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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익산의 근대농업과 이리농림학교의 사회사 = Iksan Modern Agriculture in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and Social History of Iri Agriculture and Forestry Scho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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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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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ri(裡里) began its history as a city in 1912 when Iri Station opened.
The development of Iri and Iksan was crucial in its strategic location as an agricultural region. In other words, Iri was pioneered as the center of modern agriculture in Korea, and in fact,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key facilities of modern agriculture were installed in turn, and the main figures who penetrated the modern history of both Korea and Japan paid attention to this place. In the process, Iri Agricultural and Forestry School played a very important role in the modern and contemporary history of Iksan. The three key elements of the modern agriculture of Iri-Iksan were Japanese farms, hydraulic unions, and Iri Agricultural and Forestry School. These three elements could be called Modern Farming Stations. Among them, Iri Agricultural and Forestry School had the best advanced education system at the time, centering on agricultural education.
And it played a role in nurturing colonial administrators and technocrats.
The agricultural policy of Japanese imperialism in the 1910s was to make Korea a stable rice supplier by establishing a colonial holding system through land survey projects. Japanese immigrants, who came to Iri-Iksan in the 1910s, built large-scale farms and turned farmers in the region into tenant farmers. In the 1920s, the Japanese agricultural policy developed into a proliferation plan, forming a union to build a large repair facility, and attracting Iri Agricultural and Forestry School as the final stage of the plan. The most powerful forces in this process were the Japanese landlords and bureaucrats, who led the entire process of Iri's urban formation.
Through this process, Iri Agricultural and Forestry School was established. It was the only governmental school to raise the spirit of the whole nation by recruiting half Japanese students and half Korean students. Iri Agricultural and Forestry School became a national prestige with the opening of school. Iri Farming has gathered the best elites of the time and had such excellent academic facilities and organization. Iri Agricultural and Forestry School has learned very advanced agricultural technology at that time and it has been spread to the agricultural technology of Chosun. The first departments established in Iri Agricultural and Forestry School were agriculture and forestry, with the goal of increasing food production and forestry.
Iri Agricultural and Forestry School also strictly controlled students not only through agricultural technology but also at the time of unprecedented student dormitory life. In addition, this School nurtured very talented people in various fields as schools, and continued to produce outstanding talents in various fields such as sports, literature, music, and art. He was especially good at soccer and baseball, which he was unfamiliar at the time, and his wrestling skills were so great that he won the championship for over a decade in Japan. In the process, Iri Agricultural and Forestry School was not directly involved in the community, but it was always a new challenge and stimulus to the Iri-Iksan community. In addition to liberation, Iri Agricultural and Forestry School changed the nature and status of the school.
이리가 도시로서의 역사를 시작한 시점은 이리역이 개통된 1912년이다. 이리와 익산의 발전은 농업지역으로서 이곳에 차지하는 전략적 위치가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즉 이리는 한국 근대농업의 중심지로 개척되었으며 실제로 일제강점기 동안 이리에는 근대농업의 핵심시설이 차례로 설치되었고 한일 양국의 근대사를 관통한 주요 인물들이 이곳을주목했다. 그 과정에서 이리농림학교는 익산의 근현대사에 매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이리-익산의 근대농업을 구축한 3대 핵심요소는익산 일대의 일본인 대농장과 수리조합, 그리고 이리농림이었다. 이 세가지 요소는 이른바 근대농업 스테이션이라고 불릴만한 것이었다. 그가운데서 이리농림학교는 농업교육을 중심으로 당시 최고의 선진교육시스템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이는 식민지의 행정관료들과 테크노크라트를 양성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1910년대 일제의 농업정책은 토지조사사업을 통한 식민지 지주제의확립으로 조선을 안정적인 쌀공급지로 만드는 것이었다. 1910년대 이리-익산으로 대거 유입된 일본의 이민자들은 대규모 농장을 건설하고이 지역의 농민들을 소작농으로 전락시켰다. 1920년대 들어서 일제의농업정책은 산미증식계획으로 발전했고 이를 위해 대규모 수리시설을건설하기 위한 수리조합을 결성하고 그 계획의 최종 단계로 이리농림학교를 유치했다. 이 과정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한 세력은 일본인대지주들과 관료들이었으며 이들은 이리역 유치부터 이리의 도시형성과정 전체를 이끌었던 인물들이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이리농림학교는 설립되었다. 일본인 학생과 조선인 학생을 반반씩 모집하며 내선일체의 정신을 내세운 유일한 관립학교였고, 5년제 농업학교로 전문학교의 면모를 갖추었다. 이리농림학교는 개교와 함께 전국적인 명문이 되었다. 이리농림은 당대 최고 엘리트들이 모여들었고 그만큼 우수한 학업시설과 조직을 갖고 있었다. 이리농림학교는 당시로서는 매우 선진적인 농업기술을 익혔고 그 기술은조선의 농업기술로 전파되었다. 이리농림학교에 맨 처음 설립된 학과는농학과와 임업과였는데, 그 목표는 식량증산과 산림녹화에 있었다.
또 이리농림은 농업기술 뿐만 아니라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전학생기숙사 생활을 통해 학생들을 엄격하게 통제했으며, 1930년대 중반부터는 학교를 군대식으로 편제하면서 병영화했다. 또 이리농림은 학교그 자체로서 다양한 분야에 매우 우수한 인재를 양성했고 스포츠, 문학, 음악, 미술 등 각 분야에서 뛰어난 인재를 계속 배출했다. 특히 당시로서는 생소했던 축구, 야구 등에 능했고, 씨름은 조선을 넘어 일본전체에서도 십여년간 우승을 독차지할 정도로 대단한 실력을 보여주었다. 그 과정에서 이리농림은 지역사회에 직접적으로 관여하지는 않았으나 이리-익산의 지역사회에 늘 새로운 도전과 자극이 되었다. 해방과함께 이리농림은 학교의 성격과 위상이 달라졌지만 일제강점기 이리- 익산의 근대농업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이리농림이 차지하는 의미와 역할은 결코 적지 않았다.
분석정보
|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
| 2026 | 평가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 2020-01-01 | 등재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KCI등재 |
| 2017-01-01 | 등재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등재 |
| 2013-01-01 | 등재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KCI등재 |
| 2012-01-01 | 등재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 2010-01-01 | 등재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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