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石亭 李定稷 文人畵의 審美意識 考察 = Aesthetic Sense Examination of Muninhwa Worked by Seokjeong Lee, Jeongzic: A Journey Beginning from Goisuk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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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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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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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4-320(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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石亭 李定稷(1841-1910)은 19C 조선 말기 호남 儒學을 대표하는 학자로 海鶴 李沂(1848-1909), 買泉 黃玹(1855-1910)과 ‘湖南三傑’로 일컬어지는 인물이다. 부안에 隱遁自適하며 磻溪隧錄을 저술한 磻溪 柳馨遠(1622-1673)의 실학적 기풍을 이으며 조선말기의 급박한 상황에서 호남을 중심으로 실학적 학풍이 흥기시키는데 크게 일조하였다. 철학적 영역은 말할 것도 없고, 한문학이나 역사학, 卜筮, 星曆, 律呂, 算學, 機械 등 삶에 필요한 거의 모든 학문에 심취했다. 이른바 신학문으로 불리는 서양 철학가 칸트와 베이컨을 국내에 최초로 소개하였고, 北學으로 불렸던 중국학의 수용 그리고 순수한 우리의 國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학문섭렵을 했고, 호남에 古文을 정착시킨 문학가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25권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의 『燕石山房未定稿』를 남겼을 정도로 道學과 詩文에 대한 학문적 역량이 대단하였을 뿐만 아니라 어학ㆍ천문ㆍ지리ㆍ의학ㆍ서화 등 여러 분야에서 一家를 이루었다.
또한, 그의 文集에서 드러나듯이 28세에 燕京(현, 북경)을 다녀온 유학파로 博學과 實證을 중시하는 好學精神과 학문의 유기적 연관성이 그의 평생학문과 서화예술에 점철되었다. 燕京에서의 문화ㆍ 예술적 자극은 그의 심미의식의 시야를 폭넓게 넓혀주는 요인이 되어 이러한 탄탄한 학문적 역량 위에 축적된 書卷氣가 書畵작품 속에 녹아내려 서예와 篆刻은 물론 山水ㆍ花鳥ㆍ翎毛에 이르기까지 兼通하여 그의 학문적 역량과 예술적 감성이 한데 어우러져 고매한 逸格의 풍취를 드러냈고, 德性까지 겸비하였기 때문에 당시 通儒라고 불리기도 하였던 전북지역 최초의 삼절작가로 일컬어지고 있다.
석정의 서화론은 古를 중시하여 師法으로 삼는 것이 재능을 펼칠 수 있는 방법임을 제시하고 있다. 詩文은 古文論에 기반을 두었으며, 書法을 바탕으로 文人畵를 연마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古는 단순한 시간상의 되돌림을 통한 무작정 과거로의 回歸가 아니라 불변의 本質, 즉 현상과 형식 안에 깊이 간직되어 있는 근원으로서의 恒常性을 의미한다. 이른바 法古를 바탕으로 해야 올바른 創新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는 法古創新論을 주장했는데, 得意忘象의 古法 수련에 진력하여 실사치용적 학문론에서 발현한 外整과 內逸에 의한 雅美를 나름의 藝術情神과 意境으로 삼았던 것이다.
석정은 문인화의 다양한 소재 중 특히 필법이 독특하고, 자신의 호를 石亭 또는 燕石이라 할 만큼 石을 숭모했는데, 石을 단지 자연물의 하나로 보지 않고 하나의 인격체의 지성과 지혜로 선비들이 지향해야 할 比德의 상징으로 여겼던 것이다. 그리하여 자신의 性情과 稟性을 도야하여 致知에 이르고자 하였고, 음양의 대대조화를 이루며 외형의 형식과 내면의 본질이 잘 어우러져 作爲的이지 않으면서 調和를 이루는 文質彬彬의 객관적 상관물로 삼았다. 그의 괴석도는 단순화되고 유연한 線과 飛白의 筆法 그리고 餘白의 공간 처리로써 孤高한 문인선비의 정신세계를 도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면서도 모든 작품이 공통적으로 매우 法古에 입각한 事實的인 특징을 보인다. 이는 畵題의 내용만으로도 그 그림의 모든 것을 표현하고 설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당시 괴석도를 그린 화가들과의 차이점이 보인다.
