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I등재
금계 황준량의 녹봉정사 설립과 성주목사 재직시절의 활동 = Establishment of Nokbong Lecture Hall and Activities while Serving as a Local Civil Servant of Seongju by Geumgye Hwang Jun-ryang
저자
발행기관
학술지명
권호사항
발행연도
2020
작성언어
Korean
주제어
등재정보
KCI등재
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41-96(56쪽)
KCI 피인용횟수
0
DOI식별코드
제공처
소장기관
As a good government leader with in-depth knowledge and excellence in political affairs, Geumgye Hwang Jun-ryang made significant achievements in the towns he served, including Sinnyeong, Dangyeong, and Seongju. These accomplishments made him highly recognized as a government writer and caused him to receive credit from Yi Hwang for being the preeminent Neo-Confucian. After his death, Yi Hwang acknowledged his contributions to academic research and pursuit of education by writing an elegy, a funeral oration, and a record of his life. Through publications, Yi praised his contributions to the research and study of Neo-Confucianism, as well as its dissemination and practice. The positive evaluation toward Hwang Jun-ryang continued during the post-Yi’s generation by his disciples. His early death, however, did not allow him to remain as a Neo-Confucian scholar or author. In other words, he was not able to leave Confucian morals in writing, although his scholarship began to enter deeper into the world of Neo-Confucianism from Heart Sutra, Reflections On Things at Hand, and to Overview and Explanation of Zhu Xi. Instead, he was strict about discriminating heresies, the unique characteristics of Neo-Confucianism, which was more about the intelligent study. Hence, he rejected the studies of classical scholars, such as Nammyeog Jo Sik, arguing that they did not provide the right path, or they were not Confucian morals but simply heresies of Laozi and Zhuang Zhou. With Yi Hwang, he significantly contributed to Confucianism to help Toegye Studies become mainstream, which had Neo-Confucianism as its first principle. While serving as chiefs of local towns, including Sinnyeong, Danyang, and Seongju, he focused on the promotion of school education, particularly academic research. Furthermore, he exerted great efforts to help Neo-Confucianism and Toegye Studies to be planted deeply in those regions. In particular, since he became a new civil servant of Seongju, he stuck to Confucian morals along with selecting targets for sacrificial rituals, meaning that he held to his original thought that considered Neo-Confucianism as the primary principle. Moreover, he renamed Yeongbong Confucian Academy to Cheonggok Confucian Academy, influenced by Hangang Jeong Gu. There, he opened up the way of holding memorial services primarily for Xianshengand Zhu Xi and enshrining Kim Goeng Pil. In addition, he devoted himself to academic research and pursuit of education with Oh Geon through the restoration of Hyanggyo (local Confucian schools) shrines, bringing Yeongbong Confucian Academy back to normal, and establishing Nokbong Lecture Hall and Gonggok Confucian Academy. He concentrated his strength on research, education, and dissemination of Neo-Confucianism by publishing Overview and Explanation of Zhu Xi, a primary textbook for Neo-Confucianism. With this, he improved the way of appreciating literary works in Seongju, paving the way for Toegye Studies to take root in the region. Later, Jeong Gu, who studied in Seongju Hyanggyo Confucian School and Nokbong Lecture Hall, provided an opportunity to create a literary spirit unique to Seongju, called “Nakjung Studies (or Ganghak Studies),” which combined Toegye Studies excellent in a theoretical investigation, and Nammyeong Studies with exemplary practical spirit.
