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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7년 일본 사행록 『해동기(海東記)』 저자에 관한 시론(試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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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작성언어
Korean
주제어
KDC
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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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127-157(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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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7년 사행록 『해동기』는 장희춘(蔣希春, 1556-1618)의 『성재실기(誠齋實記)』에 실려 있다. 『해동기』가 장희춘이 저술한 사행록으로 전해져 왔으나 같은 시기 사행록인 경섬의 『해사록』에서 장희춘의 이름을 발견할 수 없는 점과 『성재실기』에 실린 장희춘의 행적과 여타 사료에 보이는 장희춘의 행적이 일치하지는 않는 점 때문에 『해동기』에 관한 기존 연구는 장희춘이 『해동기』 저자가 맞음을 증명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왔다. 그러나 회답겸쇄환사의 선발 과정과 『해동기』의 내용을 검토한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하였다. 첫째, 1607년 회답겸쇄환사를 처음 파견할 당시 원역 선발과 파견은 매우 엄격하게 이루어졌으므로 경섬의 『해사록에 실린 사행인원은 정확한 것이다. 또 『해동기』에 보이는 저자에 관한 유일한 단서는 김억추와 “同年”이라는 것이다. 장희춘은 사행 원역 명단에 올라 있지 않고 김억추와 “동년”도 아니기 때문에 『해동기』의 저자가 될 수 없다. 둘째, 저자는 정사 여우길과 여정을 함께 하였고 정사 소속 군관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해동기』 내에 타인으로서 기술된 인물과 저자와 여정이 일치하지 않는 정사 소속 군관을 제외하면 『해동기』의 저자로 가장 가능성 있는 인물은 정사의 자제 군관 강원(康遠)이다. 또한 종사관 소속 강득서가 본래 정사 소속이었다면 그도 『해동기』 저자일 가능성이 있다. 셋째, 실록 및 『해행록』을 살펴보면 장희춘은 회답겸쇄환사가 아닌 1606년 일본 차관 전계신을 따라 쓰시마에 다녀왔거나 사행기간 동안 조정의 자문을 위해 한양 도성에 머물렀을 가능성이 있다. 대일 전문가로서 다른 사람이 저술한 『해동기』를 입수한 것으로 보는 것이 정황상 부합하는 추론이다. 장희춘은 임진왜란 시기 일본과의 관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고 이후 중앙에서도 대일전문가로 인정을 받았던 인물이다. 다만 이상의 결론을 종합하여 보면 장희춘이 회답겸쇄환사의 일행으로 일본에 다녀와 『해동기』를 저술하였다고 보기 어렵다. 따라서 장희춘은 울산 지역 중심으로 활동하였던 대일전문가로서 연구되어야 하고, 『해동기』는 『해동기』 대로 저자가 미상일지라도 1607년 회답겸쇄환사의 정사소속 군관이 작성한 사행록으로 다루어져야 한다.
더보기Envoy’s record 『Haedonggi』 is put on Jang-huichun(蔣希春, 1556-1618)’s the other record, named 『Seongjaesilgi(誠齋實記)』. It have been suggested that 『Haedonggi』 was written by Jang-huichun, however, because of two reasons for him not writing the record, the study on 『Haedonggi』 have focused on verifying whether Jang-huichun was a real writer of the record. The first reason of that claim is that people couldn’t have found a name of Jang-huichun in the Gyeong-sum’s record called 『Haesarok』 which was written around the same time, second, his track put on 『Seongjaesilgi』 was not correspond with others materials. However, as below, a conlusion was drawn based on the content of 『Haedonggi』 and the selection process of dispatch of reply and prisoner repatriation envoy(回答兼刷還使). Firstly, when the dispatch of reply and prisoner repatriation envoy was sent in 1670, the worker(Wonyeok) selection process and dispatch were extremely rigorous. Therefore, the number of envoy put on 『Haesarok』 was correct. Moreover, the writer’s age is the only key of him, which was same with Kim-eokchu. Nevertheless, Jang-huichun wasn’t on the envoy list and the same age with Kim-eokchu, he couldn’t be the writer of 『Haedonggi』. Secondly, the writer had worked together with Yeo-ugil affiliated with registry and on good terms with registry army. However, except for the registry army who was not correspond with the other character and the writer written in 『Haedonggi』, the most probable man is soldier Gang-won who was son of registry. If Gang-deukseo affiliated with Jongsagwan was originally belonging to registry, he was the one has possibility, too. Thirdly, in accordance with annals and 『Haehaengrok』 Jang-huichun went to Tsushima island with Japanese vice-minister Jeon-gyesin, not the dispatch of reply and prisoner repatriation envoy in 1606, or stayed at Hanyang in order to seek advice from a royal court during carrying out as a role of envoy. Therefore, from the given circumstances it is reasonable to infer that another wrote 『Haedonggi』 and got it. Jang-huichun had played a great important role with Japan during Japanese Invasion of Korea, thereafter, recognized as a expert with Japan from the central office. In light of the above, it is hard to say Jang-huichun went to Japan as a member of the dispatch of reply and prisoner repatriation envoy, then wrote 『Haedonggi』. Therefore, Jang-huichun should be studied as a expert with Japan mostly working in Ulsan area and even 『Haedonggi』’s writer is unknowness it should be regarded as a envoy’s record written by registry ar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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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등재 |
2016-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등재 |
2012-01-01 | 평가 | 등재 1차 FAIL (등재유지) | KCI등재 |
2009-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KCI등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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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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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0.54 | 0.54 | 0.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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