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I등재
개항기(1876~1910) 조선의 아편확산과 청국 상인 = The Spread of Opium and Chinese Merchants during the Open Ports Period (1876~1910) in Joseon
저자
박강 (부산외국어대학교)
발행기관
학술지명
권호사항
발행연도
2014
작성언어
Korean
주제어
등재정보
KCI등재
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5-44(40쪽)
KCI 피인용횟수
4
제공처
During more than a century after Opium War the opium raised a serious problem in chinese society. Over chinese border opium had an evil influence on neighboring Joseon. In Joseon the inflow and spread of opium began as soon as ports were opened. Especially chinese merchants related to the inflow and spread of opium from 1882 upward, when economic relations and trade between the two countries were active.
Throughout the nineteenth century China was having a serious social problem caused by opium. The two country, Joseon and Qing, maintained the close exchange each other and were border countries. So there was hige probability of opium's inflow into Joseon by China.
After opening port the opium problem of Joseon reached a serious standard by interchange between two countries, Joseon and Qing, though the government of Joseon took warning. At first glance, it was expected that the serious situation of opium spread occurred by illegal activities of chinese merchants taking advantage of consular jurisdiction when they gained through regulations for maritime and overland trade between Chinese and Korean subjects in 1882. Actually the curse of opium occurred after the SinoJapanese War.
Especially after treaty for commerce between Korea and Qing in 1899 as bilateral consular jurisdiction was maintained and a lot of chinese people such as small merchants and coolies moved to Joseon, most of them engaged in illegal activities referring to opium.
As a result around 1910 opium spreaded across the nation. the main culprit of opium diffusion was chinese merchants. With this negative recognition on chinese people was stamped on korean. That affected the exclusion of overseas chinese in japanese colonial era.
아편전쟁 전후 이래 100여 년 동안 중국사회에 심각한 사회문제를 야기했던 아편문제는 비단 중국만의 문제에 그치지 않고 이웃한 조선에도 영향을 미쳤다. 조선의 아편유입과 확산은 조선이 개항되면서 시작되었으며, 특히 1882년 이후 활발해진 청국과의 경제교류 속에서 청국 상인과 관련이 깊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조선의 아편유입 및 확산과 청국 상인과의 관련성을 심도 있게 다룬 연구는 거의 없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조선의 아편유입 및 확산과 청국 상인과의 관계에 대해 중점적으로 살펴보았다.
동아시아 최대 강국인 청조가 영국과의 아편전쟁에서 패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조선정부는 외세의 침략보다는 아편의 유입을 더 경계하였다. 조선정부는 연행사절을 통해 아편전쟁 전후 이래 중국의 아편문제와 아편전쟁에 관한 소식을 전해 듣고 있었다. 청조가 1,2차 아편전쟁에서 패한 사실에 대해 조선정부는 당초 위기감을 가지기도 하였으나 정보를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위기의식을 가급적 축소하여 감추고자 하면서 위기의식은 점차 완화되었다. 그러나 아편문제에 대해서는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청조와 국경을 접한 조선에 영향을 미칠 것에 대해 크게 우려하였다. 이에 따라 아편전쟁 이후는 물론 1876년 이래 조선정부는 각국과의 개항 과정에서도 아편의 유입 및 판매를 차단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러나 1882년 조선정부와 청정부 간에 조청무역장정이 체결되고, 이어서 1899년 대한제국과 청정부 간에 한청통상조약이 체결되면서 아편의 유입 및 판매가 우려되었다. 조청무역장정 체결 당시 이미 중국에서는 아편이 합법화되어 사회적으로 심각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 뿐만 아니라 당시 일반 중국인들은 아편의 해독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결여되어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조청무역장정을 통해 청국 상인들이 개항장은 물론 한성에서 거주하게 되었고 내지에서의 상업활동이 이루어졌으며, 조선의 북부 국경지대인 의주와 회령에서도 수시로 교역이 가능해졌다. 이로써 아편의 유입 및 판매 가능성이 높아지게 되었다. 더욱이 중국인과 관련된 사건에서 원피고 여부를 불문하고 단독 혹은 공동으로 영사재판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어 아편범죄가 더욱 우려되었다. 아울러 청일전쟁 이후 1899년에 대한제국과 청정부 사이에 체결된 한청통상조약이 비록 불평등성이 완화된 조약이었지만 쌍무적인 영사재판권이 그대로 존속되면서 청국 상인들의 불법을 차단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조청무역장정의 우려와는 달리 청일전쟁 이전 청국 상인들을 통한 조선으로의 아편유입 및 판매는 의외로 심각하게 드러나지 않았다. 조청무역장정 체결 이후 한성과 개항장에 들어온 청국 상인들은 청정부나 조선정부로부터 공식적인 허가를 받고 들어온 사람들로 대체로 정상적인 상업활동에 종사하던 유력 상인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청일전쟁 이전까지 조선의 언론 등에서도 청국 상인에 의한 아편유입 및 판매와 관련된 기사 역시 찾아보기 힘들다. 그렇지만 당시 조선에서의 청국의 위세 등을 감안해 볼 때 청일전쟁 이전 조선의 언론 등에서 청국 상인들의 아편 관련 기사가 없다고 해서 조선에서 청국인의 아편문제가 없었다고 볼 수는 없다. 청일전쟁 직후 여러 언론과 재판문서 등에 청국 상인들의 아편판매 폐단에 관한 내용들이 제기되는 것을 보면 더욱이 그렇다.
