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I등재
영무장 농악 예인들의 활동과 잡색의 전승 = Youngmujang Nongak Artists’ activities and Inheritance of Japsaek
저자
박혜영 (안동대학교)
발행기관
학술지명
권호사항
발행연도
2015
작성언어
English
주제어
등재정보
KCI등재
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7-58(52쪽)
KCI 피인용횟수
2
제공처
As Japsaek (雜色) play is subordinate performance of Nongak (農樂, agricultural music and dance), the performance and inheritance of Japsaek is, above all, directly connected with change in Nongak condition and field setting of inheritance of Nongak and it is necessary to pay attention to its network. Nongak Japsaek is a member of ‘Ujungjaebie’ and Gulgungpae as ‘a performer operating Gutpan.’ Inheritance of Japseak play is inseparably related to rise and fall of village Gut and sharing of Dangolpan. Artists of Youngmujang Nongak had strong solidarity due to teacher-student relationship in the passing of the art in addition to network of blood and local ties and they travel around Gulgoongpan as if they shared labor. During the exchange, acquisition of art and techniques between performer and performance group and sharing of experience became the motive of mixing and spread of similar Japseak play in Honam area. Japseak play thick with misfortune-preventing ritual nature such as Dodookjaebie Gut and Moonjaebie Gut were passed down in Gulgungpan around Youngmujang.
The scope of activity of Nongak artists who led Gulgungpae around Youngmujang was expanded to Changguek (唱劇, traditional song and play) groups, Nyrong (Nyon) theaters and movie theaters. Nongak ‘technicians’ came to share workforce, accept various performances which overflowed at the time and create ‘performance products’ which satisfied the value of the money. Especially, prime period of local Hyupryulsa and Changguek groups was a transitional period when Nongak artists of Youngmujang with arts and techniques switched into artists of traditional art circle (傳統藝術界). They were artists performing traditional art, entertainers meeting the taste of the public and sales people selling various products and medicines. After the Liberation from Japanese occupation, Nongak artists wandered around the nation selling their art and techniques in diverse contests, entertainment business and promotional activities. As a traditional art which stimulated consumer sentiment, major selling channels of Nongak were traditional markets and theaters. Crowds gathered at New Year ceremonies and anniversaries, facilitating the commercialization of Nongak. With the beginning of ‘New Village Movement (Sae Ma Eul Movement)’, various promotional activities were reproduced as traditional performances led by government authorities.
Scope of activity of Youngmujang Nongak artists was the field where Nongak Japsaek and its performance were passed down and was a cultural stratum. Since current inherited Jsapsaek masks and performance texts are not completed works but products of inheritance in progress which originate from repetitive performance of Japseak, change of Japsaek play converges in composition of performance made by Japsaek and change of ‘Doeggut’ or ‘performance repertoire’ accompanied by Nongak performance. For example, Daeposoos, among Yoounggwang Nongak's Japsaek, were special and famous Daeposoos who know the introduction and rules of Gut joined Gulgungpae. Ones who had special techniques even when they could not be ‘Apjaebies’ who played musical instruments became the clowns. Residents became the Japsaek who are free-playing ‘Doeguncheong’ with all the adornments.
Although Japseaks did not take full charge of Nongak performance, they were as good as talented actors and actresses who dominated Gutpan to fit the situation and actively move each time. Japsaeks with excellent performance abilities accompanied Youngmujang artists and expanded their scope of activities. They performed their own functions such as comic talks, songs and acting and acted as performance subjects who performed various techniques and skills like songs, dance, jokes in disguise. The Youngmujang artists mentioned in this study were Hwa Jip Choi, Man Sik Kim, Sung Guen Park, Sung Rak Kim, Hak Joon Kim, Oh Chae Kim, Byung Nam Jeon, Gyung Hwan Jeon, Jae Sik...
잡색놀이가 어디까지나 농악의 일환인 종속적 연행이라고 한다면, 잡색(雜色)의 연행과 전승은 무엇보다 농악판의 변화, 농악 전승의 현장 상황이라든지 맥락과 직결되며, 그 연계망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농악 잡색은 ‘굿판을 운용하는 기능의 수행자’로서 ‘어정잽이’이자 걸궁패의 구성원이다. 잡색놀이의 전승력은 마을굿의 성쇠라든지 당골판의 공유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영무장농악 예인들은 혈연과 지연의 연계망에 더해진 기예의 사사관계로 인해 결집력이 강했고 품앗이 하듯 걸궁판을 왕래했다. 교류 과정에서 연행자와 연행집단 간 기예의 습득과 체험의 공유는 호남 일대에 유사한 형태의 잡색놀이가 혼효되고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다. 도둑잽이굿이나 문잽이굿과 같이 액막이 중심의 제의성 짙은 잡색놀이는 영무장 일대 걸궁판에서 판굿과 더불어 전승되었다.
영무장 일대에서 걸궁패를 이끌던 농악 예인들의 활동반경은 창극단과 나이롱극장, 영화관 등으로 확장되었다. 농악 ‘기술자’들끼리 인력을 공유하면서 당대에 범람하는 다양한 공연물을 수렴하고, 화폐가치에 부응하는 ‘공연화 된 상품’을 창출해내기에 이르렀다. 특히 지방협률사와 창극단의 전성기는 기예를 보유한 영무장의 농악인들이 전통예술계의 예인으로서 전환되던 과도기이다. 이들은 전통예술을 선보이는 예인이자, 대중적 취향에 부응하는 광대, 오락을 포함하여 각종 물품이나 약품을 판매하는 장사치로 전전했다. 해방 이후에도 농악인들은 각종 경연대회와 흥행사업, 선전활동에 편승하여 기예를 팔며 유랑생활을 했다. 대중의 소비심리를 자극하는 전통예술로서 농악의 판로는 장터와 극장이었다. 세시 행사나 기념식에 열린 경연대회장에도 인파가 몰려들어, 농악의 상품화를 가속화시키는 장(場)이 되었다. 각종 흥행활동은 새마을사업이 실시되면서 다시금 관주도의 명분으로 포장된 전통공연물로서 재생산되었다.
