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I등재
일제강점기 한양 도성 안 동북부 지역의 중상류층 지역화 과정 = The process of being a middle–upper class town of Northeastern areas within Seoul city wall during the Japanese colonization period
저자
발행기관
학술지명
권호사항
발행연도
2017
작성언어
Korean
주제어
등재정보
KCI등재
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161-213(53쪽)
KCI 피인용횟수
1
DOI식별코드
제공처
소장기관
20세기 초 경성은 조선시대 한양의 도시 공간에서 변화해가고 있었다. 본 연구는 제한된 개발이 이루어지던 조선시대 한양도성 안 동부지역이 개항기를 거쳐 일제강점기로 들어서서 대규모 개발이 나타난 양상에 초점을 두었다. 연구의 목적은 지역 내 자리하는 시설과 그에 따라 변화하는 지역 개발, 그리고 이로 인해 유입되는 주민을 종합적으로 분석하여 지역의 정체성을 정립하는 것이다. 특히, 본 연구는 GIS를 연구방법으로 활용하여 지도와 데이터를 시각화함으로써 연구의 이해를 도왔다.
개항기 도성 안 다른 지역에 비해 비교적 외세의 영향을 받지 않은 동부지역은 저발전 지역으로 남아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도성 안임에도 불구하고, 저렴한 지가(地價)로 대규모 부지 확보가 가능하여 대규모 시설이 들어서는 계기가 되었다. 1900년대 낙산 근처에 세워진 만 여 평 부지의 공업전습소는 당시 일본 통감부의 관심과 경제적 지원을 받을 정도의 국가 중요 시설 중 하나였다. 연건동에 설립된 49,000평의 대한의원 또한 주로 일본인과 일부 경제력을 갖춘 조선인이 이용하는 시설이었다. 혜화동에는 통감부의 허가를 받은 3만 여 평의 독일 수도원이 건설되었다. 수도원은 도시 공간 내에 자급자족 가능한 독일마을을 조성해 이국적인 분위기를 만들어갔다. 1910년대, 공업전습소는 중앙시험소 추가 건설과 함께, 관립 공업전문학교로 승격해 그 중요성을 더욱 인정받았다. 대한의원 역시 총독부의원으로 전환하면서 규모를 확장하고, 관립 의학전문학교를 두어 역할을 확대했다. 동북부 지역에 설립된 대규모 시설은 사람들의 잦은 왕래를 유발하여 동북부 지역의 도로 정비와 전차 노선 확충 사업을 촉진시켰다. 이후 1920년대에는 연건동과 동숭동에 총독부의원을 포함한 총 9만 2천 평으로 경성제대 본과 캠퍼스가 설립되었다. 또한 동북부 지역의 발전과 함께, 1920년대와 30년대 전차 노선이 추가적으로 완공되었다.
동북부 지역의 위와 같은 대규모 시설 입지는 도로 정비 및 전차 노선 확충을 야기했고, 주거지 개발을 이루었다. 시구개수사업 재정 마련을 위해 매각한 경성부 소유의 동북부 지역 토지는 밭과 임야에서 필지 분할과 함께 주거로 용도가 변경되었다. 이와 더불어 지역의 입지 시설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위한 주거지가 개발되었다. 또한 대부분 교외지역에 중상층을 위해 건설되는 문화주택지가 동북부 지역에 들어섰다. 이에 따라 동북부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은 입지 시설과 관련한 관료와 교수, 의사를 포함해 언론인, 자본가 등 소수로 구성된 중간 계층 이상의 경제력을 갖춘 이들이었다.
즉, 일제강점기 동북부 지역은 공지활용개발의 형태로 도시 내 빈 공간에 대규모 시설이 자리함에 따라 지역 개발이 이루어져 일정 수준 이상의 경제력을 지닌 집단이 거주하는 지역으로 성장하였다. 거주민은 고위공직자와 대자본가는 아니지만, 중상층에 해당하는 직업군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이 거주하는 동북부 지역은 ‘문화촌’으로 불리며 일제강점기 새로운 중상류층 지역으로 떠올랐다.
주제어 중상류층 지역, 공지활용개발, 혜화동, 명륜동, 주거지 개발
At the beginning of the 20th century, Kyung–Sung was changing from the urban space of Hanyang in the Joseon Dynasty. This study examines the northeastern area within Hanyang city wall. Although the developments in the northeastern area were restricted during the Joseon Dynasty, large–scale development projects were undertaken through the port opening era during Japanese colonial rule.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reestablish the identity of region by analyzing the facilities in the area, their impacts on the community development, and the residents who moved in after the developments. This study utilized GIS as a research method to visualize maps and data.
Because the northeastern area was relatively unaffected by foreign affairs, it remained underdeveloped compared to other regions during the port opening era. For this reason, it was possible to acquire large–scale sites with low land prices and build the large–scale facilities despite its location within the city wall. In the 1900's, the industry inheritance school(工業傳習所), built near the mountain Nak(駱山), was one of the nation's most important facilities that received the attention and economic support from the Japanese resident–general office. Daehan hospital(大韓醫院), which was established in Yeongeon–dong, was also a crucial facility because it mainly provided services to Japanese and some Koreans who were financially stable. In Hyehwa–dong, a German monastery with the permission of the Japanese resident–general office was built. The monastery promoted a self–sufficient German town and created an exotic atmosphere.
