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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강점 전후 『경성신보』와 재한일본인사회의 동향 = A Tendency of Keijosinpo and Japanese residents in Korea before and after the Japanese Annexation of Korea
저자
김태현 (고베대학)
발행기관
학술지명
권호사항
발행연도
2011
작성언어
Korean
주제어
등재정보
KCI등재
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5-40(36쪽)
KCI 피인용횟수
9
제공처
This research explored the tendency of a japanese private newspaper Keijosinpo issued in Seoul from 1907 to 1912 by Minegishi Shigetaro and Japanese residents in Korea before and after the Japanese Annexation of Korea.
Minegishi Shigetaro had been engaged in the south sea development. After that he worked at The Tokyo economist(『東京經濟雜誌』) as a journalist through the introduction of Taguchi Ukichi(田口卯吉) who known as a historian and an economist. And he had strong relationship with a politician of towering stature and a senior bureaucrat such as Okuma Shigenobu(大隈重信) and Kiuchi Jushiro(木内重四郎). Before publishing Keijosinpo in Korea, he acted as a Japanese masterless samurai aiming at occupying a colony with Uchida Ryohei(内田良平) who was the leader of Kokuryukai(黑龍會) and a pro-japanese group Ilchinhoe(一進會).
Keijosinpo had been asserted an aggressive colonial policy on Korea, severely criticized the Resident-General Ito Hirobumi and his moderate policy.
Therefore it can be said that Keijosinpo worked as one of the unofficial colonial power which spread the opinion of the external hard-liners who asked more radical and powerful control to Korea before the Japanese Annexation of Korea.
Some articles in Keijosinpo tell that the Japanese Annexation of Korea was not an affair that settled rulership of japanese residents in Korea, but meant a critical moment shaking their social position, and made them to the governed whom treated equally with Korean.
To deny such equalization, Keijosinpo reproduced the discourse that discriminate between Japanese and Korean, for example ‘Imperial Subject’ and ‘Colonial Subject’. And Keijosinpo took a stand against the assimilationism that was based on the Japanese colonial policy against colonial Korea.
개항 이후 한국에서 배타적인 이권을 선점하기 위해 개항장을 중심으로 몰려든 일본인들은 한국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자신들의 이권을 대변하기 위해 일찍부터 신문을 발행했다. 본 연구에서는 이들 신문 중 일본의 한국강점을 전후한 시기에 미네기시 시게타로라는 인물이 경성에서 발행한『경성신보』(1907.11~1912.2)의 언론활동과 이 신문에 나타난 재한일본인사회의 동향을 고찰했다.
『경성신보』의 사장인 미네기시는 미토水戸 출신으로 남양군도와 하와이 등지에서 남방개척사업에 종사했던 인물이다. 다구치 우키치田口卯吉와의 인연으로 『東京經濟雜誌』에서 활동하기도 한 미네기시는 오쿠마 시게노부大隈重信와 키우치 주시로木内重四郎 등과 같은 일본 내 유력 정치가와 관료와도 깊은 관계를 맺고 있었다. 『경성신보』를 발행하기 수개월 전부터 한국에 들어 와 있었던 미네기시는 흑룡회의 중심인물인 우치다 료헤이内田良平를 비롯한 대륙낭인들과 친일파 일진회와도 인연을 맺고 이른바 낭인활동을 전개했던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제국주의적 팽창과 식민세력의 확대를 도모하기 위해 창간된 『경성신보』는 재한일본인사회의 일원으로서 재한일본인의 특권과 이익을 대변하는 동시에 이토 통감의 한국경영 노선에 대한 비판과 제국주의 일본의 팽창주의적 여론을 반영했다. 이 과정에서 『경성신보』는 일본 내의 대외강경파 정치세력들과 식민지 경영론을 공유하면서 한국강점의 조기시행을 주저하는 통감부를 비판했다. 따라서 『경성신보』는 일본의 한국강점 과정에서 일본정부와 통감부의 대한對韓정책을 비판하고, 급진적이며 팽창적인 제국주의적 실천을 요구했던 일본 내의 대외강경론을 피보호국 현지에서 전파하고 실천하려 했던 비공식적 식민권력으로 기능했다고 볼 수 있다.
『경성신보』는 재한일본인을 제국주의 실천의 주체라고 호명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식민지 개발의 담당자로서 그 자질이 부족하다고 지적하는 모순을 보였다. 제국주의 일본은 한국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한국인을 비문명인으로 타자화하는 동시에 일본인의 민족적 우월성을 강조할 필요가 있었다. 한국에서 한국인과 직접 대면하고 있는 재한일본인에게 그러한 우월성은 더욱 더 요구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재한일본인들은 본질적으로 우월한 존재가 아니었고, 그 때문에 『경성신보』는 재한일본인의 부족한 자질을 담론의 차원에서 허위적으로 구성된 우월성으로 윤색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경성신보』는 한국강점을 재한일본인의 기득권과 지배국민으로서의 사회적 지위를 위협하는 위기적 사건으로 파악하기도 했다. 즉 일본의 한국지배를 정당화하는 ‘지배국민-피지배국민’의 위계적 구도가 ‘한국병합’으로 인해 붕괴되어, 지배국민으로 대우받아야 할 재한일본인이 피지배국민인 한국인과 동일한 사회적 지위를 지니는 피통치자로 전락할 것이라는 위기의식을 보였던 것이다. 이러한 동질화를 거부하기 위해 『경성신보』는 Imperial Subject-Colonial Subject와 같은 일본인과 한국인의 새로운 차이와 차별의 논리를 만들어 내었고, 이는 식민지 권력기관이 내세웠던 동화주의 노선을 반대하는 근거로 기능했다.
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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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KCI등재 |
2017-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등재 |
2013-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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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0.81 | 0.81 | 0.7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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