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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극 반주음악의 단절과 전승 -봉산탈춤을 중심으로- = Continuity and Discontinuity of Music Transmission in Mask Play.
저자
임혜정 (서울대학교)
발행기관
학술지명
한국음악사학보(Journal of the Society for Korean Historico-Musicolo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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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작성언어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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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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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7-232(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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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this article, I tried to partly discuss about the transmission of the accompani- ment music of Pongsan Mask Play known as Pongsan t'alch'um 鳳山탈춤 through the recordings of the 1930s and 1960s.
The accompaniment music of the Pongsan Mask Play album released by Columbia in February 1940 was performed by the Pongsan koaktan 鳳山古楽団. In this record, <T'aryŏng 타령> and <Kukkŏri 굿거리> are recorded as the accompaniment music of Bongsan Mask Play. Among them, <Kukkŏri> played in higher pitch than <T'aryŏng>, and it was confirmed that it has more musical characteristics that are closer to Kyŏngt'ori 경토리, the Kyŏnggido style.
However, the music of Pongsan Mask Play, performed by musicians from the Pongsan area, was difficult to transmit in the mid-1940s. The first half of the 20th century in the history of Korean music is the time when various changes appear. In traditional society, musicians who played music not only in mask play, but also in other music performing arts like shaman ritual known as kut 굿, and military marching band called kunaktae 軍楽隊, had to adapt to the changed environment since the modern times. There have been musicians who have undergone a musical transition from post-modern performances to performing accompaniment to dance or singing, or to pioneering their own genre of music (for example, solo instrumental music called sanjo 散調), while others have not. The activities of musicians in charge of accompaniment music of Pongsan Mask Play in the first half of the 20th century became increasingly difficult. It is also a question to consider whether the music activities were stopped because of the decline in traditional music culture rather than the decline of Pongsan Mask Play.
After the Korean War, efforts to transmit the Pongsan Mask Play began again, as did the accompaniment music. At this time, it was Pak Tong-sin 朴東新 who was in charge of playing the accompaniment music of Pongsan Mask Play. However, as a result of comparing Pongsan Mask Play accompaniment music played by Pak Tong-sin in the 1960s with the recording in the 1930s, the case of <T'aryŏng> showed a relatively similar pattern. However, with regard to <Kukkŏri>, recordings in the 1930s and 1960s were different. It seems that the reason for the different succession of <T'aryŏng> and <Kukkŏri> among the masked accompaniment music of the 1930s seems to be related to the origin and transmission of the two songs and the musical background of the performer Pak Tong-sin.
First of all, <T'aryŏng> was mainly used as a Mask Play accompaniment music in the Haeseo 海西 area of Kyŏnggido 京畿道 (Kyŏnggi province), and in the north of Kyŏnggido. Among them, it is a music that frequently appears in Mask Plays in the Haeseo area. In other words, the melody of <T'aryŏng> was easy to be fixed as the Mask play because it was prevalent in the Hahseo area. Thus, similarities may have been maintained in <T'aryŏng> played by musicians in the Pongsan region and <T'aryŏng> played in the Haeseo region, where Pak Tong-sin was mainly performed. Thanks to this, it is considered that the transmission of the accompaniment music <T'aryŏng> of Pongsan Mask Play was possible without relatively large changes despite the origin, learning, and performing areas of the performer were different.
On the other hand, <Kukkŏri>, played in a mask play, is an accompaniment music that appears in all of the mask play of the Ponsandae nori 본산대놀이, but shows various musical aspects by mask play. And this was also true of the tradition of the accompaniment of Pongsan Mask Play. <Kukkŏri>, which is often seen in shamanic music and folksongs in Kyŏnggido, was also used as the accompaniment music for mask play. In the 1930s, the accompaniment music performance of the Pongsan Mask Play, which was a relatively old period, it was performed while maintaining the characteristics of <Kukkŏri> in Kyŏnggido.
However, <Ku...
본고에서는 봉산탈춤의 1930년대 녹음 자료, 1960년대 녹음 자료를 통해서 부분적이나마 봉산탈춤 반주음악의 전승과 관련해서 종적으로 논의해 보았다.