In the 1910's, the industry inheritance school(工業傳習所) was promoted to the government specialized school of industry(工業專門學校), along with the additional construction of the central research laboratory(中央試驗所). Also, the size of the Daehan hospital(大韓醫院) increased after it changed to the hospital of the Government General of Korea(總督府醫院). Besides, it expanded its role by establishing the government specialized school of medical science(醫學專門學校). The large–scale facilities established in the northeastern area not only encouraged people to come and go frequently, but also promoted the road maintenance and tram route expansion projects. After then, Kyung–sung Imperial University’s main campus was built in Yeongeon–dong and Dongsung–dong in the 1920's. In addition, along with the development of the northeastern area, the tram line was further completed in the 1920's and 30's.
Those of the large–scale facility located in the northeastern region caused the development of residential areas. The land in the northeastern area owned by Kyung–sung government, which was sold for financing for Kyung–sung city street improvement project(京城市區改修事業), was changed to a residential area from agricultural land and forest with parcels division. In addition, a residential town for people who were engaged in the local facilities began to appear. Furthermore, Munhwa residential area(文化住宅地), mostly built in suburbs for the upper middle class, emerged in the northeastern area. As a result, the residents of the northeastern area were economically stronger than the typical middle class, consisting of administrative officer, professors, doctors, and journalists and capitalists.
In other words, as Infill Development, since the large scale institutions were established in the northeastern region during Japanese colonial era, it was developed into the area where the groups holding economic strength resided. Although the residents were not a high–ranking government official or a mammoth capitalist, they had an occupation belonged to the upper middle class. The northeastern area, thus, emerged as a middle–upper class town called Munhwa town(文化村) during Japanese colonial era.
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
2026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KCI등재 |
2017-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등재 |
2016-02-26 | 학술지명변경 | 외국어명 : The History of Seoul -> Seoul and History | KCI등재 |
2016-02-03 | 학술지명변경 | 한글명 : 鄕土서울 -> 서울과 역사외국어명 : The Hyangto Seoul -> The History of Seoul | KCI등재 |
2015-10-22 | 학회명변경 | 한글명 :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 서울역사편찬원영문명 : The City History Compilation Committee Of Seoul -> Seoul Historiography Institute | KCI등재 |
2013-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1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KCI등재 |
2009-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7-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
2016 | 0.27 | 0.27 | 0.34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0.35 | 0.33 | 1.024 | 0.04 |
서지정보 내보내기(Export)
닫기소장기관 정보
닫기권호소장정보
닫기오류접수
닫기오류 접수 확인
닫기음성서비스 신청
닫기음성서비스 신청 확인
닫기이용약관
닫기학술연구정보서비스 이용약관 (2017년 1월 1일 ~ 현재 적용)
학술연구정보서비스(이하 RISS)는 정보주체의 자유와 권리 보호를 위해 「개인정보 보호법」 및 관계 법령이 정한 바를 준수하여, 적법하게 개인정보를 처리하고 안전하게 관리하고 있습니다. 이에 「개인정보 보호법」 제30조에 따라 정보주체에게 개인정보 처리에 관한 절차 및 기준을 안내하고, 이와 관련한 고충을 신속하고 원활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개인정보 처리방침을 수립·공개합니다.
주요 개인정보 처리 표시(라벨링)
목 차
3년
또는 회원탈퇴시까지5년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3년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2년
이상(개인정보보호위원회 : 개인정보의 안전성 확보조치 기준)개인정보파일의 명칭 | 운영근거 / 처리목적 | 개인정보파일에 기록되는 개인정보의 항목 | 보유기간 | |
---|---|---|---|---|
학술연구정보서비스 이용자 가입정보 파일 | 한국교육학술정보원법 | 필수 | ID, 비밀번호, 성명, 생년월일, 신분(직업구분), 이메일, 소속분야, 웹진메일 수신동의 여부 | 3년 또는 탈퇴시 |
선택 | 소속기관명, 소속도서관명, 학과/부서명, 학번/직원번호, 휴대전화, 주소 |
구분 | 담당자 | 연락처 |
---|---|---|
KERIS 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정보보호본부 김태우 | - 이메일 : lsy@keris.or.kr - 전화번호 : 053-714-0439 - 팩스번호 : 053-714-0195 |
KERIS 개인정보 보호담당자 | 개인정보보호부 이상엽 | |
RISS 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대학학술본부 장금연 | - 이메일 : giltizen@keris.or.kr - 전화번호 : 053-714-0149 - 팩스번호 : 053-714-0194 |
RISS 개인정보 보호담당자 | 학술진흥부 길원진 |
자동로그아웃 안내
닫기인증오류 안내
닫기귀하께서는 휴면계정 전환 후 1년동안 회원정보 수집 및 이용에 대한
재동의를 하지 않으신 관계로 개인정보가 삭제되었습니다.
(참조 : RISS 이용약관 및 개인정보처리방침)
신규회원으로 가입하여 이용 부탁 드리며, 추가 문의는 고객센터로 연락 바랍니다.
- 기존 아이디 재사용 불가
휴면계정 안내
RISS는 [표준개인정보 보호지침]에 따라 2년을 주기로 개인정보 수집·이용에 관하여 (재)동의를 받고 있으며, (재)동의를 하지 않을 경우, 휴면계정으로 전환됩니다.
(※ 휴면계정은 원문이용 및 복사/대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습니다.)
휴면계정으로 전환된 후 1년간 회원정보 수집·이용에 대한 재동의를 하지 않을 경우, RISS에서 자동탈퇴 및 개인정보가 삭제처리 됩니다.
고객센터 1599-3122
ARS번호+1번(회원가입 및 정보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