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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사원의 승도(僧徒)와 승군(僧軍) 운용 = The Organization and Management of Buddhist Monks as Workers and Soldiers in the Kingdom of Goryeo
저자
전영준 (제주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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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작성언어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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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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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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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105(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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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the period of Goryeo, the Buddhist temples were loyal to monarchy, and, from the beginning of the Kingdom, they had contributed a lot in terms of consolidating the king’s power. The temples played crucial roles as a secondary palace and a logistics base as well as the religious organization. In emergency, they mobilized the monk soldiers who belonged to them for national military campaigns. In this context, Buddhists, who had been on good terms with politically strong aristocratic families, played a pivotal role in organizing ritual events closely related to unification and justification of ruling idea around the king and aristocrats. In doing so, the temples had to establish the supply line of necessary resources and goods which included a kind of temple manufacture system. Through this system they built the buildings and pagodas, engraved the scriptures and so on. In supplying and producing goods, there was the division of labor between the monks:manufacturer monks, servicing monks, military monks and group of monks belonging to a temple, who were categorized as low-class monks.
However, it is unreasonable to deduce the characteristics of those monks from the records saying that they merely provided the labor power. According to tasks of each temple, they were mobilized in maintaining and protecting the temples, or were formed into the Buddhist army. The Anti-demon Unit and the Artillery Unit could be organized due to the political mobilization of the Buddhist temples and, as a result of it, the presence of low-class monks who were quasi-soldiers, in fact playing a role of the royal bodyguards, from the beginning of the Kingdom. At the time of the 5th Mongolian invasion, the Buddhist army militarily contributed in the battles of Chu-In, Chung-Ju and Sang-Ju.
In the late period of the Goryeo, at the time of the Red Turban Invasions, the mobilized monk army fought against it. Also they took part in the campaign of repelling Japanese raiders and in building warships. After the establishment of Chosun, they were mobilized in constructing a new capital city instead of ordinary people. In this sense, the new monarchy utilized the monk soldiers either a part of regular army or labor forces in emergency as ever.
고려시대의 사원은 친왕적 성격이 강하여 국초부터 왕권을 옹립하는데 기여한 바가 컸다. 사원은 본래의 종교 기능에 더하여 이궁(離宮) 및 병참기지 역할도 수행하였으며, 더욱이 국가가 위급할 때에는 사원 소속 승군이 종군하여 소임을 다하였다. 때문에 고려 전기의 문벌귀족 사회와 호혜적 관계를 유지했던 불교는 국왕과 귀족을 중심으로 하여 내부의 사상적 통일을 위한 각종 불교행사의 개설을 주도하였다. 그리고 이를 원활하게 수행하기 위하여 종교 활동에 필요한 전각 및 불탑 조성, 경전 조판에 이르기까지 사원에서 필요한 물자의 조달이 수월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사원수공업 체제를 구축하였다. 이러한 물자의 생산과 보급에 관련한 활동은 대부분 공장승(工匠僧), 공역승(供役僧), 사역승(使役僧), 종군승(從軍僧) 등의 직능에 따라 불리는 하급승도와 수원승도(隨院僧徒)라 통칭되는 이들의 조력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수원승도가 단순 노동력을 제공했다는 기록만으로 하급승도로 규정하는 것은 곤란하다. 그들은 소속 사원의 성격에 따라 사원을 유지, 보호하거나 유사시에 승군으로 편성되었다. 그래서 항마군의 편성이나 화통방사군(火桶放射軍)으로 조직되었던 것은 국초부터 사원을 정치세력으로 끌어들여 하급승도들을 은닉사병(隱匿私兵)으로 삼아 국왕 친위대의 역할을 부여하였던 것에서 출발한다. 이후 몽골의 5차 침입 때는 처인성 전투, 충주산성 및 상주산성 전투 등에서 승군들의 활약이 컸다.
고려 후기에 홍건적의 침입 때 승군들이 조직되어 막았으며 빈번한 왜구 침입을 진압하거나 군함 건조 등에도 투입되었다. 조선 건국 직후에도 도성 건설을 위한 국가토목공사에도 차출되어 민정(民丁)을 대신하는 노동력으로 활용되었다. 때문에 왕조 교체 이후에도 승군은 여전히 비상시국의 정규군 편성이나 국가의 노동력 자원으로 활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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