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I등재
法頂의 詩 세계에 나타난 존재의식과 사회의식
저자
여태동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발행기관
학술지명
권호사항
발행연도
2020
작성언어
Korean
주제어
등재정보
KCI등재
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179-217(39쪽)
KCI 피인용횟수
0
DOI식별코드
제공처
소장기관
본 논문은 우리시대를 함께 살아가며 ‘영혼의 모음’을 일깨운 법정스님(1932∼2010)의 시 세계를 분석하기 위함이다. 세상에 맑고 향기로운 가르침을 전했던 법정이 15편의 시를 썼다는 사실은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법정은 1960년대 초기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존재론적 고뇌를 담은 시를 쓰기도 했고, 사회의 부조리에 저항하는 참여시를 쓰기도 했다. 1970년대에는 유신독재에 항거하는 저항 시까지 쓰며 불교계를 대표하는 민주화 인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법정은 출가 후 해인사에서 강원과 선원에서 대중생활을 하며 수행자로서의 기본소양을 함양하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웠다. 그곳에서는 당대의 강백이었던 운허스님으로부터 『화엄경』을 배웠다. ‘팔만대장경의 숲’에 침잠했던 법정은 해인강원을 졸업하며 1960년에는 통도사로 가서 『불교사전』 편찬에 동참했다. 이러한 역경의 전법활동을 이끌어 준 스님은 운허스님이다. 이후 서울로 상경한 법정은 1960년대 초부터 1970년대까지 불교신문의 전신인 『大韓佛敎』에 14편의 시를 남겼다. 1960년대 초기에는 자연 친화적인 시가 주를 이룬다. 1960년대 중기에는 실존적 고민이 담긴 시들이 들어 있다. 1960년대 후기에 접어들면서 사회문제에 대한 고민을 담아 법정의 시 경향은 또 한번 변화한다. 존재론적 고민의 흔적을 넘어 좀 더 우울함이 더해지는 경향이 그것이다. 이는 내부적인 심적 변화라기보다는 사회민주화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문제제기도 하면서 부닥치는 심적 갈등이 주된 요인으로 보인다. 1970년대에는 박정희 정권이 1972년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그해 10월 17일 ‘유신헌법’을 개정해 통과시킨 후 독재체제에 접어들었다. 여기에 항거했던 법정은 당대의 암울한 현실을 고발하는 ‘참여시인’의 모습을 보인다. 일반적으로 법정에 대해 논할 때 『무소유』를 쓴 작가로 대표적인 수필가로 알고 있다. 하지만 1960년대 초기에는 자연친화적인 시를 썼고 중기에는 실존적 고민의 흔적이 들어 있는 시를 썼으며 후기와 1970년대 초기에는 사회민주화를 위한 ‘참여시인’의 시 경향 추이가 보인다는 점은 새롭게 조명되는 부분이다. 이러한 내용이 불교계를 비롯해 우리사회에 널리 인식되어 불교민주화 운동 역사와 법정사상 연구에 기여할 것으로 판단된다.
더보기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introduce the poetic world of Ven. Beopjeong (1932∼2010), who awakened the ‘Original Sound of Souls’ by living together in our times. It is not well known to the world that Ven. Beopjeong, who delivered clear and fragrant teachings to a society, wrote fifteen(15) poems. Ven. Beopjeong, however, wrote tens of poems containing existential agony from the early 1960s to the mid-1970s, and also wrote poems about participation in resisting the absurdities of society. In the 1970s, he used to protest against the Yushin(維新) dictatorship and served as a representative figure of the Buddhist community as well. Ven. Beopjeong lived a public life in Gangwon(講院) and Seonwon(禪院) at Haeinsa-Temple after renouncing the world and learning the teachings of Buddha by embracing his basic knowledge as a disciplinant. There, he learned Hwaeomgyeong(華嚴經) from Ven. Unheo. Ven. Beopjeong, dedicated to studying the “Forest of the Tripitaka”, graduated from Haein Kangwon(海印講院) and went to Tongdosa Temple in 1960 to participate in the compilation of The Buddhist Dictionary. Since moving to Seoul, Ven. Beopjeong left 14 poems in Daehan Buddhism Newspaper, the predecessor of the Buddhist newspaper, from the early 1960s to the 1970s. In the early 1960s, nature-friendly poetry was his main theme. There were poems containing existential concerns in the mid-1960s. In the late 1960s, Ven. Beopjeong's poetic tendency changed once again, which included social issues. It tended to add more melancholy beyond the traces of existential concerns. Rather than an internal change of mind, this tendency seems to be a main factor in the psychological conflicts that came as a result of being interested in social democratization and issues having happened from the 1960s’ Korean society. In the 1970s, the Park Chung-hee administration took a dictatorship after declaring an emergency martial law in 1972 and passing the “the Yushin Constitution”(維新憲法) on October 17 that year. On top of that, Ven. Beopjeong showed a “participatory poet” who accused the grim reality of the time. Generally, he has been known as an author who wrote his landmark essay “Non-possession.” In the early 1960s, however, he wrote nature-friendly poems and in the mid-1960s, decades of poems containing ontological troubles. In the late 1960s and the early 1970s, he showed a face of ‘participatory poet’ tendency for social democratization, which was revealed in recent years. I hope that his poetic spirit will be widely recognized in our society, including the Buddhist community, and various studies on the history of the Buddhist democratization movement and his ideology will be conducted as well.
