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I등재
한국전쟁과 지방화단 = 부산, 제주, 호남화단을 중심으로
저자
발행기관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Center for Korean Studies Pusan National University)
학술지명
권호사항
발행연도
2010
작성언어
Korean
주제어
등재정보
KCI등재
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35-64(30쪽)
KCI 피인용횟수
6
제공처
소장기관
1950년에 발발한 한국전쟁은 식민지에서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였던 한국 사회의 많은 것을 변화시켰고 미술인의 활동에도 일정 부분 변화를 가져왔다. 월북과 월남 그리고 부산으로의 피난으로 대표되는 작품활동 지역의 변화는 근거지를 잃은 작가들이 고향과 경제력을 상실하게 함으로써 개인적인 패배감을 강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심리적인 공황까지 야기시켜 작가 자신의 세계를 개척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하지만 전쟁 중에도 화가들은 다방에서 개인전이나 그룹전을 열어 창작열을 불태웠으며 대한미술협회라는 단체를 결성하여 전열을 정비하기도 하였다.
그림 그릴 재료가 곤궁하고 생활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미술에 열중할 수 있다는 프로의식과 예술에의 의지를 볼 수 있는 이들 전시문화에는 당시의 상황에 대응한 작가의 현실 인식이 반영되어 있다. 현실 도피로서의 순수에의 집념, 무능한 가장으로서 현실적으로 해낼 수 있는 유일한 일인 그림그리기, 그 어느 것이든 한국전쟁기 화단의 활동은 멈추지 않았는데 이는 상당히 중요하며 고무적인 일이다. 다만 이념의 갈등이 빚어낸 전쟁이고 자신의 국토에서 발발한 전쟁이지만 정작 자신들은 전쟁의 주체가 되지 못한 전쟁이 한국전쟁이었다는 뼈아픈 사실을 감안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전쟁이 건국초기에 비하여 한층 더 강화된 반공이념을 정당화시키는 상황에서 미술단체와 미술제도 그리고 개개인은 이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이념적 성향에 따라 세속적 성공과 좌절이 결정되고 마는 한계 상황에 설 수 밖에 없게 되었던 것이다.
인적 구성의 변화는 남한 내에서도 마산에 있던 임호나 이준이 부산으로 왔고, 또 휴전과 함께 이준은 서울에서 열린 제2회 〈국전〉에 화려하게 등장하였다. 미술인의 이동은 월남이나 월북 이외에 남한 내에서도 지방에의 정착과 지방미술인의 상경으로 이루어졌다. 피난민으로서 미술가들의 위상은 거주지를 옮겼음에도 끊임없이 전시를 하거나 미술작품의 창작을 쉬지 않음으로써 미술가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한 것이었다.
일찍이 미술에서 그렇게 활발하게 직접적으로 중앙과 지방의 교류가 이루어졌던 적은 없었다. 미술인들은 자신이 거주하는 곳의 환경과 의미를 느꼈고 그것을 어떠한 방식이든 작품에 투사하였다. 박고석의 부산의 여러 장소에 대한 풍경이나 이중섭의 제주도 풍경이 그러한 예이다. 또한 부산에 거주하는 작가들에게 다른 지역 작가들 특히 서울에서 피난온 모더니즘 계열의 자극은 자신이 속한 지역의 색채에 대한 깊이있는 논의로 이어져 전통에 대한 관심과 민족적인 미술의 확산으로 이어졌던 것도 주목할 일이다.
지방과 중앙 혹은 피난민 화가들과 지역작가들과의 관계는 일방적 영향관계로 파악했을 때, 상대에 대한 부정으로 작용하여 문화적 교류 혹은 충격이라는 사실조차 부정하게 되는 것을 본다. 그리고 당시에조차 그러한 시각은 중앙의 모더니즘 대 지방의 전통이라는 이원적인 시각을 양산하는 배경이 되었다.
The Korean War that broke out in 1950 had brought a lot of changes into the Korean society, as it was only a while after becoming decolonized. It also had affected certain parts of artists’ activities. Due to evacuating toward north or south over the border, and to Busan, artists loosing their hometown and economic strength were the changes in major regions of creating pieces. Therefore, it didn’t only enhancethe sense of defeat, but also caused psychological panic so it made the artists even more difficult to develop their own world. However, artists opened private or group exhibitions in coffee shops to express their creativity. They also formed a group called ‘Korean Association of Art’ and settled the combative fervor.
Artists’culture of exhibitions reflected their cognitive reality of coping with the circumstances during that time and it proved that even with scarce art materialsand difficult living environment, they could concentrate on art as professionals and it represented their will of art. Being deeply attached to purity to avoid the reality, as being an incompetence head of a household, the only thing they would do was drawing; however, none of the reasons stopped them from participating in the world of artists during the Korean War, which was really important and encouraging. Even Korean War was aroused in Korea, Korea wasnot the main subject of the war, and it started due to ideological conflicts. Therefore, the fact that Korean War was a definite agony should not be taken out of consideration. It was not possible for artists’organization, art institutions, or individuals to express their ideology fully after the war, since the anti-communism sentiment had become even more justified, compared to initial stage of establishing a country. They had to face the limited reality where secular success and breakdown were decided by their ideological propensity.
The change in formation of human footsteps had also existed in South Korea; Lim, Ho and Lee, Jun had movedto Busan from Masan, and as armistice started, Lee, Jun had remarkably exposed himself through 2n the National Art Exhibition in Seoul. The movement of artists was not only crossing over the border to South or North Korea, but some artists settled in rural regions, and some came up to Seoul from rural areas. Even changing their place of residence as refugees, artists maintained their identity by opening art exhibitions constantly and not giving up on creating artworks.
There never had been that direct and active way of interchange in art between the rural and central regions. Artists were impressed by their surrounding environments and significances, thus they portrayed it in their artworks in anyway. Several scenery of Busan by Park, Go-suk, and Jeju Island’s scenery by Lee, Jung-Sup are the examples. Also, the artists of modernism line from other regions’, especially Seoul, had stimulated artists living in Busan. It should be noted that, the fact of having in-depth discussion about their regional coloration among the artists had led them to become more interested in the tradition, and it even extended the field of art.
By understanding the relations between the rural and central, the refugee artists and regional artists, respectively, were unilaterally influential relations they even disagreed on the fact that it was cultural exchange or cultural shock since they impactedeach other negatively. Even during that time, that kind of viewpoint had become the background of setting the ‘central modernism vs. rural tradition’ dualistic perception.
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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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KCI등재 |
2017-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등재 |
2014-04-09 | 학술지명변경 | 외국어명 : 미등록 -> Journal of Koreanology | KCI등재 |
2013-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1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09-05-26 | 학회명변경 | 영문명 : Center for Korean Studies Pusan National University -> Korean Studies Institute, Pusan National University | KCI등재 |
2007-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KCI등재 |
2006-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4-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
2016 | 0.91 | 0.91 | 0.82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0.83 | 0.83 | 1.368 | 0.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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