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 제정 이전과 제1공화국 헌법에서의 헌법재판 = Entscheidungsbesprechung: Entscheidungen über die verfassungsrechtliche Sachen vor und nach dem In-Kraft-Treten der Verfassung von der 1. Republik Süd-Korea
저자
남복현 (호원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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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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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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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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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137(4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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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제헌이전의 헌법재판과 제헌헌법(제1공화국헌법) 아래에서의 헌법재판의 실제에 관해 평석하였다. 논의된 사항을 요약한다.
먼저, 제헌이전의 헌법재판 실제를 본다.
상해임시정부 당시 임시헌법에 근거한 탄핵의결과 심판절차를 거쳐 임시대통령을 면직시켰다고 하는 점은 입헌주의와 법치주의측면에서 매우 고양된 것이었다.
대법원이 처의 능력을 제한하는 의용민법 제14조 제1항에 대해 적용배제로 판결한 것은, 남녀평등을 구현하려 하였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되어야만 하겠지만, 두 가지를 지적하고자 한다. 그 하나는 심판의관할법상 근거가 없고 또 심판기준이 명확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그 당시는 헌법제정의 논의가 한창인 상황이었는데, 대법원으로 하여금 법률의 위헌심사권을 담당하게 하는 내용으로 헌법이 규범화되도록 하게 할 정책적인 판결로 비추어진다는 점이다.
다음 제헌헌법 아래에서의 헌법재판 실제에 관해서이다.
첫째, 대법원에게 법률의 위헌심사권을 부여하지 않고 헌법위원회에 부여한 것은 그 당시 사법관료들에대한 부정적인 인식에 기초한 것이었다. 또한 제헌헌법이 제82조에서 법률의 위헌심사권과 명령・규칙의 위헌・위법심사권을 헌법위원회와 대법원으로 각각 구분해서 부여함에 따른 부작용이 이미 노출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결정실제에서 뚜렷하게 드러났고, 헌법위원회는 이를 해소하지 못하고 그대로 방치하고 말았다, 둘째, 헌법위원회에서의 위헌심사가 총 6건에 그쳤고, 그 중 2건에 대해서만 위헌결정이 이루어졌다. 헌법재판 초창기이었기 때문에 그 정도도 적지 않은 성과라 할 수도 있겠지만, 좀더 활성화될 여지도 적지 않았다.
셋째, 헌법위원회에서의 위헌심사가 1952년부터 1954년 사이에 집중되었으며, 대통령이 헌법위원 임명을지체하는 바람에 헌법위원회의 기능이 사실상 정지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현상적인 모습은 당시 행정부가권위주의적인 체제로 이행하는 것과 밀접하게 연관된다 할 것이고, 이에 따라 헌법위원회는 1954년 하반기부터 휴면기관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넷째, 헌법위원회가 2건에서 위헌결정을 하였고, 대법원에서 재판을 받을 권리를 확인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많은 사건에서 심판대상을 위헌으로 결정하지 않고 합헌적 법률해석을 통해 합헌으로 결정짓는 파행이 거듭되었다는 점도 지적되어야 한다. 또 법률의 효력을 유지시켜 주기 위해 헌법을 거기에 끌어 맞추려는 모습도 나타나 빈축을 사기도 하였다.
다섯째, 제헌헌법 아래에서 위헌으로 결정되었거나 위헌논란이 된 사항에 대해서는 헌법개정과정에서헌법전에 반영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였다. 특히 형사법분야와 관련해서는 명료하게 드러났다.
제헌 이전의 헌법재판과 제헌헌법 아래에서의 헌법재판의 실제를 분석해 볼 때, 결국에는 국가적으로 중요한 쟁점은 모두 헌법적 분쟁으로 매듭지어지고, 헌법에 반영함으로써 정리됨을 보았다. 아울러, 그와 같은 일련의 과정이 국민적 합의에 기초하고 또 국민적 동의를 받으면서 이루어진 것인지가 핵심임을 본다.
Hier werden die Entscheidungen über die verfassungsrechtliche Sachen vor und nach dem Zeitpunkt des In-Kraft-Tretens der Verfassung von der 1. Republik Süd-Korea (nur bis 1960) besprochen, wie folgende.