더보기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
2026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KCI등재 |
2017-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계속평가) | KCI등재 |
2016-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후보 |
2015-12-01 | 평가 | 등재후보로 하락 (기타) | KCI후보 |
2011-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KCI등재 |
2010-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9-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FAIL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7-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
2016 | 0.44 | 0.44 | 0.47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0.53 | 0.48 | 1.03 | 0.12 |
서지정보 내보내기(Export)
닫기소장기관 정보
닫기권호소장정보
닫기오류접수
닫기오류 접수 확인
닫기음성서비스 신청
닫기음성서비스 신청 확인
닫기이용약관
닫기학술연구정보서비스 이용약관 (2017년 1월 1일 ~ 현재 적용)
학술연구정보서비스(이하 RISS)는 정보주체의 자유와 권리 보호를 위해 「개인정보 보호법」 및 관계 법령이 정한 바를 준수하여, 적법하게 개인정보를 처리하고 안전하게 관리하고 있습니다. 이에 「개인정보 보호법」 제30조에 따라 정보주체에게 개인정보 처리에 관한 절차 및 기준을 안내하고, 이와 관련한 고충을 신속하고 원활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개인정보 처리방침을 수립·공개합니다.
주요 개인정보 처리 표시(라벨링)
목 차
3년
또는 회원탈퇴시까지5년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3년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2년
이상(개인정보보호위원회 : 개인정보의 안전성 확보조치 기준)개인정보파일의 명칭 | 운영근거 / 처리목적 | 개인정보파일에 기록되는 개인정보의 항목 | 보유기간 | |
---|---|---|---|---|
학술연구정보서비스 이용자 가입정보 파일 | 한국교육학술정보원법 | 필수 | ID, 비밀번호, 성명, 생년월일, 신분(직업구분), 이메일, 소속분야, 웹진메일 수신동의 여부 | 3년 또는 탈퇴시 |
선택 | 소속기관명, 소속도서관명, 학과/부서명, 학번/직원번호, 휴대전화, 주소 |
구분 | 담당자 | 연락처 |
---|---|---|
KERIS 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정보보호본부 김태우 | - 이메일 : lsy@keris.or.kr - 전화번호 : 053-714-0439 - 팩스번호 : 053-714-0195 |
KERIS 개인정보 보호담당자 | 개인정보보호부 이상엽 | |
RISS 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대학학술본부 장금연 | - 이메일 : giltizen@keris.or.kr - 전화번호 : 053-714-0149 - 팩스번호 : 053-714-0194 |
RISS 개인정보 보호담당자 | 학술진흥부 길원진 |
자동로그아웃 안내
닫기인증오류 안내
닫기귀하께서는 휴면계정 전환 후 1년동안 회원정보 수집 및 이용에 대한
재동의를 하지 않으신 관계로 개인정보가 삭제되었습니다.
(참조 : RISS 이용약관 및 개인정보처리방침)
신규회원으로 가입하여 이용 부탁 드리며, 추가 문의는 고객센터로 연락 바랍니다.
- 기존 아이디 재사용 불가
휴면계정 안내
RISS는 [표준개인정보 보호지침]에 따라 2년을 주기로 개인정보 수집·이용에 관하여 (재)동의를 받고 있으며, (재)동의를 하지 않을 경우, 휴면계정으로 전환됩니다.
(※ 휴면계정은 원문이용 및 복사/대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습니다.)
휴면계정으로 전환된 후 1년간 회원정보 수집·이용에 대한 재동의를 하지 않을 경우, RISS에서 자동탈퇴 및 개인정보가 삭제처리 됩니다.
고객센터 1599-3122
ARS번호+1번(회원가입 및 정보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