청일전쟁에서 청조가 ...
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
2026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KCI등재 |
2017-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등재 |
2013-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1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08-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05-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KCI등재 |
2004-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2-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
2016 | 0.81 | 0.81 | 0.72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0.65 | 0.66 | 1.616 | 0.06 |
서지정보 내보내기(Export)
닫기소장기관 정보
닫기권호소장정보
닫기오류접수
닫기오류 접수 확인
닫기음성서비스 신청
닫기음성서비스 신청 확인
닫기이용약관
닫기학술연구정보서비스 이용약관 (2017년 1월 1일 ~ 현재 적용)
학술연구정보서비스(이하 RISS)는 정보주체의 자유와 권리 보호를 위해 「개인정보 보호법」 및 관계 법령이 정한 바를 준수하여, 적법하게 개인정보를 처리하고 안전하게 관리하고 있습니다. 이에 「개인정보 보호법」 제30조에 따라 정보주체에게 개인정보 처리에 관한 절차 및 기준을 안내하고, 이와 관련한 고충을 신속하고 원활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개인정보 처리방침을 수립·공개합니다.
주요 개인정보 처리 표시(라벨링)
목 차
3년
또는 회원탈퇴시까지5년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3년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2년
이상(개인정보보호위원회 : 개인정보의 안전성 확보조치 기준)개인정보파일의 명칭 | 운영근거 / 처리목적 | 개인정보파일에 기록되는 개인정보의 항목 | 보유기간 | |
---|---|---|---|---|
학술연구정보서비스 이용자 가입정보 파일 | 한국교육학술정보원법 | 필수 | ID, 비밀번호, 성명, 생년월일, 신분(직업구분), 이메일, 소속분야, 웹진메일 수신동의 여부 | 3년 또는 탈퇴시 |
선택 | 소속기관명, 소속도서관명, 학과/부서명, 학번/직원번호, 휴대전화, 주소 |
구분 | 담당자 | 연락처 |
---|---|---|
KERIS 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정보보호본부 김태우 | - 이메일 : lsy@keris.or.kr - 전화번호 : 053-714-0439 - 팩스번호 : 053-714-0195 |
KERIS 개인정보 보호담당자 | 개인정보보호부 이상엽 | |
RISS 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대학학술본부 장금연 | - 이메일 : giltizen@keris.or.kr - 전화번호 : 053-714-0149 - 팩스번호 : 053-714-0194 |
RISS 개인정보 보호담당자 | 학술진흥부 길원진 |
자동로그아웃 안내
닫기인증오류 안내
닫기귀하께서는 휴면계정 전환 후 1년동안 회원정보 수집 및 이용에 대한
재동의를 하지 않으신 관계로 개인정보가 삭제되었습니다.
(참조 : RISS 이용약관 및 개인정보처리방침)
신규회원으로 가입하여 이용 부탁 드리며, 추가 문의는 고객센터로 연락 바랍니다.
- 기존 아이디 재사용 불가
휴면계정 안내
RISS는 [표준개인정보 보호지침]에 따라 2년을 주기로 개인정보 수집·이용에 관하여 (재)동의를 받고 있으며, (재)동의를 하지 않을 경우, 휴면계정으로 전환됩니다.
(※ 휴면계정은 원문이용 및 복사/대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습니다.)
휴면계정으로 전환된 후 1년간 회원정보 수집·이용에 대한 재동의를 하지 않을 경우, RISS에서 자동탈퇴 및 개인정보가 삭제처리 됩니다.
고객센터 1599-3122
ARS번호+1번(회원가입 및 정보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