers were took out of a town. Ilpa Jung, who was a member of a Nasadang group, was active. Several Gulrippaes, named after Maul Sangsoi or Soinapjangi, were active as well. It is especially interesting that famous entertainers such as Sunggoo Choi was invited to a town and asked to teach Pungmul. It is possible to grasp the inside story of how a Namsadang group was reorganized by Woosung Sim after it was disbanded by focusing on stories revolved around Sunggu Choi, who was retired to hermitage in Dangjin. It can be confirmed that entertainers worked as farmhands in other areas and they taught Namsadang plays to the locals in Dangjin and Susan areas. Sunggu Choi had an excellent Pupo play ability and he carved dolls by himself to show Ggokdugaksi play. He taught bowl spinning or long-ribbon-hat plays to locals. He was invited to nearby towns and taught them Pungmul. Other excellent entertainers such as Ilpa Jung, Kunbae Jun, and Soongap Song interacted with Sunggu Choi and their techniques could be transmitted through the personal connection. Soongap Song was about 4-5 years older than Sunggu Choi. They played in the Simjunok group together for several months and they went on Gulrip together. It is possible to identify the transmission path of Sunggu Choi’s technique through the interaction between Soongap Song and Sunggu Choi and the technique learning process of Soongap Song. It seems that Sunggu Choi learned bowl spinning, Parkchumji play, and so forth under the influence of Sungsu Kim, Soongap Song, and Woonyong Nam. Ansung-jang was right across the Asan bay in the Naepo region. The unique site characteristic of the Naepo region was good enough to induce Nasadang. Community leaders had affinity to Pungmul to support Namsadang actively. They played a critical role for the survival of Namsadang, who were wonderers and barely made a living. Woosung Sim was a folk scholar. He was involved in the reorganization of Namsadang group and designating them as a cultural asset with academic passion. He was a reliable support. This paper evaluated the activities of Ddunsois, who helped Dangjin folk music have performing art characteristics, the scope of Namsadang’s movement, the town unit folk music transmission pattern, and the performance aspects and the movement range Garak and Pangut based on empirical field surveys.
더보기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
2026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KCI등재 |
2017-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등재 |
2013-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1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KCI등재 |
2009-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7-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
2016 | 0.33 | 0.33 | 0.42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0.43 | 0.44 | 1.024 | 0.11 |
서지정보 내보내기(Export)
닫기소장기관 정보
닫기권호소장정보
닫기오류접수
닫기오류 접수 확인
닫기음성서비스 신청
닫기음성서비스 신청 확인
닫기이용약관
닫기학술연구정보서비스 이용약관 (2017년 1월 1일 ~ 현재 적용)
학술연구정보서비스(이하 RISS)는 정보주체의 자유와 권리 보호를 위해 「개인정보 보호법」 및 관계 법령이 정한 바를 준수하여, 적법하게 개인정보를 처리하고 안전하게 관리하고 있습니다. 이에 「개인정보 보호법」 제30조에 따라 정보주체에게 개인정보 처리에 관한 절차 및 기준을 안내하고, 이와 관련한 고충을 신속하고 원활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개인정보 처리방침을 수립·공개합니다.
주요 개인정보 처리 표시(라벨링)
목 차
3년
또는 회원탈퇴시까지5년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3년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2년
이상(개인정보보호위원회 : 개인정보의 안전성 확보조치 기준)개인정보파일의 명칭 | 운영근거 / 처리목적 | 개인정보파일에 기록되는 개인정보의 항목 | 보유기간 | |
---|---|---|---|---|
학술연구정보서비스 이용자 가입정보 파일 | 한국교육학술정보원법 | 필수 | ID, 비밀번호, 성명, 생년월일, 신분(직업구분), 이메일, 소속분야, 웹진메일 수신동의 여부 | 3년 또는 탈퇴시 |
선택 | 소속기관명, 소속도서관명, 학과/부서명, 학번/직원번호, 휴대전화, 주소 |
구분 | 담당자 | 연락처 |
---|---|---|
KERIS 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정보보호본부 김태우 | - 이메일 : lsy@keris.or.kr - 전화번호 : 053-714-0439 - 팩스번호 : 053-714-0195 |
KERIS 개인정보 보호담당자 | 개인정보보호부 이상엽 | |
RISS 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대학학술본부 장금연 | - 이메일 : giltizen@keris.or.kr - 전화번호 : 053-714-0149 - 팩스번호 : 053-714-0194 |
RISS 개인정보 보호담당자 | 학술진흥부 길원진 |
자동로그아웃 안내
닫기인증오류 안내
닫기귀하께서는 휴면계정 전환 후 1년동안 회원정보 수집 및 이용에 대한
재동의를 하지 않으신 관계로 개인정보가 삭제되었습니다.
(참조 : RISS 이용약관 및 개인정보처리방침)
신규회원으로 가입하여 이용 부탁 드리며, 추가 문의는 고객센터로 연락 바랍니다.
- 기존 아이디 재사용 불가
휴면계정 안내
RISS는 [표준개인정보 보호지침]에 따라 2년을 주기로 개인정보 수집·이용에 관하여 (재)동의를 받고 있으며, (재)동의를 하지 않을 경우, 휴면계정으로 전환됩니다.
(※ 휴면계정은 원문이용 및 복사/대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습니다.)
휴면계정으로 전환된 후 1년간 회원정보 수집·이용에 대한 재동의를 하지 않을 경우, RISS에서 자동탈퇴 및 개인정보가 삭제처리 됩니다.
고객센터 1599-3122
ARS번호+1번(회원가입 및 정보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