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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尙德의 중국 관내지역에서의 독립운동 = Kim Sang-deok's activities for Korean independence in Ch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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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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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5-308(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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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paper discusses the latter part of Kim Sang-deok's independence activities, from the return to China from Manchuria in 1933 until the liberation of Korea.
Kim Sang-deok moved to Manchuria in 1926 and carried out several roles such as serving as the leader of the Manchurian administration of the Korean Communist Party and the Korean Young Communists. With his return to China in 1933, he devoted himself in Nanjing to unifying the Korean independence movement forces. Rather than pursuing one doctrine or ideology, he endeavored to unify the diverse forces as a whole.
To achieve this, he joined the New Korea Independence Party and served as an executive. Not long after he began to interact with Kim Won-bong, and took part in the Uiyeoldan. He also worked as the third instructor of the Korean Revolutionary Political and Military School in April 1935. It was a crucial turning point for Kim Sang-deok and his independence movement. Following this, he worked with Kim Won-bong, engaging in the Korean National Revolutionary Party and the Korean Volunteer Corps.
In October 1942 when the Korean National Revolutionary Party took part in the Provisional Government, Kim Sang-deok was elected to the Korean Provisional Assembly as the representative of Gyeongsang-do. This was his first return to the Provisional Assembly in 22 years. He played a key part in setting up the framework of the Provisional Government and establishing the blueprint for the liberated country. He also was active in proposing numerous joint bills with members from other opposition parties.
The agendas he proposed before and after the liberation are believed to form a new power structure and to secure a political space and expand the scope of the Korean National Revolutionary Party after the liberation. At this time he served for the Provisional Government as the Propaganda Department, the Deputy Director of Education, and the Deputy Director of the Ministry of Culture.
He then took a role in the cabinet as the Minister of Culture.
From his return to China in 1933 to the country's liberation, his journey for independence was taken with Kim Won-bong. His ultimate task was the country's liberation, and it was pursued by revolution through integration.
본고는 김상덕의 독립운동 역정에서 후반부에 해당하는 1933년 만주로부터 관내로 귀환한 이후 해방을 맞이할 때까지의 활동을 살펴본 것이다.
1926년 만주로 건너가 조선공산당과 고려공산청년회 만주총국 책임자등 다양한 활동을 하던 그는 1933년 관내로 귀환한 이후 난징에서 독립운동세력의 통합에 노력하였다. 특정 사상이나 이념에 편향되기보다는 통합을통한 유일당운동에 나선 것이다.
1934년에는 신한독립당에 참여하여 간부로 활동함으로써 통합의 일단을이루었다. 그러나 곧 김원봉과 교류하며 의열단에 참여하였고, 1935년 4월조선혁명정치군사학교 제3기 교관으로 활동하였다. 이는 그의 독립운동 행로에서 중대한 변화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후 그는 조선민족혁명당, 조선의용대에 참여하며 줄곧 김원봉과 함께 활동하였다.
1942년 10월, 조선민족혁명당의 임시정부 참여 결정에 따라 의정원 의원선거에 출마하여 경상도 의원으로 당선됨으로써 22년 만에 임시의정원에복귀하게 되었다. 이후 해방을 맞이할 때까지 임시의정원 의원으로서 임시정부의 골간을 바로 세우고, 해방 후 조국의 청사진을 마련하는데 일익을담당하였다. 또한 조선민족혁명당원 등 야당 계열 의원들과 수많은 제안을공동 발의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특히 해방 전후 시기에 발의한안건은 해방 후 새로운 세력 구도를 형성하여 조선민족혁명당의 정치적 공간을 확보하고 외연을 확장하기 위한 것으로 이해된다. 한편 이 시기 임시정부의 선전부 선전위원, 학무부 차장, 문화부 차장에 이어 문화부 부장에 승임됨으로써 국무위원으로서의 활동도 병행하였다.
요컨대 김상덕의 1933년 관내 귀환 이후 해방을 맞이할 때까지의 활동은김원봉과 함께 한 행로였다. 이 시기 그에게 있어서 지상 과제는 조국의독립이었고, 그 길은 통합을 통해 혁명을 추구한 노선이었다.
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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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KCI등재 |
2019-05-02 | 학회명변경 | 영문명 : A Laboratory of Korean Studies -> Institute of Korean Studies | KCI등재 |
2017-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등재 |
2013-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KCI등재 |
2012-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11-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등재후보2차) | KCI후보 |
2010-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8-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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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0.3 | 0.3 | 0.23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0.36 | 0.38 | 0.553 | 0.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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