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I등재
남명 조식의 일본인식과 그 전승 = Nammyeong Jo Shik’s Perceptions ofJapan and Their Transmission
저자
김지은 ((재) 한국국학진흥원)
발행기관
학술지명
권호사항
발행연도
2021
작성언어
Korean
주제어
등재정보
KCI등재
자료형태
학술저널
발행기관 URL
수록면
71-103(33쪽)
KCI 피인용횟수
0
제공처
Nammyeong Jo Shik(1501~1572) was one of the greatest scholars in Joseon during the 16th century and lead the ideological community of Yeongnam with Toigye Lee Hwang(1501~1570). The core essence of his study was an emphasis on practical study, which led to his interest in the realistic difficulties of common people.
Joseon often faced social confusion due to the Japanese people and raiders since the latter half of the 15th century, and its harmful effects put the people living in coastal areas in trouble. Jo Shik admitted the possibility of Japanese invasion and was vigilant against it. He maintained that the Joseon government should discard the old appeasement policy and mobilize its arranged military force to strongly oppress Japan in order to fundamentally solve the problems of its relationship with Japan.
Once Imjin War(壬辰倭亂) broke out, the literary figures under Jo Shik took the lead in calling for justice and commanders in an army were produced to raise the cause of justice. They protected the defense line along the Nakdong River, creating a huge distinguished military service in blocking Japan’s invasion into Honam. The active activities of the Nammyeong School as part of the army raised in the cause of justice were the manifestation of Jo Shik’s teachers in action in the situation of a national crisis. They were also the outcome of their inheritance of their master’s perceptions of Japan as he emphasized military oppression based on vigilance and consciousness of crisis against Japan.
Meanwhile, Bukin lost their influence after Injo Banjeong(仁祖反正), but they carried on the legacy of the academic tradition with an interest of Geunginamin in Nammyeong School. Seongho Lee Ik(1681~1763) and Sunam An Jeong-Bok(1712~1791) representing Geunginamin have left a lot of writings related to Japan according to an erudite academic tendency. They were wary of the threat of Japanese invasion, focusing on strong military power. Also, they emphasized the preparation of measures for strengthening national defense and defense criticizing the government’s policy at the time. This, I believe, is a common perception with that of Jo Shik on Japan and this verifies the interest of ideological community of Geunginamin in the academic tradition of Jo Shik and an aspect of the connectivity.
The present study made an attempt to review the connections between Jo Shik’s perceptions of Japan and those of Geunginamin, and this attempt will hopefully make a contribution to the research of broadening the extension of Nammyeong School’s ideological community.
남명 조식(南冥 曺植, 1501~1572)은 16세기를 대표하는 학자 중 한사람으로 퇴계 이황(退溪 李滉, 1501~1570)과 함께 영남의 사상계를 이끌어간 인물이다. 조식은 ‘실천적 학문’을 강조하였고, 이는 백성들의 현실적 고충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15세기 후반부터 조선은 일본인과 왜구에 의한 사회 혼란이 잦아졌으며, 그 폐해는 해안지역에 거주하던 백성에게로 돌아갔다. 조식은 일본의 침략가능성을 경계하였다. 그는 대일관계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회유정책을 지양하고, 정비된 군사력을 동원해 일본을 강력히 제압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조식의 문인들은 전국에서 가장 먼저 창의를 주도하였고, 수많은 의병장을 배출 하였다. 그들은 낙동강 방어선을 지켜내며 일본의 호남 침입을 봉쇄하는 등 큰 전공을 세웠다. 남명학파의 활발한 의병활동은 실천을 중요시한 조식의 가르침이 국난의 상황에서 행동으로 표출된 것이었다. 그리고 일본에 대한 경계와 위기의식을 바탕으로 군사적 제압을 강조하였던 조식의 일본인식이 계승된 결과였다.