영무장농악 예인들의 활동반경은 농악 잡색과 그 연행이 전승되는 현장이자 문화적 지층이다. 현전하는 잡색탈이라든지 잡색놀이의 연행텍스트가 완결된 작품이 아닌 잡색의 반복적 연행에서 비롯된 과정적인 전승물로 본다면, 너른 의미에서 잡색놀이의 변화는 잡색들이 수행한 연행의 구성, 농악 연주에 수반된 ‘뒷굿’ 혹은 ‘공연레파토리’ 변화로 수렴된다. 영광농악의 잡색 중에서도 대포수는 각별해서, 굿머리와 군법을 알고 굿판을 지휘할 줄 아는 이름난 대포수가 걸궁패에 합류했다. 악기를 연주하는 ‘앞잽이’ 노릇을 못하더라도 남다른 기예를 보유한 이는 광대로 일임했다. 온갖 꾸밈을 하고 자유롭게 노는 ‘뒷군청’에 해당하는 잡색들은 주민들이 맡았다. 잡색들은 농악 연주를 본격적으로 담당하지는 않지만,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굿판을 주름잡으면서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수완 좋은 배우나 다름 없었다. 연행능력이 뛰어난 잡색들은 마을 안팎을 넘나들던 영무장 예인들과 동행하며 활동반경을 넓혔다. 이들은 만담과 소리, 연기 등 나름의 기능을 수행했는데, 가장(假裝)을 하고 춤과 노래, 재담, 기예 등 각양각색의 잡기를 펼치는 연행주체로서 활약했다. 이 글에 언급된 영무장농악 예인들은 최화집, 김만식, 박성근, 김성락, 김학준, 김오채, 전병남, 전경환, 임재식, 신두옥, 신영창, 편재준, 표삼채, 황규언, 김동언, 박용하, 강성옥, 강주철, 김기화...
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
2026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KCI등재 |
2017-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등재 |
2013-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1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KCI등재 |
2009-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7-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
2016 | 0.33 | 0.33 | 0.42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0.43 | 0.44 | 1.024 | 0.11 |
서지정보 내보내기(Export)
닫기소장기관 정보
닫기권호소장정보
닫기오류접수
닫기오류 접수 확인
닫기음성서비스 신청
닫기음성서비스 신청 확인
닫기이용약관
닫기학술연구정보서비스 이용약관 (2017년 1월 1일 ~ 현재 적용)
학술연구정보서비스(이하 RISS)는 정보주체의 자유와 권리 보호를 위해 「개인정보 보호법」 및 관계 법령이 정한 바를 준수하여, 적법하게 개인정보를 처리하고 안전하게 관리하고 있습니다. 이에 「개인정보 보호법」 제30조에 따라 정보주체에게 개인정보 처리에 관한 절차 및 기준을 안내하고, 이와 관련한 고충을 신속하고 원활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개인정보 처리방침을 수립·공개합니다.
주요 개인정보 처리 표시(라벨링)
목 차
3년
또는 회원탈퇴시까지5년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3년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2년
이상(개인정보보호위원회 : 개인정보의 안전성 확보조치 기준)개인정보파일의 명칭 | 운영근거 / 처리목적 | 개인정보파일에 기록되는 개인정보의 항목 | 보유기간 | |
---|---|---|---|---|
학술연구정보서비스 이용자 가입정보 파일 | 한국교육학술정보원법 | 필수 | ID, 비밀번호, 성명, 생년월일, 신분(직업구분), 이메일, 소속분야, 웹진메일 수신동의 여부 | 3년 또는 탈퇴시 |
선택 | 소속기관명, 소속도서관명, 학과/부서명, 학번/직원번호, 휴대전화, 주소 |
구분 | 담당자 | 연락처 |
---|---|---|
KERIS 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정보보호본부 김태우 | - 이메일 : lsy@keris.or.kr - 전화번호 : 053-714-0439 - 팩스번호 : 053-714-0195 |
KERIS 개인정보 보호담당자 | 개인정보보호부 이상엽 | |
RISS 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대학학술본부 장금연 | - 이메일 : giltizen@keris.or.kr - 전화번호 : 053-714-0149 - 팩스번호 : 053-714-0194 |
RISS 개인정보 보호담당자 | 학술진흥부 길원진 |
자동로그아웃 안내
닫기인증오류 안내
닫기귀하께서는 휴면계정 전환 후 1년동안 회원정보 수집 및 이용에 대한
재동의를 하지 않으신 관계로 개인정보가 삭제되었습니다.
(참조 : RISS 이용약관 및 개인정보처리방침)
신규회원으로 가입하여 이용 부탁 드리며, 추가 문의는 고객센터로 연락 바랍니다.
- 기존 아이디 재사용 불가
휴면계정 안내
RISS는 [표준개인정보 보호지침]에 따라 2년을 주기로 개인정보 수집·이용에 관하여 (재)동의를 받고 있으며, (재)동의를 하지 않을 경우, 휴면계정으로 전환됩니다.
(※ 휴면계정은 원문이용 및 복사/대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습니다.)
휴면계정으로 전환된 후 1년간 회원정보 수집·이용에 대한 재동의를 하지 않을 경우, RISS에서 자동탈퇴 및 개인정보가 삭제처리 됩니다.
고객센터 1599-3122
ARS번호+1번(회원가입 및 정보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