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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장왕・헌강왕대의 대일외교와 그 활용 = Diplomatic Relation with Japan in King Aejang and King Heongang and Making Use of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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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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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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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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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184(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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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se thesis is studying the records on envoys between Silla and Japan during king Aejang and king Heongang and their making use of it in the domestic politics. Japan during king Aejang dispatched envoys just after breaking nations’ relationship between Silla and In the third year of king Aejang, the reason Japan sent envoy to Silla is that they wanted to have assurance of safety in the sea and get help at their arrival in relation to Kyondangsa dispatch. King Aejang in his 2ndreigning year, tried to install a fake prince and send him to Japan as the envoy and in his fourth year, traded with Japan. King Aejang was active in relation with Japan because it was related to his opposition about China’s centered world order internationally. Domestically king Aejang made use of the diplomatic relation with Japan as one way to establish his direct ruling from Kim Unseong’s rule as regent. After beginning direct ruling, King Aejang held in check Tang and kept close relation with Japan. That is, when Tang’s Goaesa concurrent positioned Chekbongsa visited Silla in King Aejang ‘s 4thyear, they were treated poorly, but Japan’s envoy was greeted in Jowon-Jeon and treated hospitably in King Aejang’s 7thyear and 9thyear. And King Aejang tried to establish order internally and extenally through Binrye which was royal authority ceremony, and other various revolutionary politics helped King Aejang to have power centered around himself.
In King Heongang’s period, the envoys between Silla and Japan visited each country. Japan’s envoy was sent in King Heongang 4thyear because pirates from Silla invaded Japan and there were worries of Silla’s invading Japan so Japan wanted to know the circumstances. At those days, Silla got through Hwangso’s uprising so they could not send envoys to Tang and also the politics were insecure internally and externally. King Heongang did ingyon the envoys at Jowon-jeon and tried to rid their worries and also tried to overcome the difficulties internally and externally at those days through effects of the ceremony. And at King Heongang’s 8th and 9th year, Japan’s envoy visited again to know news from Tang which caused King Heongang sent envoys to Tang in those years and sent envoys to Japan in his 10th and 11thyear. The reason why around King Heongang’s 10thyear, the king sent envoys to those two countries was related to the king’s feeling of insecurity about the successor to the throne at his late ruling years. Therefore King Heongang colluded with Hyo’s mother in his 10thyear and Hyo became King Hyogong later, and also through his diplomatic relation with Tang and Japan around his 10thyear, he tried to achive strengthening royal authority as well as stability of royal family.
본 논문은 애장왕대와 헌강왕대 신라와 일본의 사신 왕래 기사를 검토하고 애장왕과 헌강왕이 이것을 대내 정치에 활용한 측면을 생각해 본 것이다. 신라와 일본의 국교가 단절된 직후인 애장왕대 일본은 신라에 사신을 보낸다. 애장왕 3년 일본이 신라에 사신을 보낸 이유는 遣唐使 파견과 관련하여 신라로부터 해로의 안전을 보장받고 견당사가 漂着할 때 도움을 받고자 한 것이었다. 애장왕은 왕 2년에 假王子를 책봉하여 일본에 사신을 보내려고 하였고 왕 4년에는 일본과 ‘交聘’하였다. 애장왕이 대일본 외교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은 대외적으로는 당 중심의 세계 질서에 대한 반발과 관련있었다. 대내적으로는 김언승의 섭정을 받았던 애장왕이 攝政期에 親政 구축을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대일본 외교를 활용하였다. 친정 이후에도 애장왕은 당을 견제하고 일본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였다. 즉 왕 6년 신라에 온 당의 告哀使 겸 冊封使를 홀대하였지만, 왕 7년과 9년에 신라에 온 일본 사신은 朝元殿에서 引見하고 후대하였다. 그리고 애장왕은 왕권의례인 賓禮를 통해 대내외의 질서를 확립하려 하였고, 이와 연동되어 행해진 다양한 개혁정치는 애장왕에게 권력을 집중시켰다.
헌강왕대 역시 신라와 일본 사신은 왕래하였다. 헌강왕 4년 일본이 신라에 사신을 보낸 이유는 신라 해적의 침입과 신라가 침공한다는 우려가 팽배했기 때문에 그 사정을 알기 위해 온 것이라고 하였다. 당시 신라는 황소의 난으로 당에 사신을 보내지 못하였고 대내적으로는 정국이 불안정하였다. 헌강왕은 때마침 신라에 온 일본 사신을 조원전에서 인견함으로써 우선 일본의 우려를 불식시키려고 하였고, 의례가 지닌 기능을 통해 당시의 대내외적인 어려움을 극복하려고 하였다. 헌강왕 8년 일본 사신은 당의 소식을 알기 위해 신라에 왔는데, 헌강왕은 이를 계기로 왕 8년과 9년에 당에 사신을 보냈고 왕 10년과 11년에는 일본에도 사신을 파견하였다. 헌강왕 10년을 전후하여 헌강왕이 양국에 사신을 보낸 것은 헌강왕 후반기 왕위계승권자에 대한 불안감과 관련있다고 하였다. 이에 헌강왕은 왕 10년 觀獵에서 후일 효공왕이 되는 堯의 생모와 野合하였고, 왕 10년 전후 당과 일본과의 외교관계를 통해서는 왕권 강화와 왕실의 안정을 꾀하였다고 보았다.
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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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KCI등재 |
2017-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등재 |
2013-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1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KCI등재 |
2009-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7-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
2016 | 0.5 | 0.5 | 0.46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0.51 | 0.58 | 0.981 | 0.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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