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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강유역(榮山江流域) 마한제국(馬韓諸國)의 추이(推移)와 백제(百濟) = A transition of Mahan(馬韓) Many States in Yeongsan River Basin and Baekje(百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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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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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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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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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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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128(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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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한의 맹주였던 馬韓은 서울 지역에서 성장한 백제의 성장과 맞물려 쇠퇴의 기로에 섰다. 그렇지만 영산강유 역의 마한 세력은 독자성을 유지하면서 오랜 기간에 걸쳐 존속했음이 문헌 자료나 고고학적 물증을 통해 드러나 고 있다. 가령 289년에 新彌國 등 20여 國이 西晋과 교섭하였다. 해남반도에 소재한 침미다례와 동일한 정치체인 新彌國은, 목지국의 몰락을 기화로 지역연맹체의 맹주로서의 위상을 확보했다. 이 무렵 영산강유역에는 甕棺을 主된 墓制로 채택하였고, 급기야 高塚墳墓로까지 발전시켰다. 고유한 색깔을 지닌 강대한 세력 결집을 웅변해주는 현상인 것이다.그런데 新彌國 곧 침미다례는 369년 백제 근초고왕의 南征으로 인해 초토화되고 말았다. 반면 戰禍를 입지 않은 영산강유역의 羅州 반남 세력이 새로운 覇者로 등장하였다. 이곳은 마한 54개 國 가운데 內卑離國으로 지목할수 있었다. 內卑離國의 수장묘인 신촌리 9호분은 거대한 봉분에다가 신분의 지표가 되는 金銅冠과 大刀는 질과 양에 있어서 백제 지방세력의 그것과는 차이가 나고 있다. 백제와 구분되는 內卑離國王의 독자성과 권세를 가늠해볼 수 있는 지표인 것이다. 內卑離國은 良質의 鐵鑛과 海産 자원은 물론이고, 비옥하고도 광활한 농경지에서 축적한 剩餘農産物을 통해 마한의 맹주로서 번성을 謳歌하였다.5세기 후반 백제는 漢城 함락으로 인해 熊津城 遷都를 단행했다. 이후 백제가 추진한 이탈한 지방 세력에 대한흡수라는 일련의 정복 과정이 펼쳐졌다. 5세기 말경 內卑離國은 백제의 外壓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역사의 激浪속으로 떠밀려 가고 말았다.5세기 말까지 영산강유역의 馬韓 勢力은 장기간에 걸쳐 백제와 協力과 葛藤을 반복하였다. 또 馬韓은 백제와對峙하면서 독자적인 문화와 정치적 위상을 누리고 있었다. 그러한 마한 세력은 494년에 만주 지역에 소재하였던東아시아의 老大國인 夫餘가 고구려에 병합될 쯤 백제에 흡수되고 말았다. 그러나 영산강유역에서 마지막으로 發花하였던 馬韓의 역사와 문화는 결코 잊어진 대상이 될 수는 없다. 加耶의 前身인 弁韓까지 호령했던 마한의 역사.
더보기Mahan, which was the leading power in the Three Hans(三韓), fell into decline with development of Baekje grown in Seoul area. However, the facts that Mahan forces in Yeongsan River basin kept their identity and perdured for a long time are proved through literature materials and archaeological evidence. For example, about 20 nations including Sinmiguk(新彌國) conducted negotiations with Western Qing(西晉) in 289. Sinmiguk, which is the same political body as Tomutare in Haenam(海南) peninsula, secured its status to lead regional federation power due to degeneration of MokZi(目支國). This time, jar-coffin was mainly adopted as tomb style in Yeongsan River basin. At last, it was developed to large sized tombs. This phenomenon represents a powerful influence concentration which has peculiarities. However, Sinmiguk, that is to say Tomutare was burnt to the ground by King Geunchogo`s conquest of the west. On the other hand, new force held of supremacy. It was from Naju(羅州) Bannam(潘南) near Yeongsan River, where it was not destroyed during war. This area could point out as Naebiri(內卑離國) among 54 nations of Mahan. Naju Shinchon-ri 9th tomb, which is tomb of head of Naebiri, is a grave mound. Also status indicators such as gilt bronze crowns and long swords are distinguished from that of Baekje provincial powers, as to quality and quantity. It is the indicators of Naebiri`s identity and authority, not related with Baekje. Naebiri had good quality of iron and marine resources. With these resources and farm surpluses from vast, fertile farmland, Naebiri eulogized prosperity as the leading power of Mahan. In the second half of the fifth century, Baekje transferred the capital to Ungin Castle(熊津城) due to the fall of Hansung(漢城). After that, Baekje carried out a series of conquering process which means assimilation of breakaway provincial powers. Eventually in the late fifth century, Naebiri faded into the rip current of history because of the external pressure of Baekje. Until the late fifth century, Mahan forces in Yeongsan River basin repeated cooperation and conflicts with Baekje for a long time. Also Mahan basked in independent culture and political status confronting with Baekje. And then in 494, Mahan forces were absorbed to Baekje when Buyeo(夫餘), which was located in Manju area and a great state that has grown old, were merged into Goguryeo(高句麗). However, the history and culture of Mahan that had its heyday last in Yeongsan River basin cannot be forgotten. Can the history of Mahan, once ruled over By?nhan(弁韓), which was formerly Gaya(伽倻), be buri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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