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현의 동요 연구 = A Study on Jo Jong-hyeon’s Children’s So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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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지명
권호사항
발행연도
2016
작성언어
Korean
주제어
KDC
810
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61-92(32쪽)
제공처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examine children’s songs written by Jo Jong-hyeon who has been known as a poet of sijo. In fact, he also wrote children’s songs while engaged in creating sijo. For less than two years from 1929, he was actively involved in the juvenile literary movement releasing up to 100 or so children’s songs. Before studying his children’s songs, this author looked into the aspects of the juvenile literary movement which developed in Goheung, Jeollanam-do. Goheung is Jo Jong-hyeon’s hometown and is a village located in the south of the Korean Peninsula. The youths there took the initiative in enlightening the juveniles and teaching them how to write. Thanks to their aid, the juveniles in Goheung could realize their dream to be a juvenile writer submitting their own writing to the newspapers or juvenile magazines.
The characteristics of Jo Jong-hyeon’s children’s songs are as follows: First, his children’s songs contain strong national consciousness. This seems to have originated from his background that he wrote sijo first which is the original form of poetry in Korea. Only with the fact that he established Hangul as the literary title at the step of releasing his own children’s songs and created ‘Hanmal’ corresponding to the colloquial title, we can readily see his strong national consciousness.
Second, Jo Jong-hyeon’s children’s songs express the imagery of family distinctly. This is attributed to the biographical fact that he left home in his 10’s and wrote children’s songs around the 1930’s when colonial controversy became concretized. In the period, collapse in colonial economy led to family dismantlement prevalently, and Jo Jong-hyeon embodied this with parting or longing. The family’s suffering also reflects the miserable reality of colonized natives.
Third, Jo Jong-hyeon contained the obstinate order of colonial society into 7․5jo. As Japan’s colonial ruling was systematized, 7․5jo introduced from Japan became used as the basic rhythm in new style poems, free verses, children’s songs, or popular songs. Through 7․5jo, Jo Jong-hyeon testified the scenes that our colonized juveniles’ consciousness of rhythm tended to become foreignized. His attempt was enough to exhibit the state of our colonized rhythm contrastively with the creation of sijo based on our traditional 4․4jo.
Fourth, Jo Jong-hyeon emphasized the ethics of writing setting integrity of criticism forth. During the juvenile literary movement in the 1920-30’s, disputes regarding duplicated submission, imitation, plagiarism, or criticism often arose. With two critical writings of his own, Jo Jong-hyeon criticized the state of plagiarism severely by inserting the original and plagiarism both. His criticism developed as a way of revealing the person’s fault and also having juvenile writers study literatures.
As shown above, Jo Jong-hyeon was involved in the juvenile literary movement actively and released a lot of children’s songs in rather a short period. In order to study the world of his literature profoundly, his children’s songs should be dealt with essentially. Also, it is needed to discover his works not yet found and involve tasks to arrange many of his pen names and bibliography.
이 글은 지금까지 시조시인으로 알려진 조종현의 동요 세계를 살핀 것이다. 사실 그는 시조를 쓰는 동안에 동요도 썼다. 그는 1929년부터 2년도 채 못 된 기간에 100여 편의 동요를 발표할 정도로 소년문예운동에 활발히 가담하였다. 이에 그의 동요를 연구하기에 앞서 전라남도 고흥 지역에서 전개되었던 소년문예운동의 양상을 살폈다. 고흥은 조종현의 고향으로, 한반도의 남단에 위치한 고장이다. 그곳의 청년들은 소년들의 계몽에 앞장서고 소년들의 문예 활동을 지도하였다. 청년들의 도움으로 고흥의 소년들은 신문과 소년잡지에 투고하며 소년문사의 꿈을 키웠다.
조종현의 동요에 나타난 특질은 아래와 같다. 첫째, 그의 동요에는 강한 민족의식이 함유되어 있다. 이것은 그가 민족의 고유한 시형식인 시조를 먼저 쓰기 시작한 이력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그가 동요를 발표하는 단계에서 한글을 문어적 명칭으로 상정하고, 구어적 명칭에 해당하는 ‘한말’을 창안한 것을 보더라도 민족의식의 투철한 정도를 헤아리기 어렵지 않다.
둘째, 조종현의 동요에는 가족 심상이 두드러지게 표현되어 있다. 이것은 그가 10대에 출가한 전기적 사실과 함께, 식민지의 모순이 구체화되던 1930년 전후에 동요를 썼던 바에 기인한다. 그 시절은 식민지 경제의 파탄으로 가족의 해체가 만연하던 때였고, 그것을 조종현은 이별과 그리움 등으로 형성화하였다. 가족의 고생은 식민지 원주민들의 비참한 현실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셋째, 조종현은 식민지 사회의 완강한 질서를 7․5조에 담았다. 일본에서 이입된 7․5조는 일제의 식민지 지배가 제도화되면서 신체시, 자유시, 동요, 유행가 등에서 기본 율조로 사용되었다. 조종현은 7․5조를 통해서 식민지 소년들의 율격의식이 외래화된 장면을 증언하고 있다. 그의 시도는 전통적인 4․4조에 기반한 시조의 창작과 대비되어 율격의 식민화된 상태를 보여주고도 남는다.
넷째, 조종현은 비평적 염결성을 앞세워 글쓰기의 윤리를 강조하였다. 1920-30년대의 소년문예운동 기간에는 중복 투고, 모작, 표절, 비난 등의 시비가 자주 일어났다. 조종현은 2편의 평문을 통해서 원작과 표절작의 텍스트를 동시에 게재하며 표절 사태를 힐난하였다. 그의 비평은 상대의 허물을 꾸짖는 동시에, 소년문사들을 계고하는 방식으로 전개되었다.
이와 같이 조종현은 소년문예운동에 적극적으로 참가하여 짧은 기간에 많은 동요작품을 발표했다. 그의 문학세계를 심층적으로 연구하기 위해서는 동요 연구가 필수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또 아직 발굴되지 않은 작품도 찾아보고, 다양한 필명과 서지 정리 등의 작업이 수반되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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