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皇龍寺 九層木塔의 건립과 그 배경 = The Backround and Purpose about the Construction of Nine-story Wooden Pagoda(九層木塔) at Hwangnyongsa Temple(皇龍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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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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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3-333(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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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ngnyongsa Temple(皇龍寺) had been founded in 553, the 14th year of King Jinheung(眞興王)'s reign and then Changyuk Noble Images(丈六尊像), Geumdang hall(金堂), and Nine-story Wooden Pagoda(九層木塔) were additionally built. Among these, the construction of Nine-story Wooden Pagoda at Hwangnyongsa Temple which was built in 645(the 14th year of Queen Seondeok(善德女王) reign) was suggested by Jajang(慈藏). It is considered that Jajang intended to improve queen's authority and gather domestic public opinion through the construction of the pagoda. By the way, this intention was first mentioned by Anhong(安弘) in former period. After Sui Dynasty(隋) where Anhong studied established the unified dynasty, it publicized Emperor's achievement by building pagodas all over the country. An-hong who experienced this intented to improve Queen Seondeok's authority by bringing Buddha's ashes(佛舍利) in Silla and placing them inside Nine-story Wooden Pagoda at Hwangnyongsa Temple. In the present the academic world, there are many different opinions about the value of『Dongdo seongnip gi(東都成立記, Record of the Establishment of the Eastern Capital)』as a historical material and An-hong's life. However, according to」Stele for Great Master Sinheung(神行禪師碑)」, because the blood relationship between Great Master Sinheung and Anhong is clearly showed, Anhong can be seen as a person who lived in the seventh century.
In the late reign of King Jinpyeong(眞平王), the royal authority became stable, the political forces who supported Queen Seondeok's enthronement led political situation. Also, in Buddhism, as Wongwang(圓光) lived and studied at Hwangnyongsa Temple, he showed the sociopolitical influence. On the other hand, Anhong seems to have reached the limit of his status considering that historical records about him doesn't remain clearly. Thus, his opinion about the foundation of Nine-story Wooden Pagoda didn't attract attention in 631. But Jajang knew Anhong's idea well ahead of 638 when he studied in Tang Dynasty(唐) and met Manjusri Bodhisattva(文殊菩薩) and got Jinsinsari(眞身舍利, Buddha's bones). After he returned to Silla in 643 with this, he promoted the construction of Nine-story Wooden Pagoda at Hwangnyongsa Temple, and as a result, the concentration of public opinion which could deal with internal and external crisis situations was attracted.
皇龍寺는 新羅 眞興王 14년(553) 창건되었고, 이후 丈六尊像 및 金堂과 九層木塔이 추가적으로 건립되었다. 이 가운데 善德女王 14년(645)에 건립된 황룡사 구층목탑은 慈藏의 건의로 이루어졌다. 자장은 황룡사 구층목탑 건립으로 여왕의 권위를 높이고 국내 여론을 결집시키고자 의도하였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이러한 주장은 앞선 시대의 安弘이 최초로 언급한 내용이었다. 안홍이 유학했던 隋는 통일왕조를 수립하면서 전국에 佛塔을 세워 황제의 업적을 선전하였다. 이를 체험한 안홍은 신라에 佛舍利를 입수해 와 황룡사 구층목탑에 안치함으로써 선덕여왕의 권위를 높이고자 하였던 것이다. 현재 학계는 『동도성립기』의 사료적 가치와 안홍의 생애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그러나 「神行禪師碑」에 신행선사와 안홍의 혈연관계가 분명히 보이므로, 안홍이 7세기에 생존했던 인물임을 알 수 있다.
眞平王代 후반 왕권은 안정되어 있었고, 선덕여왕의 즉위를 지지하는 정치세력이 정국을 주도하고 있었다. 또한 불교계에서는 圓光이 황룡사에 주석하며 정치사회적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반면 안홍은 역사적 기록이 분명하게 남아있지 않을 만큼 위상에 한계를 보였던 것 같다. 따라서 안홍의 황룡사 구층목탑 건립 주장도 631년에는 주목받지 못하였다. 하지만 자장은 638년 唐에 유학하기 전부터 안홍의 사상을 잘 알고 있었고, 당에서는 文殊菩薩을 직접 만나 眞身舍利 등을 얻게 되었다. 643년 신라로 귀국한 자장은 이것을 배경으로 황룡사 구층목탑 건립을 추진하였고, 국내외 위기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여론 결집을 이끌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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