1940년 2월 콜럼비아사에서 발매한 봉산탈춤 음반의 반주는 해금 방영환(方永煥) 대금 김영환(金永煥) 피리 김학원(金學元) 김성진(金成振) 대고(大鼓) 민칠성(閔七星) 등 일명 “봉산고악단(鳳山古樂團)”이 담당했다. 이 음반에는 묵승무(墨僧舞), 사자무(獅子舞)라는 제목으로 봉산탈춤이 일부가 녹음되어 있으며, 이 때 연주한 반주음악은 <타령>과 <굿거리>였다. 이 두 악곡은 출현음들간의 간격은 동일하지만 <굿거리>가 <타령>보다 장2도 높게 연주하는 악곡으로 송파산대놀이에서 연주되는 굿거리와 유사했다. 이러한 연주 음역은 경기 삼현육각 굿거리와 공통된다. 즉, 유성기음반에 수록된 <굿거리>는 경기지역 굿거리의 음악적 특성을 지니는 악곡이라 판단된다.
그러나 봉산 지역의 악사들에 의해 연주되었던 봉산탈춤의 반주음악은 1940년대 중반에는 전승이 어려워졌다. 한국음악의 역사에서 20세기 전반기는 여러 가지 변화가 나타나는 시점이다. 전통사회에서 가면극뿐만 아니라 광대들의 다른 연희 종목, 굿이나 연회, 군대의 행진에서도 음악을 연주했던 악사들은 근대 이후 변화된 환경에 적응해 나가야 했다. 근대 이후 공연에서 춤이나 노래의 반주 음악을 연주하거나 또는 자신들만의 독자적인 음악 장르를(예를 들면 산조와 같은) 개척하는 활동으로 음악적 전환기를 맞은 악사들도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도 있었다. 20세기 전반기 봉산탈춤의 반주음악을 담당했던 악사들의 활동이 점차 어려워진 것은, 봉산탈춤의 쇠퇴가 원인이라기보다는 전통음악문화의 쇠퇴 자체가 원인이 되었다고도 할 수 있겠다.
한국전쟁 이후 봉산탈춤의 전승을 위한 노력은 다시 시작되었으며 이는 반주음악과 관련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이 때 봉산탈춤 반주음악 연주를 담당했던 것은 박동신이었다. 그런데 박동신이 1960년대 연주한 봉산탈춤 반주음악을 유성기음반에 녹음된 1930년대 봉산탈춤 반주음악과 비교해 본 결과 <타령>의 경우는 비교적 유사한 양상을 띠었다. 그러나 <굿거리>와 관련해서는 유성기음반의 <굿거리>와 1960년대 이후 박동신이 연주하는 <굿거리>는 그 모습이 달랐다. 이렇게 1930년대의 가면극 반주음악 중 <타령>과 <굿거리>의 이후 전승 상황이 달라지는 것은 두 곡의 기원 및 전파, 그리고 박동신이라는 연주자의 음악적 환경과도 관련이 있어 보인다. 우선 <타령>은 주로 경기도와 해서지역의 가면극 반주음악으로 주로 사용되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해서지역의 탈춤에서 빈번하게 등장하는 음악이다. 즉, <타령>은 해서지역에서 탈춤이 성행하면서 그 선율 역시 고정되기 쉬웠다고 본다. 이에 봉산 지역의 악사들이 연주하는 <타령>과 박동신이 주로 활동했던 해주 지역에서 연주했던 <타령>에서 유사성이 유지되었을 수 있다. 그 덕분에 봉산탈춤 반주음악 <타령>의 전승이 해당 연주자의 출신 및 학습, 활동 지역이 달랐음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큰 변화 없이 가능했다고 본다.
한편 가면극에서 연주되는 <굿거리>는 본산대놀이계통 가면극에서 모두 등장하는 반주음악이지만 가면극별로 다양한 음악적 양상을 보인다. 그리고 이는 봉산탈춤 반주음악의 전승 양상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주로 경기도의 무속음악이나 춤 반주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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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07-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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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5 | 0.42 | 0.963 | 0.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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