더보기금계 황준량은 흥학과 정사에 뛰어난 선치수령으로 신녕·단양·성주 등 그가 재직했던 고을에서 많은 업적을 남겼다. 이와 함께 그는 선치수령, 곧 관료문인으로서만이 아니라 학자, 곧 주자학자로서도 스승 퇴계 이황에게 그 공적을 높게 평가받았다. 이황은 그의 사후 그에 대한 만사와 제문, 그의 행장 등을 통해 학문연구와 강학활동, 그리고 출판활동 등을 통해 주자학의 연구와 교육, 그리고 그 보급과 실천에 힘을 쏟은 공적을 높이 평가하였다. 그에 대한 이와 같은 평가는 이황 사후 그 제자들 대에도 변함이 없었다. 하지만 너무 이른 죽음으로 그의 학문이 심경과 근사록을 거쳐 희암서절요[주자서절요]로 나아가서 주자학의 깊숙한 세계로 진입하고 있었음에도 그는 학자, 곧 주자학자로서의 학문적 성취를 이론화한 저작, 다시 말하면 도학문자를 따로 남기기는 어려웠다. 대신 그는 주지적 성향이 두드러진 주자학에 독특하게 드러나는 강한 이단 변별의식에 투철해서, 당시 조선유학의 큰 흐름을 형성하고 있었던 고사들, 남명 조식 등의 고사들의 학문을 정학, 곧 도학이 아닌 노장류의 이단으로 변별하고 배격하는데 스승 이황과 함께 앞장서서 이후 우리나라의 유학이 주자학을 제일의로 하는 퇴계학이 주류를 형성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이와 함께 신녕·단양·성주 등 지방고을의 수령으로 재직하면서 학교교육의 진흥, 곧 학문연구와 강학활동에 힘을 쏟아 주자학, 나아가 주자학을 제일의로 하는 퇴계학이 그 지역에 뿌리내리게 하는 데도 크게 기여하였다. 특히 그는 성주목사로 부임한 이후 영봉서원 제향인물 선정과 그 위차 문제에 도학, 곧 주자학을 제일의로 하는 자신의 본래 입장을 관철해서 후일 한강 정구에 의해 영봉서원을 천곡서원으로 개명하고는, 이천 정이와 운곡 주희를 주향으로 하고 한훤당 김굉필을 종향하게 하는 길을 열어놓았다. 나아가 향교 문묘의 중수와 영봉서원의 정상화, 녹봉정사·공곡서당 등의 건립을 통해 그곳 훈도 덕계 오건과 함께 학문연구와 강학활동에 주력하는 한편, 도학, 곧 주자학 공부의 핵심교재인 회암서절요[주자서절요]를 출간하는 등 주자학의 연구와 교육, 그리고 그 보급과 실천에 힘을 쏟았다. 이를 통해 성주지역의 문풍을 크게 진작시켜 주자학을 제일의로 하는 퇴계학이 성주지역에 뿌리내리게 하는 기반을 마련하였을 뿐만 아니라, 후일 그러한 기반 위에 성주향교와 녹봉정사 등에서 수학한 정구에 의해 이론적 탐구가 승한 퇴계학과 실천적 기풍이 승한 남명학을 결합한, ‘낙중학[강안학]’이라고 일컬어지는 성주지역만의 독특한 문풍을 열어내는 계기를 만들었다.
더보기분석정보
|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
| 2022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 2019-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등재 |
| 2016-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등재 |
| 2012-02-27 | 학회명변경 | 영문명 : institute of korean studes -> Academia Koreana | KCI등재 |
| 2012-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 2009-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KCI등재 |
| 2008-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 2006-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
| 2016 | 0.57 | 0.57 | 0.57 |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 0.56 | 0.61 | 1.133 | 0.03 |
서지정보 내보내기(Export)
닫기소장기관 정보
닫기권호소장정보
닫기오류접수
닫기오류 접수 확인
닫기음성서비스 신청
닫기음성서비스 신청 확인
닫기이용약관
닫기학술연구정보서비스 이용약관 (2017년 1월 1일 ~ 현재 적용)
한국교육학술정보원은 정보주체의 자유와 권리 보호를 위해 「개인정보 보호법」 및 관계 법령이 정한 바를 준수하여, 적법하게 개인정보를 처리하고 안전하게 관리하고 있습니다. 이에 「개인정보 보호법」 제30조에 따라 정보주체에게 개인정보 처리에 관한 절차 및 기준을 안내하고, 이와 관련한 고충을 신속하고 원활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개인정보 처리방침을 수립·공개합니다.
