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의 태안반도 진출과 서산 부장리 세력 = Expansion of Baekje into Taean Peninsula and Power of Seosan Bujangri
저자
이경복 (충남발전연구원 부설 충남역사문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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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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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연도
2009
작성언어
Korean
주제어
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5-37(33쪽)
KCI 피인용횟수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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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the area of Taean Peninsula in 3rd~4th century, diverse local powers existed as they were checked in the remains of Seosan Myeongjiri, Gijiri, Eonamri, Danjin Chaeunri, Seokuri and Gagokri. They made pit tomb and Punku tomb as well as four-stand house with strong tradition of Mahan. The study could see that the powers of Seosan Myeongjiri and Seosan Gijiri were stronger than powers in other areas since simple-pattern swords with ring handle were excavated in the areas. And in the area of Taean Peninsula, the Seosan area where swords with ring handle got smaller influence from Baekje than the Dangjin area where Baekje remains were excavated.
By the way, in the 5th century, the Seosan Bujangri power overwhelmed other powers. The Seosan Bujangri power was distinguished with merits that Taean Peninsula was the unique area of iron production in South Chungcheong and a production area of abundant salt and was a traffic route connecting Gyeonggi Port with Cheonsu Port through inland, not passing through rough Anheungryang which was a sea route in the east side of Taean Peninsula.
Baekje attempted to dominate Seosan Bujangri power by giving them Royal gifts such as gold-made crown, gold-made shoes and swords with ring handle inlayed by silver. However, Cheonan Yongwonri, Gongju Suchonri and Iksan Imjeomri where gold-made crown was excavated were checked in Baekje-style stone chamber tomb and stone chamber with tunnel entrance. However, in Seosan Bujangri, it was excavated in Punku tomb with strong tradition of Mahan. Therefore, the Seosan Bujangri power had relatively stronger independence than other areas. It is guessed that the Seosan Bujangri power was recognized to be the leading power of Taean area by being granted Royal gifts from Baekje and paid iron and salt to Baekje.
However, in AD 475 years, a sea route passing through Taean Peninsula was intercepted by Koguryeo since Hanseong, the capital of Baekje, was fallen by Koguryeo. After that, local powers focused on Seosan Bujangri were dwindled by getting a large impact. Examining remains excavated in the area of Taean Peninsula, Mahan-style tombs were not checked more after 5th century. On the other hand, the study could check the aspect since stone chamber tombs known to be a Baekje-style tomb were checked. Especially, stone chamber with tunnel entrance exists in the Taean area where any remains were not checked in 4th~5th century. Therefore, the study could see that Baekje dominated the areas directly since local powers of the Taean Peninsula were fallen in 6th~7th century.
3~4세기대 태안반도 유역에는 서산 명지리ㆍ기지리ㆍ언암리 등과 당진 채운리ㆍ석우리ㆍ가곡리 등의 유적에서 확인되듯이 다양한 재지세력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이들 세력은 마한의 전통이 강한 주거형태인 4주식 주거지와 토광묘, 분구묘를 조성하고 있었다. 이중 서산 명지리ㆍ기지리 세력은 소문환두대도가 출토되고 있어 다른 지역의 세력보다 높은 위상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태안반도 유역에서도 환두대도가 출토되는 서산 지역은 백제계 유물이 출토되는 당진 지역보다 백제의 영향력을 적게 받고 있었다.
그런데 5세기에 들어 서산 부장리 세력이 다른 세력을 압도하였다. 서산 부장리 세력은 태안반도가 충남 유일의 철 생산지란 점, 풍부한 소금 생산지라는 점과 더불어 태안반도 동쪽의 바닷길인 험난한 안흥량을 거치지 않고 내륙을 통해 아산만과 천수만을 이어줄 수 있는 교통로라는 이점을 배경으로 부상하였다.
백제에서는 서산 부장리 세력에게 금동관모와 금동신발, 그리고 은상감환두대도 등 위세품을 하사하여 통제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금동관모가 출토된 천안 용원리, 공주 수촌리, 익산 입점리 등은 주로 백제계 수혈식 석곽묘와 횡혈식 석실분에서 확인되었는데, 서산 부장리에서는 마한계 전통이 강한 분구묘에서 출토되고 있어 다른 지역보다 상대적으로 독립성을 지녔을 것이라 여겨진다. 서산 부장리 세력은 백제로부터 위세품을 하사받아 태안반도 지역의 맹주로 인정받았고, 철과 소금 등 공납의 의무를 수행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475년 백제의 한성함락으로 인해 태안반도 일대를 거치는 바닷길이 고구려에 의해 차단되어 서산 부장리를 중심으로 하는 재지세력들은 큰 타격을 받아 쇠퇴하고 말았다. 태안반도 일대 발굴유적을 살펴보면, 5세기 이후 더 이상의 마한계 분묘가 확인되지 않다. 반면에 백제계 분묘로 알려진 수혈식 석곽묘가 확인되고 있으며, 특히 4~5세기에 아무런 유적이 확인되지 않던 태안 지역에 6~7세기에 이르러 횡혈식 석실분이 존재하는 점을 보아 태안반도 재지세력의 쇠퇴로 말미암아 백제가 이들 지역을 직접 지배하였음을 알 수 있다.
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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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8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2-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KCI등재 |
2019-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등재 |
2016-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계속평가) | KCI등재 |
2014-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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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1.18 | 1.18 | 1.06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0.96 | 0.97 | 2.484 | 0.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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