Zuerst werden die Entscheidungen vor dem Zeitpunkt der ersten Verfassungsgebung (1948) in Süd-Korea behandelt. Schon in der Zeit der Provisorischen Regierung der Republik Korea in Shanghai, China, wurde das Amt für den provisorischen Präsident Rhee aufgrund der provosorischen Verfassung im Amtsenthebungsverfahren überprüft und enthoben. Diese Entscheidung ist im Hinblick auf den Konstitutionalismus und das Rechtsstaatsprinzip sehr hoch zu bewerten.
Das Grosse Gericht (bzw. Supreme Court of Korea) verhängte über § 14 I KBGB, bzw.
die Bestimmung über die Einbeschränkung der Fähigkeit der Ehefrau Anwendungssperre.
Auch nach dem Zurückziehen des Japanischen Militärregime wurde das alten, japanischen JBGB in der Kolonialzeit noch immer als das koreanischen Gesetz leihenweise und dem Umständen entsprechend angewendet. Diese Entscheidung wirkte sich positiv auf die Gleichheit zwischen Mann und Frau aus, dennoch mit der noch hintergebliebenen Probleme.
Einerseits waren dabei weder gesetzliche Gründe für die Zuständigkeit noch klare Kriterien für die überprüfung zu finden. Andererseits zeigte sich mittelbar aber klar die politische Absicht des Grossen Gerichts, die Bestimmungen über seine Zuständigkeit für die Verfassungswidrig- keitsentscheidung in der neuen Vefassung zu verankern. So wollte es sich dadurch in der Mitte der politischen Auseinandersetzungen um die neue Verfassungsgebung einsetzen und dabei eine günstige Gelegenheit ergreifen.
Dann kam die Zeit der ersten Verfassung (1948) in Süd-Korea, mit der viele und verschiedene Entscheidungen über die verfassungsrechtliche Sachen behandelt wurden.
Erstens gab diese Verfassung die Verfassungsgerichtsbarkeit nicht an dem Grossen Gericht sondern an dem Verfassungskomitee. was zur Vermutung führt, dass die damalige Justiz nicht so viel Vertrauen gewonnen hätte und als negativ bewertet worden wäre.
Geregelt war noch weiter in Art. 82 Verfassung als irgendeiner Kompromiss, indem einerseits dem Verfassungskomitee die für die überprüfung über das Gesetz mit Verfassung, andererseits dem Grossen Gericht die Zuständigkeit für die überprüfung über Verordnungen und Verwaltungsvorschriften mit Verfassung und Gesetz verteilterweise verliehen waren.
Als dessen Folge wurde auf den Entscheidungen des Verfassungskomitee schwere Nebenwirkungen veranlassen, die von dem Verfassungskomitee letztlich nicht genügend aufgelöst oder gut geheilt werden konnten.
Zweitens beträgt die Zahl der Verfassungswidrigkeitsüberprüfung in der 1. Republik Süd-Korea nur 6 Fälle und waren darunter nur 2 Fälle als verfassungswidrig verurteilt.
Seine unbefriedigende Ergebnisse kann man nicht einfach ausser acht lassen, die also noch auf den zukünftigen Spielraum für weit lebendigere Tätigkeiten der Verfassungsgerichtsbarkeit vorbereiten.
Drittens wurde sich überprüfungstätigkeiten des Verfassungskomitee höchstens auf dem Zeitraum von 1952 bis 1954 beschränkt, und blieb danach in Wirklichkeit fast still, weil der damalige Präsident Rhee sich absichtlich verzögert hatte, seine Mitglieder für unbesetzte Stelle zu wählen und zu nennen. Die Ursache dafür bezieht sich grundsätzlich auf die Verschlechterung der politischen Umständen sogar zur autoritären Regime, was dazu führte, dass das Verfassungskomitee seit der zweiten Hälfte von 1954 in die schlafende Phase gebracht wurde.
Viertens soll man den schmalen Erfolg des KVerfK noch aus anderem Gesichtspunkt betrachten. Im Gegensatz zu zwei erfolgreiche Fälle der Verfassungswidrigkeitsentscheidung gaben es schon viele Verfassungsmässigkeits- entscheidungen, über dessen Gegenstand mit Hilfe der verfassungskonformen Auslegung so entschieden wurden, was als eine Art von hinkenden Tätigkeiten zu bewerte...
분석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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