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I등재
百濟의 ‘君’號에 대한 試論的 考察 = An experimental study on the ‘Gun(君)’ of Baekje
저자
김영심 (가톨릭대학교 교양교육원)
발행기관
충남대학교 백제연구소(PAEKCHE RESEARCH INSTITUTE CHUNGNAM NATIONAL UNIVERSITY)
학술지명
권호사항
발행연도
2008
작성언어
Korean
주제어
등재정보
KCI등재
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1-32(32쪽)
KCI 피인용횟수
8
제공처
This study focused on the title of the 'Gun(君)' of Baekje which appeared in 'Nihon Shoki(『日本書紀』)' during the 5th century and the first half part of the 6th century. The owners of the title of the 'Gun(君)' were composed of the members of the royal family of Baekje, who played a certain roles and had some bases in Japanese territory. Knowing from the examples of 'Gun-gun(軍君)' and 'Do-gun(嶋君)', the title of 'Gun(君)' was a kind of title given to a noble man included in the limited group of the royal family such as brothers of the king or princes.
In order to analyze the characteristics of the 'Gun(君)' of Baekje, I used the comparative study focusing on the royal family and the expanded group of the royal family of other countries such as Goguryeo, Shilla, China, and Japan.
Though the 'Gochuga(古雛加)' in the early period of Goguryeo included the broad ranges of outgoing royal families and the family of the Queen, the ranges of the 'Gochuga(古雛加)' after the establishment of the centralized administration system narrowed down to the royal family. In this sense, the 'Gun(君)' of Baekje had the similar characteristics of the 'Gochuga(古雛加)'. The 'Galmunwang(葛文王)' of Shilla, who had the right to the throne in case of King's death, were basically the being of pseudo king, and were placed with the brothers of the king in the period of Maribgan(麻立干). The 'Gun(君)' of Baekje might be analogous to the 'Gochuga(古雛加)' of Goguryeo, because the 'Gun' were received by the limited group of the royal family such as brothers of the king or princes, and the holders of the 'Gun(君)' were allowed to the right to the throne.
I studied the role of the 'Gun(君)' in the area of diplomatic relationship with Japan through the analysis of 'Gun-gun(軍君)/ Gonji(昆支)', on whose activities 'Samguk Sagi(『三國史記』)' and 'Nihon Shoki(『日本書紀』)' had good enough stories. The basic purpose of going to Japan by 'Gonji(昆支)', who was a brother of king Gaero, was building the relationship of mutual defense. However, in the long run, his duty included the promotion of friendly relationship between Baekje and Japan through the systematization of the community of the migrants from Baekje into Japan. Although 'Gonji(昆支)' was excluded from the key members of royal family and power elite, he had his own realm of power by contributing the strong relationship with Japan.
It was important in the East Asia in pre-modern era how adroitly to manage and utilize the brothers of king and princes for strengthening the royal authority and the government system. It was appeared as a serious task just after King Geunchogo(近肖古王) completed the job of establishing the system of the state of the Baekje to manage the royal family including the expanded royal family systematically. Managing the major powers was crucial to fortify the authority of the king.
The owner of the title 'Gun(君)' usually contributed to establish the absolute royal authority as an exclusive group of royal family because the title 'Gun(君)' was given to the more limited group of royal family than the title 'Wang(王)·Hu(侯)'. However, the title 'Gun(君)' still meant Baekje’s royal authority had not broken away from the governance system depending on the employment of the royal family members privately and distributing the title of nobility. Paradoxically, I can argue that the time of disappearance of the title 'Gun(君)' was the stage of the establishment of the centralized state based on the bureaucracy instead of the nobility system, and the era of King Sung(聖王) was no other than the first period of the new governance of Baekje.
본 연구에서는 5세기부터 6세기 전반에 걸쳐 『일본서기』에 등장하는 백제의 ‘君’ 칭호에 주목하였다. ‘君’ 칭호의 소지자는 백제의 왕족으로서 왜에 일정한 기반을 두고 활약했던 인물이었다. ‘軍君’이나 ‘嶋君’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君’ 칭호는 왕제 또는 왕자 등 제한된 왕족집단에게 사여된 일종의 爵號였다.
백제의 君의 성격을 파악하기 위해 고구려, 신라, 중국, 일본의 왕실 내지 종실집단과 비교 검토하였다. 고구려 초기 고추가의 범위는 전 왕족이나 왕비족까지 상당히 포괄적이었으나 그 대상이 왕족으로 점차 축소되었기 때문에 王弟나 王子 등 특정 왕족에 한정되었던 백제의 ‘君’과 유사한 면이 있다. 마립간 시기 신라의 갈문왕에는 왕자와 왕제 등이 임명되었으며, 갈문왕은 副王的 존재로서 왕의 유고시 왕위에 오를 수 있었다. 이는 백제의 ‘君’호가 왕제와 왕자 등 제한적인 왕족에 한정되고, ‘君’호 소지자가 왕위에 오를 수 있었던 점과 상통한다. 또한 백제의 ‘君’호가 왕자와 왕제에 국한되었다는 점은 서진에서 황제·황자에 한해서 封王이 이루어진 것과도 유사하다. 일본에서도 親王으로 있다가 왕이 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친왕이라는 칭호가 천황이 될 수 없는 사람에게만 붙였던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君’이란 존재의 대왜관계에서의 역할은 『삼국사기』와 『일본서기』에 그 활동상이 가장 잘 남아있는 軍君(昆支)의 활동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개로왕의 아우였던 곤지의 도왜 목적은 유사시 請兵이었으나, 장기적으로는 일본열도 내의 백제계 이주민을 조직화하여 이들을 기반으로 왜 정권 내의 친백제계 노선을 유지하게 하는 데 역할을 했다. 곤지는 비록 왕권의 핵심부로부터는 배제되었지만, 왜와의 관계를 돈독히 하는 데 기여함으로써 자신의 기반을 키울 수 있었다.
