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對淸使臣의 ‘공식보고’와 정치적 파장
저자
발행사항
서울 : 서울시립대학교 일반대학원, 2009
학위논문사항
학위논문(석사) -- 서울시립대학교 일반대학원 , 국사학과 , 2009. 2
발행연도
2009
작성언어
한국어
주제어
KDC
911
발행국(도시)
서울
형태사항
ⅲ, 60p ; 26cm
일반주기명
지도교수 :배우성
소장기관
병자호란 이후부터 중원의 정세가 안정되는 1680년대까지는 조선과 청의 관계에 있어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 이유로 우선 양국의 관계가 형성되는 시기였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 당시 형성된 인식은 당시의 역사적 상황을 반영하는 동시에 이후시기의 인식에도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해당 시기에 중원의 정세가 유동적이었다는 점이 주목된다. 역사적으로 중원의 정세변동은 언제나 주변국가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따라서 17세기 중원의 유동성은 조선내부의 정치적 갈등을 증폭시킬 가능성이 높았다.
청을 대상으로 한 기존의 연구에서 병자호란 이후 17세기는 아직 주요한 분석시기가 되지지 못하거나 혹은 전근대시기 대외정보가 갖고 있는 ‘불확실’한 요소를 간과했다. 이 글에서는 對淸사신들이 갖고 있던 다양한 ‘역사적 변수’들에 주의하면서, 그들이 제출한 공식보고 내용의 경향성을 분석하고 그 대외정보가 조선내부의 정치상황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를 파악했다. 구체적인 연구시기는 병자호란 이후인 1637년부터 대만 정씨세력이 청조에 귀순함으로써 어느 정도 대외정세가 안정되었다고 인식하는 1685년까지로 설정하였다.
병자호란 이후 조선의 관심은 청 내부정세의 안정성과 明에 대한 공격여부에 있었다. 그러나 청의 강력한 압박이 수반된 조공요구와 명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으로 인해 조선의 관심은 점차 청의 요구를 처리하는 일에 집중되었다. 한편 청의 요구 중 助兵은 조선군이 중화의 상징인 明을 공격할 것이라는 인식 때문에 반대여론이 생길 것이 자명했다. 이 점을 의식한 使臣들은 징발된 조선의 병사가 전쟁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든지, 혹은 전쟁에 참여해도 明軍과 직접 싸우지 않을 것이라고 조병을 합리화하였다.
청은 북경을 장악한 이후 중원에 대한 지배권을 점차 확립해갔지만, 使臣들은 청이 패망할 가능성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보고했다. 정확한 정보파악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 조선의 南明政權에 대한 희망은 남명정권이 멸망한 이후에도 지속되는 등 대외정보는 불확실한 부분이 많았다. 한편 이 시기에는 군비강화정책이 시행되고 있었는데, 현종9년 몽고의 청에 대한 반란정보는 군비강화의 좋은 구실이 되었다. 몽고에 대한 정보가 몽고의 조선침공 가능성으로 해석된 이후, 이듬해까지 일련의 군비강화책이 시행되었다. 결국 현종10년, 훈련도감의 감축으로 상징되는 군비축소론이 제기되었고 이를 둘러싼 갈등이 상당기간 발생하였다.
1673년 ‘三藩의 亂’은 중원을 다시 요동치게 만들었다. 그런데 청조의 패망에 대한 기대는 정보의 불확실성을 증폭시켰다. 使臣들은 ‘三藩의 亂’이 진압되어가는 시점에서도 여전히 吳三桂의 승리를 강조하거나 청의 불리한 상황을 전달했다. 또한 정보부족으로 인해 대만의 조선침공의 가능성도 제기되었다. 숙종 초 南人내부의 갈등이 존재하는 상황 속에서 남인 내 일부세력은 대만침공설을 근거로 體府의 복설을 주장했고, 이후 이들은 체부를 통해 지방군뿐만 아니라 중앙군영의 통수권마저 장악하려고 했다. 이로 인해 빚어진 갈등은 숙종6년까지 지속되었다.
이 글에서는 주로 정치사 분야만을 다루었지만 청에 대한 인식을 통해 정밀한 역사상을 제시하는 것은 사상사 연구와 결합할 때 가능할 것이다. 조선 지식인이 대외인식을 형성하는 과정, 그리고 그것이 외교의 장에서 발현되는 양상 등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이들 연구가 이루어졌을 때 비로소 조선후기 대외인식이 갖는 역사적 의미가 보다 선명하게 드러날 수 있을 것이다.
The period from Byungjahoran(丙子胡亂, 1637) to the 1680s has an important meaning in the relations between Joseon(朝鮮) dynasty and Chi'ng(淸) dynasty because of the following reasons. First of all, ties between the two nations were formed in those days. The attitudes built up at this time not only reflected the historical situation of those days but also had effects on the circumstances afterwards. Next, the situation in the center of China was uncertain. Historically, the flexibility of the central district of the nation had been likely to cause political discord between politicians in Joseon.
The previous studies on Ch'ing dynasty haven't deeply dealt with 17th century after Byungjahoran, or they have looked over 'the uncertainty' of foreign information in the premodern period. This study analyzes the tendency of the reports which were written by the envoys of Joseon who had been to the Ch'ing (對淸使臣), and investigates the impacts of their information on Joseon, while focusing on the 'historical variables' related with the envoys. This study observes the period from 1637 after Byungjahoran to 1685 in which Koxinga(鄭成功)'s grandson surrendered to Ch'ing dynasty.
After Byungahoran, Joseon paid attention to the stability of Ch'ing and its possible attacks on Ming(明) dynasty. However, Joseon was made to focus on accepting Ch'ing's requests as Ch'ing asked Joseon to pay tribute and attacked Ming extensively. Of Ch'ing's requests, supporting soldiers could cause complication in Joseon because it meant the soldiers of Joseon could attack Ming, the symbol of China. The envoys of Joseon, who knew this well, rationalized Joseon's soldier supporting as reporting that they wouldn't be sent to the war, or they wouldn't be made to fight with Ming's soldiers despite their participants.
Though Ch'ing had been building up the control over the center of China after it held Peking under its control, the envoys in Ch'ing consistently reported the possibility of Ch'ing's collapse. Due to the lack of accurate information, Joseon didn't give up the hope of South Ming's rebuilding even after the dynasty was conquered by Ch'ing. In 1673, the central district of China was trembled again by the rebellion of Three Feudatories, and the expectation of Ch'ing's collapse amplified the inaccuracy of information. The envoys of Joseon emphasized the victory of Wu Sangui(吳三桂) even when the rebellion was defeated, or contended that Ch'ing remained in adversity. Lack of accurate information even made it possible for people in Joseon to believe that Taiwan would invade Joseon.
This thesis focuses on political history. However, suggesting more precise view of history through the understanding of Ch'ing will be possible with the study of history of thought. It is also important to investigate how Joseon intelligent formed foreign awareness and how they displayed their knowledge in diplomatic situation. These will make clear the historical meaning of foreign awareness in late Joseon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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