석정은 괴석도의 창작 원리를 古文作法에 비유하여 문장은 俗氣가 있으면 眞文이 아니듯, 바위도 累習이 있으면 眞石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석정은 제자들이나 후학들에게 古文이나 古法의 중요성과 法古創新을 강조했는데, “法을 추구하면서 재능이 미치지 못하는 자는 있지만, 法을 추구하지 않으면서 재능을 다하는 자는 없다.”고 하면서 학문의 끊임없는 연마가 없는 創新만을 배척했다. 이는 사물의 정신과 변화와 새로움을 작가 내면의 소통과 만남으로 융합하여 重神輕形의 寫意ㆍ傳神을 중시하는 南宗文人畵論을 추구하였고, 이러한 怪石圖를 통해 자신의 사상과 예술관을 畵以載道의 逸格의 예술경지로 승화시켜 紙面에 발현하여 韓國的 文人畵의 眞景을 이루었다.
특히 전북서단에 있어서 석정의 출현은 이전과는 달리 뚜렷한 師承的 書脈을 형성하게 된다. 이러한 師傳에 의한 전통서예의 확립은 물론이거니와 문인예술로서의 서화를 지향하여 詩ㆍ書ㆍ畵 三絶의 예술경지를 활짝 꽃피웠다. 그리하여 석정을 중심으로 하는 19C 전북지역 서예술은 전대미문의 굳건한 토대를 마련함으로써 마침내 20C 全北書壇의 위치를 확고히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Seokjeong Lee, Jeongzic (1841-1910), a scholar representing Honam confucianism in the late Choseon in 19C, is called one of Honamsamgul including Haehak Lee, Gi (1848-1909), Maecheon Hwang, Hyun (1855-1910). In secluding himself in Buan region, he continued to possess an practical attitude drawn from Bangesurok wirtten by Bange Yu, Hyungwon (1622-1673). He contributed to thriving practical studies in the center of Honam even under politically urgent circumstance in the late Choseon. In additon to philosophy, he devoted his life to studying virtually everything that was considered to be necessary in life: horoscope, mathematics, and machine. Not only was he remarkable to the point that he left Yeonseoksanbangmijeongmungo composed of 25 books, he was also extraordinary in other fields such as linguistics, astronomy, geography, medical study, paintings and calligraphic arts. He introduced Western philosophers, Kant and Bacon, in the name of Sinmunhwak-new studies, to the nation first. Furthermore, he mastered various studies ranging from Chinese studies to Korean studies. He was highly respected as a literature expert who helped 'old literature' to root in Honam region. As shown in the collection of literature, he had, also, studied in Bukkyeong at the age of 28. Hoharkjeongsin emphasizing extensive learning and practical evidence and interconnection between studies melted down in his studies and paintings and calligraphic arts. Cultures and arts in Bukkyung served as motives for him to widen his eyes related to aesthetic arts. Needless to say about calligraphy and seal craving, enormous energy stemming from extensive, intensive learning is revealed in his paintings and calligraphyic arts, involving mountain and water, flower and bird, and feathers of birds. Since he was good natured, he was called a first Samjeol author, who shows excellency in poem, calligraphy, and painting, also called Tongyu, which referred to a person who exhibited extraordinaries in Confucianism at that time, in Jeonbuk Province.
The theory of Seohwaron -paintings and calligraphy- by Seokjeong suggests that adopting confucianism as a guide, which emphasizes the importance of old things, is a method in which potential talents can be developed further. Prose and poetry founded on theory of old literature called Gomunron showed a view of which Muninhwa must be acquired through practicing calligraphy first. Insisting on Bubgochangsinron which specifies that the ability of creating new things can be only achieved through learning old things, he took spirit of art and boundary of meanings as gracious beauty by outlook and will shown in practical theories based on physical evidence in the process of acquiring old disciplining method in which once one gets what an object ultimately represents, don't think about its physical looking any more.
Seokjeong employed a host of materials in Muninwha, displaying a distinctive brush touch. Through Goiseokdo that Lee, Jeongzic enjoyed as much as he called his pen name Seokjeong or Bukseok, he upgraded his ideology and view of art onto the stage of 'the uppermost art'- which is accomplished by confucianism through practicing drawings- and made realistic landscape of korean paintings and calligraphy shown on the paper called Hwaseonji. He thought of 'rock' as a symbol of 'virtue', which must be pursued by well educated men dubbed 'Seonbee' in one's intelligence and wisdom. Thereby, he wanted to cultivate his disposition as well as behaviors, finally reaching awareness. In referring a harmony in between 'Yin' and 'Yang', he regarded it as an objective correlational thing of showing excellency in appearance and substance, not artificial but well harmonized. It can be viewed that his Goisukdo enables to present Muninseonbee's spiritual world where simplicity, smoothly painted lines, a way of painting with a light brush touching, and intentionally left space were featured mostly in self-disciplined Muninseonbees' 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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