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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원군집정기(大院君執政期) 조선사회(朝鮮社會)의 변화(變化)와 발전(發展) : James B. Palais의 “Politics and Policy in Traditional Korea”에 대한 서평 논문 = Changes and Developments of the Chosŏn Society in the Daewongun Period: A book review of the James B. Palais’s “Politics and Policy in Traditional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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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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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3-532(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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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목적은 해외 한국학의 거장인 팔레 교수의 『Politics and Policy in Traditional Korea』(Cambridge: East Asian Research Center, Harvard University,1975); 이훈상 역, 『傳統韓國의 政治와 政策』(신원문화사, 1993)에 대한 서평을 통해 대원군 시대의 변화와 발전을 이해해 보고자 하는데 있다. 대원군이 추진한 개혁을 분석하는 팔레의 관점은 ‘평형’과 ‘한계조정’이었다. 조선은 국왕과 양반이 서로 대립하면서도 동시에 서로 의존하는 평형을 유지했고, 간혹 문제가 생기면 한계조정이라는 최소한도의 조치를 취함으로서 다시 평형을 이루었다고 하였다. 이러한 관점에서 분석한 대원군의 개혁정치에 관해 평자는 다음 몇 가지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평형과 한계조정의 관점: 왕과 관료가 권력 균형을 유지하던 조선사회를 평형의 관점으로 분석한 것은 매우 적절한 것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평형의 관점으로 역사를 설명한다면 애당초 변화를 설명할 수 있는가는 의문이다. 왕이나 관료들이 어떤 이유로든 그 자리를 떠나지 않는 한 그 자체는 평형을 이루고 있었다. 하지만 왕과 관료가 평형을 유지하여 서로 공존하고 있는 조건 내지 기준은 바뀔 수 있다. 그러한 내용의 차이를 가리고 의미를 밝혀내는 일이 보다 중요하지 않을까 한다.
개혁을 분석하는 기준: 그는 대원군의 개혁을 ‘실패했다(failed)’고 전제한 뒤 그 실패한 이유를 분석하겠다고 하였다. 대원군이 취한 정책으로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것이 아무리 작은 변화일지라도 그 의미는 당연히 ‘개혁적 성격’을 지닌 것으로 평가해야 할 것이다. 역사에서 사회의 ‘전면적인 변화’를 가져온 개혁은 오히려 예외적인 몇 개의 경우일 뿐이다.
개혁을 추진하는 주체: 팔레는 개혁을 추진해 나가려면 강력한 권위 창출이 필요한데 평형을 유지하며 한계조정을 취해 온 조선 사회 구조는 결코 강력하고 효과적인 중앙의 권위를 창출할 수 없다고 지적하였다. 이에 비해 명치시대 일본 천황권의 중흥을 전근대 사회에서 근대 사회로의 전환기에 나타난 역사적 산물로 평가하였다. 그런데 강력한 왕권과 중앙정부가 있어야만 근대화로 나아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설사 그렇다 해도 당시 조선의 왕권과 중앙 정부의 위력은 충분히 강하였다. 또한 개혁은 국왕이나 지배층이 주도할 수도 있지만, 그것을 바라는 많은 사람의 의지와 참여로 진행되기도 한다. 이미 한국 사회는 그러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개혁정치의 성격: 대원군 개혁정치는 조선의 왕조 체제를 변혁하려는 의도가 없었으므로 ‘보수적’이었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즉각 결실을 거둘 수 있는 방식을 취했으므로 ‘실용적’ 이었다고 하였다. 그런데 동양이나 서양을 막론하고 전통사회에서의 개혁은 거의 왕정을 유지하는 방향에서 이루어졌다. 그의 논의를 따르면 孔子나 孟子나 王安石이나 수많은 개혁가들이 모두 보수주의자들일 수밖에 없다. 대원군은 여러 분야에 걸친 제도적인 개혁을 과감하게 추진한 인물이었다. 이 점에서 그는 개혁주의자라고 해야 마땅하다.
개혁이 좌절된 원인: 그는 19세기 조선이 전형적인 왕조의 몰락과 실정의 시기였다고 하여 그 약체와 부패가 일본제국주의 침략에 못지않은 정도로 국가를 소멸시킨 원인이라고 지적하였다. 그러나 그 당시 조선에서 벌어지고 있던 정치가 설사 더 심각한 상황이었다 해도, 그것을 조선이 멸망할 수밖에 없는 원인으로 지적하기는 곤란하다. 이러한 개혁 실패론은 자칫 조선사회의 근대화 실패론과 연결될 수 있다.
조선의 멸망 원인으로 고종의 무능력도 지적되었다. 하지만 조선이 멸망한 원인은 내부에 강력한 지도자의 유무가 아니라 제국주의의 침략이라는 외부적 요인이 보다 결정적이었다. 대원군이 취했던 쇄국정책도 조선이 멸망한 탓으로 몰기는 곤란하다. 외압이 심각해 질 때 전통사회가 취하는 정책의 기본은 대개 비슷하였다. 한국은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전에 침략을 받아 나라의 운명이 달라졌을 뿐이다.
