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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의 남선 순행과 대한독립촉성국민회 지방 조직 확산과 기독교 = SyngMan Rhee’s Southern Itinerary and the Expansion of the Local Organizations of the National Society for the Rapid Realization of the Korean Independence(NSRRKI) and Christian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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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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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은 1946년 4월 16일에 출발하여 6월 9일까지 남선순행을 하였다. 그의 남선순행은 그의 민주의원 의장직의 사임과 미소공위 준비를 위한 반소주의 자인 그의 배제로 중앙정치무대에서 활동하기 어려운 상황이 간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이유이자 목적은 남부지방의 인민위원회를 중심으로 한 좌파세력에 대항하는 우파세력 조직이 필요했던 미군정의 요청과 독촉국민회의 지방 지부세력을 강화시키고자 하는 자신의 의도였다. 그는 좌파들의 격렬한 비판과 반대에도 불구하고 지방에서 놀라운 대중 동원 능력을 보여주었고, 자신의 세력을 확장시켜 나갔다.
그의 남선순행은 지방의 거점도시들의 독촉국민회 지부들을 중심으로 진행되면서 주변 군들의 청중들에게 당시의 초미의 관심사인 미소공위의 회담 진행상황, 민족통일을 통한 자주 독립의 달성과 민주주의 공화제 정부 수립, 국론분열을 일으키며 소련에 예속된 공산주의들에 대한 강력한 비판 등을 전달하였다. 이러한 그의 연설들을 통하여 지방의 좌파세력들 가운데 우파로 넘어오는 경우들이 생겨났을 뿐만 아니라 독촉국민회의 지방지부들이 확대 조직되었고 그의 지지 세력이 강화되었다. 이러한 그의 남선순행 과정에 대전, 대구, 부산, 순천, 보성 등지에서 확인되는 바와 같이 지역교회들과 목사들이 참여하여 그의 활동을 지원하였다.
그는 6월 11일 독촉국민회 총재로 취임하면서 민족통일총본부 설립을 승인 받아 6월 29일에 조직하였다. 이 조직에 대해 좌파뿐만 아니라 한독당과 미군정도 비판하여 세력 확대에는 실패하였으나 그의 강력한 지지세력 구축에는 일단 성공하였다. 그리고 이승만의 독촉국민회와 민족통일총본부 조직에는 국민운동을 통해 국가를 수립하려는 기독교인들이 다수 참가하여 그의 적극적인 지지 세력으로 활동하였다. 그를 지지하던 기독교 세력은 미국에서 동지회에서 함께 활동했던 허정, 김양수, 임영신과 흥업구락부의 오하영과 이묘묵, 그리고 한민당에 가담했던 김동원, 윤보선, 월남기독교인인 이윤영과 박현숙, 독촉애국부인회의 박승호와 황신덕 같은 인물들이 중심을 이루었다.
Syngman Rhee started his south itinerary on April 16, 1946 and continued it until June 9, 1946. He was in a difficult situation to act in the central political arena because he resigned the chairman of the Korean People’s Representative Democratic Legislature and he is excluded as a counter-insurgent in the US-Soviet Cooperation Committee. So he started it. But the greater reason and aim is the request of the US Military Government, which needed a right-wing organization against the left-wing forces centering on the People’s Committee in the south regions and his intention to strengthen the local branch of the NSRRKI. Despite the fierce criticism and opposition of the left, he showed amazing mass mobilization ability in the provinces and extended his powers.
His south itinerary was centered around the local branch of the NSRRKI of the major cities. He spoke the progress of the US-Soviet Cooperation Committee, the attainment of independence through national unification, the establishment of a democratic republican government, and a strong criticism of the Communists causing the dissolution of the state and subordinated to the Soviet Union to the people of the adjacent Guns. Through these speeches, not only were there cases of right-winging among the local leftist forces, but the local branches of the NSRRKI were expanded and their support was strengthened. In this process, local churches and pastors participated and supported his activities, as confirmed in Daejeon, Daegu, Busan, Suncheon, and Boseong. He took office as the president of the NSRRKI on June 11, and the establishment of the headquarters of the National Unification Headquarters was approved and he organized it on June 29. Not only the left wing but also Democratic Korean Independence Party and the US military criticized it, so he failed to expand the power, but succeeded in building his strong supportive forces. In addition, a number of Christians who tried to establish the state through the national movement acted as his active supporters in the NSRRKI and the National Unification Headquarters. His supporting Christian Powers were Huh Jung, Kim Yang Sook, Lim Young-shin who were together working in the America, Oh Ha Young, Lee myomug of HeungupClub, north korean refugees, Lee Yoon Young and Park Hyun S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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