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I등재
이민자에 대한 조선 사회의 태도와 그 반응-명 유민(遺民)을 중심으로- = A Study on the Representation of Displaced Persons of Ming(明) in the Joseon Dynasty
저자
발행기관
학술지명
권호사항
발행연도
2020
작성언어
Korean
주제어
등재정보
KCI등재
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5-31(27쪽)
KCI 피인용횟수
0
DOI식별코드
제공처
This article examines how migrants from Ming(明) were treated and represented in Joseon Dynasty through the records of them which had been written by the Joseon intellectuals and the descendants of migrants in that period. Though the number of immigrants who came from other countries like Japan and became naturalized was not small from the beginning of the Joseon Dynasty, it was in the late Joseon Dynasty when immigrants rapidly increased. Most of them were descendants of the Ming soldiers who came to Joseon as supporters during the Imjin War, or people who came because they disobeyed Ching or displaced persons from Yodong area after the fall of Ming. The Joseon people named them Hwangjoin or Hwangjoumin, and treated them with respect based on the theory of Jonjou(尊周). These people were even allowed to serve public service and the Joseon Dynasty left records of them. But the displaced persons from Ming were not recognized by the intellectuals of the Joseon Dynasty and failed to engage in the upper society of the Joseon Dynasty.
This article suggests that the representations of Kang Se-jak(康世爵) and Guljeo(屈姐) and the language problems they had faced significantly revealed the location of displaced persons from Ming. Kang Se-jak could not properly communicate in the Korean language, and Guljeo herself was not rightly named. Kang Se-jak could not learn the Korean language while he forgot the Chinese language. Though he was able to write the Chinese, he couldn’t speak any language properly between the old native language and the new language. This situation showed his location at the border of the language, and the life on the border. Considering this, we can't say that Kang Se-jak lived a life as a subject. Guljeo, losing his original name and called by a similar name, also couldn’t live a life as a subject. Some other displaced persons from Ming besides Kang Se-jak and Guljeo were found to be positioned as middle though they were economically needy. In this situation, some descendants of the displaced persons from Ming tried writing records of their forefathers’ stories of immigration and settlement. These records were regarded by Joseon intellectuals as the counter-narrative about the displaced persons from Ming against those which were written by Joseon intellectuals. But ironically, the narrative by the descendants from Ming’s migrants was only to strengthen the boundary between inside and outside by focusing on their own identity.
이 글은 명 유민에 대한 조선 지식인의 기록과 유민의 후손이 기록한 것을 통해 명 유민의 재현 양상, 명 유민에 대한 조선사회의 태도를 살펴본 것이다. 조선초기부터 일본을 비롯해 외국에서 귀화한 이민자의 숫자가 적지 않았으나 조선 후기에 이르러 명에서 온 이민자들이 급격히 늘어났다. 이들은 대부분 임진왜란 때 명나라 원군으로 조선에 온 장병의 후손이거나 반청복명(反淸復明)을 위해 조선으로 온 사람들, 혹은 명의 멸망 이후 요동지역 등으로부터 유입된 유민들이었다. 조선인들은 이들을 황조인(皇朝人) 또는 황조유민(皇朝遺民)이라 명명하고 존주론에 입각해서 이들을 대하고 관직을 하사했으며 이들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 그러나 명 유민은 조선 사대부의 인정을 받거나 사대부 사회에 끼지 못했다. 이 글에서는 그 예로 강세작과 굴저에 대한 재현 양상을 들고 이들이 처한 언어 문제가 명 유민의 위치를 의미심장하게 드러낸다고 보았다. 강세작은 언어를 제대로 소통하지 못 하고 굴저는 자신이 이름이 제대로 불리지 못했다. 강세작은 중국어도 잊어버리고 조선어는 제대로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문은 구사할 수 있었지만 이전의 모국어와 새로운 모국어 사이에서 말을 잃어버린 강세작은 언어의 경계에 위치해 있었고, 이는 경계에 처한 그의 삶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 경계에서 강세작은 주체로서의 삶을 살았다고 하기 어렵다. 자신의 본래 이름을 잃어버린 채 비슷한 이름으로 불린 굴저 역시 주체로서의 삶을 살았다고 보기 어렵다. 강세작, 굴저와 달리 명 유민들은 경제적으로도 곤궁하고 중인 정도의 대우를 받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명 유민의 후손에 의한 명 유민의 전이 기록되었는데 이를 조선 지식인의 명 유민 서사에 대한 명 유민의 대항서사로 보았다. 그러나 명 유민의 서사는 자신들의 정체성을 강화함으로써 안과 밖의 경계를 더욱 강화하는 것이었다.