19세기 이후 조선은 한국 역사에서 유래가 없는 변화의 시기였다. 그 이전부터 있어온 조선사회의 변화가 전제되지 않는다면 그러한 변화는 설명할 도리가 없다. 그 변화의 길목에 있던 대원군 집정기의 개혁도 한국 사회에 일어나고 있던 변화의 큰 흐름 속에서 다시 이해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한다.
The purpose of this writing is to understand the social changes and developments in the Daewongun period through a book review of the James B. Palais’s “Politics and Policy in Traditional Korea”(Cambridge: East Asian Research Center, Harvard University, 1975).
Palais’s viewpoint centers around equilibrium and marginal adjustment as a means to analyze Daewongun’s reforms. He argues that the King and Yangban of the Chosŏn Dynasty were in confrontation with each other while simultaneously maintaining the equilibrium with kind of a mutual interdependence. However, if the problem occurs in between them, according to Palais they apparently attempted to restore said equilibrium by taking minimal action with marginal adjustment. From this perspective, I will mention a few things about his analysis of Daewongun’s reforms.
First, the viewpoint of analysis on reform:
Palais’s argument is based upon a premise that Daewongun’s reforms was a ‘failure’ and he thus attempts to analyze said failure. Nevertheless, it seems likely that if we try to explain history with such an unwarranted focus on equilibrium, it may be difficult to account for successive change accumulated from the beginning. It is possible to say that the King or officials are in an equilibrium unless they do not leave their inherent position within the holistic place of things. However, the particular conditions or criteria in which the King and other officials are able to coexist to each other may be altered to remain in this equilibrium. Hence, it would be more important to find out the difference and to reveal the meaning of such contents. In the point of marginal adjustment, it is difficult to say that Daewongun’s reforms failed because his reform did not bring ‘sweeping changes’ in the Chosŏn society. If there is something to be changed by Daewongun’s reforms, it, of course, should be evaluated with certain ‘reformative characters.’ To be more specific, a supposedly legitimate account of reforms should encompass even the smallest of changes.
Second, the subject who promote reform:
Palais says that powerful authority is an absolute requirement to promote reform. He further says that the social structure of Chosŏn could not create a powerful and authoritative central government because of its habitual need to implement marginal adjustments for the sake of equilibrium. However, it is not sufficiently argued for that a modern society must conditionally have a powerful Royal authority and a central government. Even if it were so, evidence suggests that the royal authority of Chosŏn and the central government was strong enough at that time. Thus, it seems Palais’ conditional linking between a modern society and central authority is faulty in some noticeable aspects. Furthermore, reforms may indeed be lead firsthand by the King or ruling class but many people who truly desire progress can actualize it with their respective commitment and participation. Korean society was advancing toward that direction.
Third, character of reformative politics:
Palais said that reformative politics of Daewongun was ‘conservative’ because he did not intend to reform the system of the Choson dynasty and characterized his way as ‘practical’ because his methodology was focused on immediate fruition of aforementioned reforms. Whether in the East or the West, accomplished reform within traditional societies almost always were in a direction of maintaining the Royal regime. Daewongun was a person who promoted drastic institutional reform in various fields. In this regard, Daewongun deserves to be called a reformist. In addition, all reforms are bound to have some practical nature with the purpose of actual use.
Forth, The cause of the reform break down:
Palais indicated that 19th-century Chosŏn Dynasty was a typical case reflecting the contemporary trend of the downfall of traditional nation-states. He further posited corruption and weakness as contributing causes, of no less in magnitude compared to the Japanese invasion, that triggered the downfall of the Chosŏn dynasty. Yet even though the political circumstances of Chosŏn was by no means sound, it is quite a bold claim to suggest that Chosŏn was in fact forced into collapse for such reasons. Palais also indicated that King(Emperor) Kojong’s administrative inability was a noticeable cause leading to the fall of the Chosŏn Dynasty. However, external factors such as invasion and imperialism appear to have more decisive and observable consequences that ultimately lead to the fall of the Chosŏn dynasty. So such internal factors as the presence or absence of a powerful central authority, while not entirely negligible, cannot be pointed as direct triggers or causes to the fall of the Chosŏn Dynasty. Moreover, it is difficult to argue that Daewongun’s policy of seclusion led to the downfall of Chosŏn. When foreign pressure intensifies, the natural response of traditional societies is to equally strengthen and revise their corresponding modes of social and political organization. Before advancing to the next step, Korea has been invaded by foreign powers and its fate had been changed.
After the 19th century, Chosŏn Dynasty went through a period of unprecedented change in Korean history. If the pre-existing change in the Chosŏn society is not at all a prerequisite for the newer changes, one can not properly explain these change in any other way. The period of Daewongun’s reform at a crossroad of changes should be understand again with a big change going on in Korean society.
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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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7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1-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KCI등재 |
2018-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15-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11-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KCI등재 |
2010-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8-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2006-07-12 | 학회명변경 | 영문명 : Institute of Korean Studies -> Center for Korean Studies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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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0.75 | 0.75 | 0.6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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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 | 0.59 | 1.314 | 0.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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