동아시아의 전근대사회에서는 왕권 내지 지배체제의 강화와 관련하여 왕제나 왕자 등의 왕족을 관리, 활용하는 문제가 매우 중요하였다. 백제에서도 국가체제의 정비가 일단락되었던 근초고왕대 이후 왕족을 포함한 왕실집단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 문제가 대두되었다. 국왕의 권력 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핵심세력을 관리할 필요가 있게 되었다. ‘君’호는 ‘王·侯’호에 비해 제한된 왕족 집단에 사여되었기 때문에 ‘君’호 소지자는 왕권을 절대화시켜가는 과정의 산물이었다. 그러나 ‘君號制’는 아직은 왕족에 의한 私的, 爵的 질서를 완전히 탈피하지 못한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역설적으로 ‘君’이라는 작호의 폐지 시점이 작제적 질서 대신 관료제적 질서에 입각한 중앙집권 국가의 성립 시점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백제의 聖王代가 그 시점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
2026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KCI등재 |
2017-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등재 |
2013-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1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07-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KCI등재 |
2006-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5-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4-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2-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
2016 | 0.82 | 0.82 | 0.89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0.85 | 0.87 | 1.843 | 0 |
서지정보 내보내기(Export)
닫기소장기관 정보
닫기권호소장정보
닫기오류접수
닫기오류 접수 확인
닫기음성서비스 신청
닫기음성서비스 신청 확인
닫기이용약관
닫기학술연구정보서비스 이용약관 (2017년 1월 1일 ~ 현재 적용)
학술연구정보서비스(이하 RISS)는 정보주체의 자유와 권리 보호를 위해 「개인정보 보호법」 및 관계 법령이 정한 바를 준수하여, 적법하게 개인정보를 처리하고 안전하게 관리하고 있습니다. 이에 「개인정보 보호법」 제30조에 따라 정보주체에게 개인정보 처리에 관한 절차 및 기준을 안내하고, 이와 관련한 고충을 신속하고 원활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개인정보 처리방침을 수립·공개합니다.
주요 개인정보 처리 표시(라벨링)
목 차
3년
또는 회원탈퇴시까지5년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3년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2년
이상(개인정보보호위원회 : 개인정보의 안전성 확보조치 기준)개인정보파일의 명칭 | 운영근거 / 처리목적 | 개인정보파일에 기록되는 개인정보의 항목 | 보유기간 | |
---|---|---|---|---|
학술연구정보서비스 이용자 가입정보 파일 | 한국교육학술정보원법 | 필수 | ID, 비밀번호, 성명, 생년월일, 신분(직업구분), 이메일, 소속분야, 웹진메일 수신동의 여부 | 3년 또는 탈퇴시 |
선택 | 소속기관명, 소속도서관명, 학과/부서명, 학번/직원번호, 휴대전화, 주소 |
구분 | 담당자 | 연락처 |
---|---|---|
KERIS 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정보보호본부 김태우 | - 이메일 : lsy@keris.or.kr - 전화번호 : 053-714-0439 - 팩스번호 : 053-714-0195 |
KERIS 개인정보 보호담당자 | 개인정보보호부 이상엽 | |
RISS 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대학학술본부 장금연 | - 이메일 : giltizen@keris.or.kr - 전화번호 : 053-714-0149 - 팩스번호 : 053-714-0194 |
RISS 개인정보 보호담당자 | 학술진흥부 길원진 |
자동로그아웃 안내
닫기인증오류 안내
닫기귀하께서는 휴면계정 전환 후 1년동안 회원정보 수집 및 이용에 대한
재동의를 하지 않으신 관계로 개인정보가 삭제되었습니다.
(참조 : RISS 이용약관 및 개인정보처리방침)
신규회원으로 가입하여 이용 부탁 드리며, 추가 문의는 고객센터로 연락 바랍니다.
- 기존 아이디 재사용 불가
휴면계정 안내
RISS는 [표준개인정보 보호지침]에 따라 2년을 주기로 개인정보 수집·이용에 관하여 (재)동의를 받고 있으며, (재)동의를 하지 않을 경우, 휴면계정으로 전환됩니다.
(※ 휴면계정은 원문이용 및 복사/대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습니다.)
휴면계정으로 전환된 후 1년간 회원정보 수집·이용에 대한 재동의를 하지 않을 경우, RISS에서 자동탈퇴 및 개인정보가 삭제처리 됩니다.
고객센터 1599-3122
ARS번호+1번(회원가입 및 정보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