더보기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
2028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2-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KCI등재 |
2019-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등재 |
2016-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등재 |
2012-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09-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KCI등재 |
2008-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6-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
2016 | 0.63 | 0.63 | 0.76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0.8 | 0.87 | 1.63 | 0.18 |
서지정보 내보내기(Export)
닫기소장기관 정보
닫기권호소장정보
닫기오류접수
닫기오류 접수 확인
닫기음성서비스 신청
닫기음성서비스 신청 확인
닫기이용약관
닫기학술연구정보서비스 이용약관 (2017년 1월 1일 ~ 현재 적용)
학술연구정보서비스(이하 RISS)는 정보주체의 자유와 권리 보호를 위해 「개인정보 보호법」 및 관계 법령이 정한 바를 준수하여, 적법하게 개인정보를 처리하고 안전하게 관리하고 있습니다. 이에 「개인정보 보호법」 제30조에 따라 정보주체에게 개인정보 처리에 관한 절차 및 기준을 안내하고, 이와 관련한 고충을 신속하고 원활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개인정보 처리방침을 수립·공개합니다.
주요 개인정보 처리 표시(라벨링)
목 차
3년
또는 회원탈퇴시까지5년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3년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2년
이상(개인정보보호위원회 : 개인정보의 안전성 확보조치 기준)개인정보파일의 명칭 | 운영근거 / 처리목적 | 개인정보파일에 기록되는 개인정보의 항목 | 보유기간 | |
---|---|---|---|---|
학술연구정보서비스 이용자 가입정보 파일 | 한국교육학술정보원법 | 필수 | ID, 비밀번호, 성명, 생년월일, 신분(직업구분), 이메일, 소속분야, 웹진메일 수신동의 여부 | 3년 또는 탈퇴시 |
선택 | 소속기관명, 소속도서관명, 학과/부서명, 학번/직원번호, 휴대전화, 주소 |
구분 | 담당자 | 연락처 |
---|---|---|
KERIS 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정보보호본부 김태우 | - 이메일 : lsy@keris.or.kr - 전화번호 : 053-714-0439 - 팩스번호 : 053-714-0195 |
KERIS 개인정보 보호담당자 | 개인정보보호부 이상엽 | |
RISS 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대학학술본부 장금연 | - 이메일 : giltizen@keris.or.kr - 전화번호 : 053-714-0149 - 팩스번호 : 053-714-0194 |
RISS 개인정보 보호담당자 | 학술진흥부 길원진 |
자동로그아웃 안내
닫기인증오류 안내
닫기귀하께서는 휴면계정 전환 후 1년동안 회원정보 수집 및 이용에 대한
재동의를 하지 않으신 관계로 개인정보가 삭제되었습니다.
(참조 : RISS 이용약관 및 개인정보처리방침)
신규회원으로 가입하여 이용 부탁 드리며, 추가 문의는 고객센터로 연락 바랍니다.
- 기존 아이디 재사용 불가
휴면계정 안내
RISS는 [표준개인정보 보호지침]에 따라 2년을 주기로 개인정보 수집·이용에 관하여 (재)동의를 받고 있으며, (재)동의를 하지 않을 경우, 휴면계정으로 전환됩니다.
(※ 휴면계정은 원문이용 및 복사/대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습니다.)
휴면계정으로 전환된 후 1년간 회원정보 수집·이용에 대한 재동의를 하지 않을 경우, RISS에서 자동탈퇴 및 개인정보가 삭제처리 됩니다.
고객센터 1599-3122
ARS번호+1번(회원가입 및 정보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