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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아찬 金恭順 神道碑片 검토 = An Examination of the Fragments of the Stele to Memorialize Achan Kim Gongsun of the Silla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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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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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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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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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68(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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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왕경인 경주 南山寺에서 새로 발견된 비편은 우리나라에서 현전하는 가장 오래된 신도비의 일부였다. 이 글은 남아있는 부분의 글자를 행별로 살펴 그 내용을 분석한 것이다. 제1행은 비석의 제목으로서 주인공의 이름이 공순이며, 관등은 6등인 아찬, 그리고 神道碑임을 명시하였다. ‘김공순’이 아닌 ‘공순’만을 밝힌 데서 성명을 연칭해서 사용하는 문화는 일반화되지 않은 사실과, ‘아찬’ 관등 아래에 존칭접미사인 ‘公’자를 붙였음을 주목하였다.
제2행부터 제8행까지는 주인공과 관련된 서술이었다. “태종대왕의 孫”이라 한 부분과 김씨의 연원을 “少昊의 후예”라 한 구절 등에서 주인공은 중대 왕실과 밀접한 인물임을 알 수 있었다. 진골 출신으로 추정되는 주인공은 20세 무렵에 천령군 태수에 부임하는 등 두드러진 활동을 보였다. 유감스럽게도 그 이하 부분의 내용은 비석의 탈락으로 알 수 없다. 그러나 아찬의 관등을 가진 인물을 위해 신도비를 건립한 것을 보면, 그는 젊은 나이에 비운의 죽음을 당한 사람이 아닐까 여겨졌다. 특히 혜공왕대 일어난 6차의 大亂에 주목하고, 혜공왕 4년(768)의 大恭의 난과 결부시켜 이의 진압에 큰 공을 세운 인물로 추측해 보았다.
또한 이 비석의 건립 연대는 “天嶺郡”이란 지명에서 유추할 수 있었다. 경덕왕 16년(757) 12월에 漢化政治로 “천령군” 지명이 탄생하였으므로, 그 이후인 8세기 후반으로 추정하였다. 그러나 시기를 압축할 경우 지명의 복고조치가 단행된 혜공왕 12년(776) 정월 이전의 어느 시점으로 보고, 특히 대공의 난이 진압된 직후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었다. 그래서 그를 현창하기 위해 국가에서 세운 비석으로 이해한 것이다.
이상 새로 발견된 비편에 대한 기초적인 검토를 하였다. 그러나 발견된 비편이 원비석의 서두 일부에 불과하여 제한된 내용만을 살필 수밖에 없었다. 차후 시간을 갖고 세밀히 검토하면 새로운 사실들을 많이 밝힐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남은 비편들도 추가적으로 발견되길 기대한다.
The fragments of a stele, newly discovered at the Namsan-sa temple in Gyeongju, the Silla capital, are parts of the oldest memorial stele existing in our country. This study has analyzed the contents of the partial inscription by examining the remaining characters on every line. The first line from the top concerns the stele’s title, which elucidates that it was set up to the memory of Kim Gongsun, a holder of achan, the sixth office rank of the Silla dynasty. It is revealed that the system of calling the family name and given name together did not pervade Silla society, in that this stele defined Gongsun, not Kim Gongsun. It is also remarkable that an honorific title gong was suffixed to the character achan.
The seven lines ranging from the second through the eighth lines describe the peson Kim Gongsun. Inferring from the part that he was “a grandson of King Taejong” and a passage that he was “a descendant of Soho,” he is considered to be a man in close connection with the Silla’s royal household of the middle period. Presumed to be a man from the true-bone rank, he displayed distinct activity, including assuming office as magistrate of the Cheonryeong district when he was just twenty years old. Regretably, we know nothing about him beyond that, because we have just examined a part of the stele. Considering the fact that the stele was erected to the memory of a person of the office rank of achan, however, it is supposed that he died an unnatural death while he was young. In particular, when we pay attention to the six great disturbances and consider him in relation to the Kim Daegong’s plot against the monarch in 768 (in the fourth reign year of King Hyegong), he is presumed to have been a person who performed the meritorious deed to quell Kim Daegong’s treason activity.
The time of the stele’s erection might be inferred from the place name “Cheonryeong district.” Because the name resulted from the Silla policy of Sinicization in December 757 (the sixteenth reign year of King Gyeongdeok), it is presumed that it was set up roughly in the latter part of the eighth century. More specifically, it is surmised that it might have been erected at a certain point of time before January 776 (the twelfth reign year of King Hyegong), when the previous place name was restored, especially immediately after Kim Daegong’s treason was shattered.
The above accounts are a product of a rudimentary analysis that has investigated the contents of the inscription only under certain restriction, because the fragments under study are no more than the opening part of the whole stele. Henceforth, a more detailed examination without being restricted by time may cause us to find much more historical facts. I hope that the still undiscovered fragments of the stele will be additionally excavated s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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