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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50년대 한글 서예의 한글 인장 사용 연구 = Hangeul seal-engraving art by the year of 1920-195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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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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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5-287(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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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thesis is written to look into the aspects of Hangeul seal-engraving art by the year of 1920-1950's. It was possible for Hangeul seal-engraving art to become a new form of art in the 20th century, since Hangeul was used as Korean letters instead of Chinese and Hangeul became a part of calligraphy. The founders of Hangeul calligraphy are Hanseo(翰西) Namgung-eok(南宮檍 1863-1939) and Sahudang(師候堂) Yun Back-young(尹伯榮 1888-1986). By them, Hangeul calligraphy works were appeared in the court style of writing the Korean script, but Chinese seal-engraving has been used. Hangeul seal-engraving was not used by 1930's, and at that time it was the general situation of the times.
The first Hangeul seal-engraving was showed in Iljung(㊀中) Kim Chung-hyeon(金忠顯 1921-2006)'s Sijoshipchup(時調十疊) in 1942. Kim Chung-hyeon used Hangeul seal-engraving in his Hangul calligraphy in the early 1940's, which showed his pioneering consciousness, and after that he used several Hangeul seal-engravings in 1940s and 1950s. His Hangeul seals were engraved by his brother Yeocho(如初) Kim Eung-hyeon(金膺顯 1927-2007).
Kim Eung-hyeon, calligrapher and seal engraver, is recognized as the most important artist used Hangeul seal engraved by himself. His first Hangeul seal-engraving was identified in his work, Hoongyejasonga(訓戒子孫歌) in 1946, which he made at the age of 20. Hyodereiyeui(효뎨례의) by Kim Eung-hyeon, he recreated the shape of the coins and letter forms in Joseon dynasty as a modern Hangeul art, and it created a model of beautiful Hangeul seal-engraving patterns. He achieved a remarkable work as a pioneer in the field of Hangul seal-engraving art.
Galmul(갈물) Lee Chul-kyung(李喆卿 1914-1989) used the separate writing forms of Hangeul seal-engraving in 1947 and her sister, Gokdul(꽃뜰) Lee Mi-kyung(李美卿 1918-) used similar forms of Hangeul seals. These seals seemed like from their father, Yaja(也自) Lee Man-gyu(李萬珪 1889-1978), a Hangeul scholar who wanted his daughters to learn the court style of Hangeul writing and gave them Hangeul pen names.
Ohsechang(오세창), Mumu(뮤뮤) by Wichang(葦滄) Oh Se-chang(吳世昌 1864-1953) is Hangeul seal-engraving made before his death in 1953, and '뮤뮤' is hard to understand its meaning. Considering that Oh Se-chang was a translater, fluent in Chinese and also the meaning of the seal letters, I assume that the Chinese pronunciation of 'mùmù(穆穆)' was engraved as '뮤뮤' in Korean letters.
The followings are some representatives in the early Hangeul seal-engraving art: Namgung Eok contributed to the pioneering achievement of the court style of writing the Korean script to be realized and disseminated. Lee Chul-kyung and Lee Mi-kyung, the daughters of Lee Man-gyu, a Hangeul scholar, put their efforts to expand the base of the court style of writing the Korean script. Kim Chung-hyeon used Hangeul seal-engraving in his Hangul calligraphy in the early 1940s. Kim Eung-hyeon who was a pioneer in Hangeul seal-engraving art and developed the very first phase of it. Oh Se-chang who left Hangeul seal-engraving as a national pioneer. Oh Se-chang and Kim Eung-hyeon are recognized as seal engravers who engraved Hangeul seal for the first time. Kim Eung-hyeon is recognized significantly as the first person who engraved his own Hangeul seal-engraving and used it on his Hangeul calligraphy works.
