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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初葉 한ㆍ중 관계의 변화와 間島 한인의 管理 = Changes in Korea-China relations and the management of Korean in Chien-Tao in the early 20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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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현대사 연구(Journal of Korean modern and contemporary 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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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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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1-360(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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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말, 20세기 초 서구적 근대화의 물결 속에서 한ㆍ중 관계는 커다란 변화를 맞이했다. 장기간의 조공ㆍ책봉 관계 하에서 ‘自主之國’의 위치에 놓여 있던 조선은1899년 청나라와 韓淸通商條約을 체결하면서 서구 열강과 동격인 ‘平行之國’의 지위를 얻게 되었다. 이는 近代 한중 외교가 탄생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국가 간 외교 관계 중에서 무역 관계 즉 이른바 通商 규칙을 정하기 위한 조약의체결도 중요하지만, 通商의 영역에 대해 명확히 규정하기 위한 국경선의 획정이나그에 따른 영토 문제도 중요하고, 각자 영토 범위를 벗어나 상대방 영토 내에 거주, 생활하는 僑民(이주민)에 대한 관리 문제도 매우 중요하다. 乙巳勒約 체결 후 대한제국의 외교권과 국방권을 강탈해간 일본은 韓國統監府를세워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시아 지역에서의 제국주의 침략을 확대해 갔다. 일본은 간도 한인을 보호한다는 구실로 이른바 간도문제를 야기했으나 실제로 만주 지역의 철도부설권, 광산개발권 등 이권을 침탈하는 것이 주된 목표였다. 20세기 초 간도 한인 관리 문제를 둘러싼 중ㆍ일간의 논쟁은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었던 현지 한인들에게 그다지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일찍이 한청조약의 체결과정에서부터 제기된 ‘邊民(墾民)’의 ‘安業’ 문제가 ‘간도협약’이 체결된 후에도 제대로 해결되지 못했다. 협약의 당사자인 중ㆍ일 양국은 일본이 중국의 간도 영유권을 인정하는 대신 중국은 일본에 만주5안의 이권을 넘겨주었다. 그 과정에 한인 재판권을 대표로 하는 관리권 문제는 일본이 吉會鐵道 부설권 등 이권을 얻기 위한 협상 카드로 사용되었을 뿐 실제로 한인을 보호하기 위한 논의는 진행되지 못했다. 마찬가지로 商埠의 개방을 둘러싼 논쟁도 일본의 제국주의 침략 이권을 놓고 벌인 흥정의 일환이었을 뿐 진정으로 “국가 간 敦崇和好하고 각자 인민을 惠顧하기 위해” 진행한 담판은 아니었다. 결국 중ㆍ일간 ‘간도협약’이 체결된 후에도 현지 한인들의 불안한 처지는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았는바 법적 지위 및 재산권을 포함한 그들의 제반 권리의 실현은 그로부터 반세기가 지난 2차 대전 종전 후에야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더보기In the late 19th and early 20th centuries, the relationship between Korea and China underwent a major change amid the current wave of Western modernization. Joseon, which had been in the position of an autonomous state under the long-term Tribute and Appointment relationship, acquired the status of a parallel country, which is equivalent to the Western countries, when it signed the Commercial Treaty with the Qing Dynasty in 1899. This was an event that showed the birth of modern Korea-China diplomacy. Among the diplomatic relations between countries, the conclusion of a treaty to establish trade relations, so-called trade rules, is important, but the establishment of borders to clearly define trade areas, and the management of migrants living or living outside their territory is also important. After signing the Protectorate Treaty(Eul-Sa-Neuk-Yak) between Korea and Japan concluded in 1905, Japan robbed the Korean Empire of the right to foreign affairs and defense. Further more, Japan established Japanese Resident-General of Korea to increase its invasion in Korean Penisula and Northeast Asia. Japan caused the Chien-Tao problem under the pretext of protecting Koreans in the area, but the main goal was to invade interests such as the right to build railways and develop mines in Manchuria. During the early 20th century, the dispute between China and Japan over the management of Korean residents was not very helpful to local Koreans, who were subject to protection. The issue of Borderer(邊民)’s life( An-up(安業) ), which was raised from the process of signing the Commercial Treaty between Korea and China, was not properly resolved even after the Chien-Tao Agreement was signed. China and Japan, which are parties to the agreement, have handed over the interests of the five Manchurian bills(滿洲五案) to Japan instead of Japan’s recognition of China’s sovereignty over Chien-Tao area. In the process, the issue of management rights such as Korean’s jurisdiction, was used by Japan as a bargaining chip for interests such as the right to build Gil-hoe Railroad(吉會鐵道), but discussions were not conducted to protect Koreans. Likewise, the debate over the opening of commercial port(商埠) was only part of a bargain over Japan’s imperialist aggression, not the one that was truly to promote friendly relation between two countries and to promote people’s benefit. Eventually, even after the signing of the Chien-Tao Agreement between China and Japan, the unstable situation of local Koreans was not fundamentally resolved, but the realization of their rights, including legal status and property rights, took place in half a century after the end of World War 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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