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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회요>의 작품 세계와 윤선도의 현실 인식 = Oeuvres of Gyeonhoiyo & Yoon Seondo’s perception of reality
저자
김용찬 (순천대학교)
발행기관
학술지명
권호사항
발행연도
2022
작성언어
Korean
주제어
등재정보
KCI등재후보,미등재
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7-40(34쪽)
제공처
Sijo is a genre of poetry that was created and enjoyed by Sadaebu during the Chosun Dynasty. Sadaebu placed a priority on social responsibility by going to public office once their own personal moral discipline was premised. They regarded the creation of literary works such as Chinese poetry as the basic means of discipline, among which Sijo and Gasa are the literary style which best reflects their worldview and aesthetic point of view. Yoon Seondo, who wrote 75 pieces of Sijo in total, was a person who abided by the Seongrihak ideology throughout his life. This article will delve into the meaning of his early work, Gyeonhoiyo, as well as his perception of reality. Uhuyo, which was written around the same time, will be referred for better understanding Yoon Seondo’s perception of reality.
Gyeonhoiyo, which is composed of a total of 5 pieces, is his earliest work. The use of Chinese characters was minimized and the simple Hangeul(Korean letter) was used in his work. Yoon Seondo, one of the representative Sijo poets of the Chosun Dynasty, began his work from his exile period. He criticized the ruling powers at those times, for which he was sentenced to exile by the king’s order. His exile, where he was secluded from the outside world, must have been reflected in his works.
As Gyeonhoiyo and Uhuyo were written during this time, they make good resources to probe Yoon Seondo’s perception of reality.
Yoon Seondo played a role in raising the potential of Hangeul and connecting literature with life by his Sijo genre. As his works mainly chanted the beauty of nature, he has been evaluated as ‘poet of natural beauty’, and the language and rhythm used in his works are outstandingly soft and lyrical. Yoon Seondo, who took a principled stance on every political issue, had been the target of criticism and checks from other sides, which, in turn, led him to resignation and exiles on several occasions. Yoon Seondo expressed his feelings by creating a piece of Sijo at every major phase of his life. Gyeonhoiyo in this regard will be a great window through which his perception of reality can be best observed.
In this article, the aspects of his life in exile at the time of writing Gyeonhoiyo will be examined, which will be preceded by the review of the appeals containing unrestrained criticism of those in power in his time. The conflicts that was developed by the appeals will also be briefly reviewed. In addition, the meanings of the Chinese poems and Sijo works will be reflected, which were created in Gyeongwon, Hamgyeong Province, where Yoon Seondo lived in exile. Based on this, Yoon Seondo’s works of Gyeonhoiyo and Uhuyo will be reflected and his perception of reality at the time of creation will be discussed.
시조는 조선시대의 사대부들이 중심이 되어 창작하고 즐겼던 시가(詩 歌) 갈래이다. 이들은 무엇보다 개인의 도덕적 수양이 전제된 이후에 관직에 나아가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평소 한시(漢詩)와 같은 문학작품을 창작하는 것을 수양의 기본 수단으로 삼았는데, 특히 시조와 가사는 사대부들의 세계관과 미의식을 가장 잘 반영한 문학 양식으로 평가되고 있다. 모두 75수의 시조 작품을 남긴 윤선도(尹善 道:1587~1671)는 평생 성리학적 이념을 투철하게 지키며 살았던 인물이다. 이 글에서는 그의 초기작인 <견회요(遣懷謠)>를 대상으로, 작품에 나타난 의미와 작가의 현실 인식을 알아보고자 한다. 비슷한 시기에 창작된 <우후요(雨 後謠)>도 작가의 현실 인식을 파악하는 참고 자료로 활용하기로 하겠다.
전체 5수로 구성된 <견회요>는 그의 시조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에 창작된 작품이며, 전반적으로 한자의 사용을 최소화하면서도 쉬운 우리말을 활용해 형상화하였다.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시조 작가인 윤선도의 작품 창작은 유배지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윤선도는 당대의 집권 세력을 비판하는 내용의 상소문이 문제가 되어, 왕명에 의해 유배형이 내려졌다. 외부와 단절된 유배지에서 지냈던 작가의심경이 당시 창작된 작품들에 반영되었을 것이다. <견회요>와 <우후요>가 이 시기에창작되었기에, 당시 윤선도의 현실 인식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자료라고 하겠다.
윤선도는 시조 갈래를 통해서 한글의 잠재력을 끌어올리고, 문학을 삶의 현장과 연결시키는 역할을 했다. 그의 작품들이 주로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했기에 ‘자연미의시인’이라고 평가되며, 작품에 활용된 언어와 리듬이 지극히 부드럽고도 서정적이라고 할 수 있다. 윤선도는 정치적으로 매사에 원칙적인 입장을 지녔기에 상대 세력의비난과 견제가 그에게 집중되기도 했다. 그로 인해서 그는 여러 차례 관직에서 물러나거나, 유배를 떠나야만 했다. 윤선도는 일생의 주요 국면마다 시조를 창작하여 자신의심정을 표출하였다. 따라서 <견회요>를 퉁해서 당시 윤선도가 느꼈던 현실 인식의 면모를 살필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에서는 <견회요>를 창작할 당시 유배 생활의 면모를 파악하고, 이에 앞서 권력자를 향한 거침 없는 비판을 담고 있는 상소문의 내용을 검토해보겠다. 이와 함께 상소문으로 전개된 조정의 갈등 상황에 대해서도 간략하게 살펴보겠다. 아울러 유배지인함경도 경원에서 창작한 한시와 시조 작품들의 의미를 고찰해보겠다. 이러한 내용을바탕으로 <견회요>와 <우후요>에 나타난 작품 세계를 고찰하고, 창작 당시 작가의 현실 인식을 논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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