주요 개인정보 처리 표시(라벨링)
목 차
제1조(개인정보의 처리 목적)
제2조(개인정보의 처리 및 보유 기간)
제3조(처리하는 개인정보의 항목)
제4조(개인정보파일 등록 현황)
제5조(개인정보의 제3자 제공)
제6조(개인정보 처리업무의 위탁)
제7조(개인정보의 파기 절차 및 방법)
제8조(정보주체와 법정대리인의 권리·의무 및 그 행사 방법)
제9조(개인정보의 안전성 확보조치)
제10조(개인정보 자동 수집 장치의 설치·운영 및 거부)
제11조(개인정보 보호책임자)
제12조(개인정보의 열람청구를 접수·처리하는 부서)
제13조(정보주체의 권익침해에 대한 구제방법)
제14조(추가적 이용·제공 판단기준)
제15조(개인정보 처리방침의 변경)
제1조(개인정보의 처리 목적)
제2조(개인정보의 처리 및 보유 기간)
3년
또는 회원탈퇴시까지5년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3년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2년
이상(개인정보보호위원회 : 개인정보의 안전성 확보조치 기준)
제3조(처리하는 개인정보의 항목)
제4조(개인정보파일 등록 현황)
| 개인정보파일의 명칭 | 운영근거 / 처리목적 | 개인정보파일에 기록되는 개인정보의 항목 |
보유기간 | |
|---|---|---|---|---|
| 학술연구정보서비스 이용자 가입정보 파일 | 한국교육학술정보원법 | 필수 | ID, 비밀번호, 성명, 생년월일, 신분(직업구분), 이메일, 소속분야, 웹진메일 수신동의 여부 | 3년 또는 탈퇴시 |
| 선택 | 소속기관명, 소속도서관명, 학과/부서명, 학번/직원번호, 휴대전화, 주소 | |||
제5조(개인정보의 제3자 제공)
제6조(개인정보 처리업무의 위탁)
제7조(개인정보의 파기 절차 및 방법)
제8조(정보주체와 법정대리인의 권리·의무 및 그 행사 방법)
제9조(개인정보의 안전성 확보조치)
제10조(개인정보 자동 수집 장치의 설치·운영 및 거부)
제11조(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구분 | 담당자 | 연락처 |
|---|---|---|
| KERIS 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정보보호본부 김태우 |
- 이메일 : lsy@keris.or.kr - 전화번호 : 053-714-0439 - 팩스번호 : 053-714-0195 |
| KERIS 개인정보 보호담당자 | 개인정보보호부 이상엽 | |
| RISS 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학술데이터본부 정광훈 |
- 이메일 : giltizen@keris.or.kr - 전화번호 : 053-714-0149 - 팩스번호 : 053-714-0194 |
| RISS 개인정보 보호담당자 | 학술진흥부 길원진 |
제12조(개인정보의 열람청구를 접수·처리하는 부서)
제13조(정보주체의 권익침해에 대한 구제방법)
제14조(추가적인 이용ㆍ제공 판단기준)
제15조(개인정보 처리방침의 변경)
자동로그아웃 안내
닫기인증오류 안내
닫기귀하께서는 휴면계정 전환 후 1년동안 회원정보 수집 및 이용에 대한
재동의를 하지 않으신 관계로 개인정보가 삭제되었습니다.
(참조 : RISS 이용약관 및 개인정보처리방침)
신규회원으로 가입하여 이용 부탁 드리며, 추가 문의는 고객센터로 연락 바랍니다.
- 기존 아이디 재사용 불가
휴면계정 안내
RISS는 [표준개인정보 보호지침]에 따라 2년을 주기로 개인정보 수집·이용에 관하여 (재)동의를 받고 있으며, (재)동의를 하지 않을 경우, 휴면계정으로 전환됩니다.
(※ 휴면계정은 원문이용 및 복사/대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습니다.)
휴면계정으로 전환된 후 1년간 회원정보 수집·이용에 대한 재동의를 하지 않을 경우, RISS에서 자동탈퇴 및 개인정보가 삭제처리 됩니다.
고객센터 1599-3122
ARS번호+1번(회원가입 및 정보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