한글 인장예술은 한글이 國文으로 사용되고, 서예의 한 분야로 자림 매김 된 이후 새롭게 성립된 분야이다. 한국서예사에서 한글 서예와 한글 인장예술은 매우 중요함에도 아직 연구가 미흡하다. 이러한 인식 아래 1920-1950년대 한글 서예에서 한글 인장이 사용된 상황을 한글 인장예술의 초기 양상으로서 살펴보았다. 한글의 서예 작품화는 1920-1930년대 翰西 南宮檍(1863-1939)과 師候堂 尹伯榮(1888-1986)으로부터 시작되었으나 이들은 한문 인장으로 낙관하였으며, 조선미
술전람회 한글 서예 입상작에서도 한글 인장을 찾아 볼 수 없었다. 1930년대까지는 한글 서예에도 한문 인장으로 낙관하여 한글 인장이 사용되지 않았던 것이 당시의 일반적인 시대적 상황이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본고에서 살펴 본 바 한글 인장이 사용된 한글 서예의 현전하는 가장 이른 예는 1942년 작인 一中 金忠顯(1921-2006)의 <時調十疊>이다. 김충현은 1940년대초 선구적으로 한글 서예에 한글 인장을 사용하였고, 1940-1950년대에 여러 벌의 한글 인장을 사용하였음을 확인하였다. 김충현이 사용한 한글 인장은 대부분 동생인 如初 金膺顯(1927-2007)이 새겼다. 김응현은 서예가, 전각가로서 한글 인장을 직접 새겨 사용한 최초의 작가로 주목되며, 확인되는 이른 용례는 20세 때인 1946년 작 <訓戒子孫歌>이다. 김응현은 한글 인장예술을 개척한 선구적 전각가로서 한글이 주조된 조선시대 별전을 응용한 葉錢形印 <효뎨례의>(인31)로서 한글 閑章에 있어서 하나의 전형을 창출하였다. 갈물 李喆卿(1914-1989)은 1947년 작<고시조>에서 한글 풀어쓰기로 된 인장을 사용하였고, 동생 꽃뜰 李美卿(1918-)도 이와 유사한 한글 인장을 사용하였다. 이들이 1940-1950년대에 사용한 한글인장은 딸들에게 한글 호를 지어주고 궁체를 학습하게 한 한글학자인 아버지 也自李萬珪(1889-1978)의 안목에서 나온 것으로 여겨진다.
20세기 전반기에 활동한 많은 전각가들 중 한글을 새긴 전각가는 葦滄 吳世昌(1864-1953), 雲如 金廣業(1906-1976), 鐵農 李基雨(1921-1993), 김응현 등에 불과하다. 오세창의 한글 인장 <오세창>, <뮤뮤>는 그가 사망한 1953년 이전에 제작된 것으로 ‘뮤뮤’는 뜻을 알기 어렵다. 필자는 ‘穆穆’의 중국어 발음 ‘mùmù’를 한글로 새긴 것으로 추정하였다. 오세창이 중국어에 능통했던 漢語 역관이었던점, 소리 나는 데로 표기하는 한글의 표음문자로서의 특징, ‘위엄 있고 온화함’이라는 뜻을 가지는 印文이 자신의 이름인 ‘오세창’과 함께 새겨진 점 등이 그 이유이다. 그렇다면 <뮤뮤>는 이른 시기의 한글 閑章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한글이 한국인의 문자생활에 전면적으로 부상한 초기에 선구적으로 한글 궁체에 대한 인식을 갖고 작품화에 힘쓰고 한글서예 교본을 남긴 남궁억, 자신의 집안에 보내진 궁중의 편지를 통해 궁체를 서예화하고 후진을 양성한 윤백영, 한글학자 이만규의 딸들로 궁체 저변화에 노력하고 일찍이 한글 인장을 사용한 이철경과 이미경, 궁체 일변도의 한글 서예에서 훈민정음창제 당시의 판본을 연구해 古體를 창안하고 1940-1950년대에 여러 벌의 한글 인장을 사용한 김충현, 한글 인장예술의 선구자로서 초기 국면을 개척한 김응현, 일제강점기 민족 운동가이자 서예가, 전각가로서 한글 인장을 남긴 오세창 등을 한글 인장예술 초기의 대표적 인물로 꼽을수 있다. 오세창과 김응현은 한글 인장을 처음으로 새긴 전각가로 자기 매김 되며, 김응현은 자신의 한글서예에 한글 인장을 自刻自用한 최초의 작가로서 의미가 크다.
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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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8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2-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KCI등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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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01 | 평가 | 등재후보로 하락 (계속평가) | KCI후보 |
2016-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등재 |
2012-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KCI등재 |
2011-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9-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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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0.27 | 0.27 | 0.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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