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람 이병기 시조의 현대적 의의 = The Significance of Garam Lee Byeong-gi’s Sijo in the Contemporary 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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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지명
권호사항
발행연도
2015
작성언어
-주제어
KDC
120
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7-30(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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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람 이병기에게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준 사람은 주시경이다. 그는 주시경의 강의를 통해 한글 사랑을 통한 민족의식을 갖게 되었다. 그의 시조 창작은 한글 사랑의 일환이었다. 시조는 한글을 활용하여 우리의 정조를 표현할 수 있는 고유의 시형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시조 창작의 배경에는 한글에 대한 깊은 사랑과 일제강점기 한국인의 민족의식이 가로놓여 있다. 그는 국문학 연구에서 한글 문학을 늘 우위에 두고, 설화나 판소리 등의 ‘서민문학’을 문학사 기술에 적극적으로 도입하여 한국문학사의 폭과 깊이를 확대했다. 시조의 경우에도 유학자적 풍류의 시조보다는 정감 표현의 시조, 언어 구사의 묘미를 살린 시조에 더 관심을 두었다.
이병기에게 책은 단순한 지식의 기록물이 아니라 선인들의 정신이 담긴 저장소다. 그래서 그는 평생 우리의 고전 전적을 모으고 읽고 연구하는 일로 일관했다. 일제강점기 동안 수천 점의 고서를 수집했는데 그것을 모으는 정성에는 애국의 사명감이 깃들어 있었다. 그는 책을 읽고 연구함으로써 어려운 시대를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얻었다. 그는 앞날의 기약이 보이지 않는 일제강점기 암담한 상황 속에서 망해버린 나라의 옛 전적을 모으고 사랑하기를 자신의 몸처럼 하였다. 그의 시조 창작은 이러한 민족정신의 연장선상에 피어난 봉화다.
이병기는 시조의 형식적 특징을 3장 8구로 설명했는데, 이것은 시조의 형식이 자유롭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이와 함께 그는 시조의 ‘격조’의 문제를 중요하게 제기했다. 음악으로서의 창(唱)이 사라진 현대의 단계에서는 의미와 소리의 호응이 중요성을 지닌다고 보고 그것을 ‘격조’라는 말로 나타낸 것이다. 그가 설명한 형식의 자유로움, 그리고 격조의 중요성은 그의 시조 창작에 자연스럽게 투영되어 나타난다. 그는 시조를 창작할 뿐만 아니라 시조를 보급하는 데에도 적극적이었다. 고시조 300여 편을 소개한 『역대시조선』(1940)을 발간했고, 새로운 시조 시인을 배출하는 데에도 힘을 기울였다.
해방 후 국어 교과서 편수관이 되어 고전 시조와 현대시조를 교과서에 실음으로써 시조 대중화에 크게 기여했다. 이병기의 시조가 지닌 현대적 의의는 그가 벌인 이러한 다양한 활동에서 조명되어야 한다. 이러한 통합적 노력은 당시 어느 누구에게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가람만의 독자적 영역이었다.
The one that influenced Garam Lee Byeong-gi the most directly was Ju Si-gyeong. Based on Ju Si-gyeong’s lecturing, he could have national consciousness with love towards Hangul (Korean alphabet). His creation of Sijo was part of his love to Hangul. Sijo was an original form of poetry in which Hangul was used to express our own sentiment. In the background of his creation of Sijo, his deep affection to Hangul and Koreans’ national spirit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era were present. He always put emphasis on Hangul literature in his studies on Korean literature and introduced ‘popular literature’ such as folk-tales and Pansori aggressively in his description of our history of literature to increase both width and depth in the history of Korean literature. About Sijo, too, he showed more interest in Sijo that expressed sentiments or highlighted the beauty of using words rather than those dealing with Confucian taste for the arts.
To Lee Byeong-gi, classic books were not just records of knowledge but storage of our ancestors’ mind. This is why he strived to collect, read, and study our classical records consistently in his entire life.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era, he gathered thousands of old books, and his endeavoring to collect them all reflects his sense of mission for patriotism. His attitude of reading and studying did empower him to overcome that harsh era. In the dark circumstances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era when he could not see any promising future, he collected the old records of his country that had already collapsed and loved them just like his own body. His creation of Sijo was a sort of signal fire raised on the extension of such national spirit of his.
Lee Byeong-gi explained Sijo’s formal characteristics with 3 lines-8 bars, and it was because he meant to emphasize Sijo had a free form. Along with this, he also raised the matter of ‘gyeokjo’(elegant tune) in Sijo importantly. In the phase of the contemporary age with no ‘chang’(singing) as music, he deemed that correspondence between meaning and sound was very important and referred to it as ‘gyeokjo’. The free form and importance of gyeokjo he came up with are naturally found in his creation of sijo. He was active about not only writing but distributing Sijo. He released ‘Yeokdaesijoseon’(1940) which introduced about 300 pieces of classical Sijo and made efforts to foster new poets of Sijo. After the emancipation, he became an editorial officer of Korean textbooks and included both classical and modern Sijo in the textbooks, which contributed greatly to the popularization of Sijo. The contemporary significance of Lee Byeong-gi’s Sijo should be examined from the aspects of these various activities of his. This kind of integrative effort was, in fact, Garam’s unique, extraordinary area which can hardly be found in any other person in that 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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