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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의 한국 유입과 한국인의 향유 시작, 1861~1896 -1860년대 프랑스 신부 전래, 1884년 유행, 1896년 고종음용 3자의 연결- = French Missionary’s Introduction of Coffee in Korea about the year of 1860
저자
이완범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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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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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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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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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9-324(4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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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ffee was imported to Korea about 1860 by French Missionary.
Bishop Siméon-François Berneux, appointed in 1856 as head of the infant Korean Catholic church, estimated in 1859 that the number of Korean faithful had reached nearly 17,000. At first the Korean court turned a blind eye to such incursions. This attitude changed abruptly, however, with the enthronement of King Gojong in 1864. By the time the Heungseon Daewongun assumed de facto control of the government in 1864 there were twelve French Paris Foreign Missions Society priests living and preaching in Korea and an estimated 23,000 native Korean converts.
The ending period of Chuljong and the beginning period of King Gojong was relatively stable era in the history of French Missionary in Korea, So in the first half of 1860s, priests assumed that they enjoyed their western style meals and had a cup of coffee with Korean believers.
Bishop Siméon-François Berneux sent a letter to father N. F. Libois in Paris Foreign Missions Society’s Far Eastern reperesentative on March 6, 1860. In this letter, Bishop Berneux requested 40 livres of coffee by a priest in 1861. Bishop Berneux sent a message to elderly father Rouseille in Paris Seminary on September 7, 1861 implying that coffee was imported through a priest. Berneux requested a large amount of coffee again to Libois on November 24, 1863 and December 4, 1865. It is supposed that the priests and devotees took coffee.
1910년 전후 일본으로부터 그리고 1945년 이후 미국으로부터 커피 음용 문화가 대중에게 전파되었다고 알려진다. 그렇지만 커피의 전래는 1860년대 프랑스 선교사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프랑스에서는 19세기에 들어와서 커피가 대중화되었으며 신부들도 이를 향유했다. 천주교 박해가 심했던 조선 순조 대에 프랑스 신부들은 커피를 마실 여유가 없었지만 한국 천주교 전래의 상대적 안정기라고 할 수 있는 철종 대에 프랑스 신부들은 평소 몸에 배었던 프랑스식 식생활을 향유하려고 노력했으며, 커피를 마시면서 커피 중독자의 향수를 달랠 수 있었을 것이다.
파리외방전교회 극동대표부의 리부아(N. F. Libois) 신부에게 보낸 1860년 3월 6일자 서한에서 베르뇌(Siméon-François Berneux) 신부는 이듬해 조선으로 들어올 선교사편에 커피 40리브르(livre) 등을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베르뇌가 파리 신학교 장상(長上)인 루세이(Rouseille)에게 보낸 1861년 9월 7일자 서한에 따르면 커피 등이 반입되었음이 간접적으로 확인된다. 1863년 11월 24일 베르뇌는 리부아에게 보낸 서한에서 커피 50 catis(paquet)가 또 요청되었다. 이어 1865년 12월 4일 리부아에게 편지를 보내 설탕, 커피 각 100 리브르가 필요하다고 요청했다. 만약 커피가 원활히 전달되지 않았으면 이렇게 지속적으로 요청했을 가능성이 없다.
또한 개항 이후 1880년대 중반에 일부 상류층들을 중심으로 커피 음용 문화가 유행했음이 퍼시벌 로웰(Percival Lowell)이 간행한 1886년 영문 저서에 나온다. 1883년 보빙사를 안내하는 임무를 맡았던 로웰은 그해 12월 노고를 치하하는 조선왕실의 초청을 받아 겨울 동안 조선에 머물렀다. 로웰은 1884년 1월의 추운 어느 날 경기도 관찰사의 초대를 받아 한강변 별장으로 유람을 갔는데 꽁꽁 얼어붙은 겨울 한강의 정취를 즐기던 중 “우리는 ‘잠자는 물결’이라는 누대 위로 올라 당시 조선의 최신 유행품이었던 ‘석식 후 커피’를 마셨다"라는 기록을 1886년 간행한 책에 남겼다. 고종(高宗) 황제도 이 시기에 커피에 접했다가 1896년 아관파천 이후 본격적으로 응용하여 커피 마니아가 되었다.
이렇게 본다면 커피유입에 대한 1860년대 전래설, 1880년대 중반 유행설, 1896년 고종음용설 등 3자의 학설이 모두 매끄럽게 연결될 수 있다고 판단된다. 커피는 최소한 1861년에 프랑스 신부에 의해 전래되었으며 1884년 상류층에서 유행했고 1896년 고종이 본격적으로 음용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인에게 커피는 외래문화로 전래되었지만 숭늉과 차를 마시던 전통적인 음용문화의 기반과 어우러져 결국 한국문화의 일부로 자리 잡았다.
분석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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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0.81 | 0.81 | 0.7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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