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소설의 정서구조와 그 형상화 방법
저자
변정화 (경원전문대학 문예창작과)
발행기관
학술지명
권호사항
발행연도
1997
작성언어
Korean
주제어
KDC
810.000
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383-422(40쪽)
제공처
소장기관
이 글은 식민지 시대 한국 경향문학의 경직된 인식구조 안에 숨겨진 미세한 정서와 심리의 숨결을 드러내 보기 위해 작성되었다. 경향문학의 창작방법론에 망라된 인식구조를 먼저 검토했고 이것이 어떻게 '느껴진 사고'이자 '사고된 느낌'으로 형상화되는가를 분석하였다.
문학을 세계의 인식과 변혁의 도구로 삼고자 했던 경향문학의 창작방법론은 우리 근대문학사상 최초로 과학에 토대를 두어 형성된 것으로서, 그 핵심은 계급적 관점에서 사물을 매개하고, 역사의 필연을 향하여 운동하는 현실을 전체적 관점에서 형상화하는 것이라고 요약될 수 있다.
한편, 이러한 과학적인 개념들은 작품 속에서, 문제적 인물의 영웅적·구세적 소명감과 실천적 행위, 파국에 대한 기대가 함축된, 응징과 복수의 플로트, '우리'의 재창조에 대한 시도, 발전적인 미래전망에 대한 낙관적인 정조 둥으로 구체화되고 있는데, 이러한 문학현상들은 경향문학 고유의 서사국면을 형성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살피면, 대상작품들은 공통적으로 아래 세 단계를 밟으며 구조화된다.
1) -지금' , '여기' , '있는 현실'의 재현. 세계는 가해자와 피해자, 지배자와 피지배자로 양극화되어 있고 모순과 불균형이 미만해 있다.
2) -이 현실은 계급사상을 가진 구세자적 인물의 등장으로 동요하기 시작하여, 작중인물들의 투쟁의 동력에 의하여 일정한 가치체계를 중심으로, 계급사상이 지향하고 있는, '있어야 할'현실을 향하여 나아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응징과 복수의 플로트가 구사된다. 이 때 무산자의 구원가능성, 나아가 세계의 부정성을 상쇄해주고 불균형의 상태를 균형상태로 전환시키는 모든 원리는 오로지 계급사상으로부터만 온다.
3) -이 새로운 규범에서 비롯되는 무산자들의 투쟁은 가해자의 악을 징벌하거나 기약함으로써, 흑은 회생자의 구원을 암시함으로써 현실의 부정성을 상쇄시키거나 불균헝의 상태를 균형상태로 조정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예시한다. 따라서 작품은 '해피 엔딩'으로 귀착된다. 일견. 매우 단순한 스토리 라인을 따라 행복한 상승선을 그리는 것이다.
그러나 이, 淨上하는 힘찬 구조의 형성과정은 매우 안이하며, 그래서 공허하다. 작중인물들은 그들의 추상적 이론과 구체적이고 복잡한 현실 사이의 매개과정을 거치지 않고, 정해진 결론을 향하여 곧바로 나아가고 있다. 혼란, 갈등, 긴장, 후퇴. 심리의 굴절, 단 한 순간의 유보도 없다. 따라서 작품은 치열한 갈등과 투쟁으로 구조화된 사회극이 아니라. 계급사상 신봉을 역설하는 선전극, 혹은 계급사상의 신봉 여하에 따라 몰락과 구원이 결정되는. 구원극의 형태를 띠게 된다.
경향문학이 필연적으로 지닐 수밖에 없는 정치성과 선전 ·선동에 대한 選好가 리얼리티와 심미적·정서적인 신뢰를 얻는 관건은 1)의 현상과 원인을 객관적으로 탐구하고. 1)과 2)의 매개과정 및 이 과정에서 유발될 수밖에 없는 '독특한 내적 긴장감'을 역시 객관적으로 묘사하는 데에 있다. 사회적인 모순의 지양을 위해서는 길고 복잡한 변증적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작품은 지도적 인물의 추상적인 사상과 구체적인 일상생활 흑은 구체적인 실천 사이에 놓인 복잡한 관계가 어떻게 뒤엉키며 매개되어 변증적으로 통일되는가의 과정을 성찰하고 탐구하여 이를 형상화할 필요가 있다. 그럴 때, 경향이 내용에 추상적으로 부착된 것이 아니라 소재 자체로부터 우러나오는, 훌륭한 정치소설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경향문학은 이 점에 실패했다. 우리가 대부분의 경향소설에서 발견하는 것은 불모화된 미학과 나쁜 경향성이다. 그래서 그 현실적·미적 반향은 메마르다.
그러나 이러한 미학적 실패에서 오히려 부각되고 있는 것은 이데올로기의 초심자로서 작가들이 가졌던 과장된 미래전망, 이 신흥사상이 그들에게 불어 넣어 주었던 미래에 대한 강렬한 암시 등이다. 그리고 이 사상의 호소력에 그토록 의지할 수밖에 없었던, 신이 떠나버린 시대에 대한 깊은 상실감이다. 스스로 과학적이라고 자처하는 그들의 개관주의, 이것의 근저에는 시대구속적인 보상심리와 환상주의가 도사려 있었던 것이다. 경향문학은 혁명과 투쟁의 문학이었으며 동시에 소망과 위안의 문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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