인조반정 이후 북인은 영향력을 상실하였지만, 남명학파에 대한 근기남인의 관심으로 학풍의 명맥을 이어갈 수 있었다. 근기남인을 대표하는 학자인 성호 이익(星湖 李瀷, 1681~ 1763)과 순암 안정복(順菴 安鼎福, 1712~1791)은 박학적인 학문성향에 따라 일본과 관련한 많은 저술을 남겨놓았다. 그들은 일본의 외침 위협을 경계하였고 강한 군사력에 주목하였다. 또한 당시 조정의 정책을 비판하며 조선의 국방력 강화와 방어를 위한 대책마련을 강조하였다. 이는 조식의 일본인식과 공통된 것으로, 조식의 학풍에 대한 근기남인 사상계의 관심과 그 연결성의 한 단면을 확인시켜 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조식의 일본인식과 근기남인의 일본인식 사이의 연결고리를 검토한 이 시도가 남명학파 사상계의 외연을 확장시키는 연구에 기여할 수 있길 기대해본다.
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
2027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1-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KCI등재 |
2018-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15-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11-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09-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07-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04-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KCI등재 |
2003-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2-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1999-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
2016 | 0.87 | 0.87 | 0.96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0.97 | 0.98 | 2.253 | 0.44 |
서지정보 내보내기(Export)
닫기소장기관 정보
닫기권호소장정보
닫기오류접수
닫기오류 접수 확인
닫기음성서비스 신청
닫기음성서비스 신청 확인
닫기이용약관
닫기학술연구정보서비스 이용약관 (2017년 1월 1일 ~ 현재 적용)
학술연구정보서비스(이하 RISS)는 정보주체의 자유와 권리 보호를 위해 「개인정보 보호법」 및 관계 법령이 정한 바를 준수하여, 적법하게 개인정보를 처리하고 안전하게 관리하고 있습니다. 이에 「개인정보 보호법」 제30조에 따라 정보주체에게 개인정보 처리에 관한 절차 및 기준을 안내하고, 이와 관련한 고충을 신속하고 원활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개인정보 처리방침을 수립·공개합니다.
주요 개인정보 처리 표시(라벨링)
목 차
3년
또는 회원탈퇴시까지5년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3년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2년
이상(개인정보보호위원회 : 개인정보의 안전성 확보조치 기준)개인정보파일의 명칭 | 운영근거 / 처리목적 | 개인정보파일에 기록되는 개인정보의 항목 | 보유기간 | |
---|---|---|---|---|
학술연구정보서비스 이용자 가입정보 파일 | 한국교육학술정보원법 | 필수 | ID, 비밀번호, 성명, 생년월일, 신분(직업구분), 이메일, 소속분야, 웹진메일 수신동의 여부 | 3년 또는 탈퇴시 |
선택 | 소속기관명, 소속도서관명, 학과/부서명, 학번/직원번호, 휴대전화, 주소 |
구분 | 담당자 | 연락처 |
---|---|---|
KERIS 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정보보호본부 김태우 | - 이메일 : lsy@keris.or.kr - 전화번호 : 053-714-0439 - 팩스번호 : 053-714-0195 |
KERIS 개인정보 보호담당자 | 개인정보보호부 이상엽 | |
RISS 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대학학술본부 장금연 | - 이메일 : giltizen@keris.or.kr - 전화번호 : 053-714-0149 - 팩스번호 : 053-714-0194 |
RISS 개인정보 보호담당자 | 학술진흥부 길원진 |
자동로그아웃 안내
닫기인증오류 안내
닫기귀하께서는 휴면계정 전환 후 1년동안 회원정보 수집 및 이용에 대한
재동의를 하지 않으신 관계로 개인정보가 삭제되었습니다.
(참조 : RISS 이용약관 및 개인정보처리방침)
신규회원으로 가입하여 이용 부탁 드리며, 추가 문의는 고객센터로 연락 바랍니다.
- 기존 아이디 재사용 불가
휴면계정 안내
RISS는 [표준개인정보 보호지침]에 따라 2년을 주기로 개인정보 수집·이용에 관하여 (재)동의를 받고 있으며, (재)동의를 하지 않을 경우, 휴면계정으로 전환됩니다.
(※ 휴면계정은 원문이용 및 복사/대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습니다.)
휴면계정으로 전환된 후 1년간 회원정보 수집·이용에 대한 재동의를 하지 않을 경우, RISS에서 자동탈퇴 및 개인정보가 삭제처리 됩니다.
고객센터 1599-3122
ARS번호+1번(회원가입 및 정보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