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I등재
광개토왕대의 정복활동과 고구려 세력권의 구성
저자
발행기관
학술지명
권호사항
발행연도
2012
작성언어
Korean
주제어
등재정보
KCI등재
자료형태
학술저널
발행기관 URL
수록면
5-26(22쪽)
KCI 피인용횟수
10
제공처
소장기관
시호(諡號)적인 성격을 지닌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이란 왕호가 말해주듯, 광개토왕은 크게 영토를 넓힌 위대한 정복군주로 기억되어 왔다. 그런데 정작 광개토왕비에 의거할 때, 대왕이 공략한 지역은 그렇게 넓은 지역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역사서에서 전하고 있는, 광개토왕대에 후연과의 전쟁과 요동 평야를 병합한 사실이 광개토왕비에는 기술되어 있지 않다. 그 대신에 광개토왕대 초반부터 이미 요동 지역이 고구려의 영토가 되어 있었다는 의미를 담은 서술을 하였다. 광개토왕비에서는 요하 이동의 만주와 한반도의 주민과 지역은 고구려의 천하에 속하는데, 이런 고구려의 지배권에 대한 도전을 하는 나쁜 세력들을 대왕이 격파하고 복속시키었다는 식으로 대왕의 훈적을 기술하였다. 즉 대왕의 정복활동의 결과로 확립되어진 요하 이동 지역에 대한 고구려의 지배권을 대왕의 정복활동의 당위성의 전제로 상정하였다. 그리고 구체적인 정복활동에 대한 서술에서 후연에 대한 언급을 의도적으로 피하였다. 광개토왕 재위 후반에 후연(後燕)은 멸망하였고 이어 등장한 북연(北燕)은 고구려와 우호적 관계를 맺었으며, 그런 상태는 장수왕대에도 이어졌다. 고구려는 북연을 오히려 지원하였다. 그 무렵 동으로 팽창해 나오고 있던 강대한 북위에 대항하기 위한 조처였다. 그에 따라 북연을 위협 하거나 고구려인들의 요서 지역으로 팽창하고자 하는 욕망을 자극하는 내용은 광개토
왕비의 서술에서 피하였던 것이다. 광개토왕비의 내용은 대왕 재위 동안 있었던 사실과 장수왕대의 고구려 조정의 정책 의지가 반영된 것이었다.
5세기 초 이미 대국으로 성장한 고구려의 수도로서 국내성은 좁고 교통이 불편하여 천도를 하여야 할 상황이었다. 당시 고구려 조정은 서쪽으로의 팽창을 더 이상 도모치 않게 되었다. 한편 광개토왕대 이래로 고구려는 한반도로 영토적 팽창을 추구하였고, 평양은 군사적 정치적으로 그 중요성이 커지게 되었다. 그와 함께 평양이 새로운 수도의 후보지로 떠오르게 되었다. 실제 그렇게 되었다. 곧 광개토왕대의 영토적 팽창 양상은 장수왕대의 평양천도의 주요 배경이 되었다.
King Kwanggaet"o is remembered as a conquest monarch who greatly enlarged the national territory. Yet, according to the actual text of the Kwanggaet"o stele, the territory he invaded was not that extensive. Above all, the facts concerning the war of Kwanggaet"o with the Later Yan state and his annexation of the plains of Liaodong that have been passed down in history texts are not recorded on the Kwanggaet"o stele. Rather in their place is a narrative implying that from the early period of the Kwanggaet"o reign the plains of Liaodong were already part of Kogury? territory. The Kwanggaet"o stele records the monarch"s accomplishments in the following fashion: the regions and peoples ofManchuria and the Korean peninsula to the east of the Liao River belonged to the realm of Kogury?, and the monarch repulsed evil forces who challenged this realm ruled by Kogury? and subjugated them. That is, it takes for granted conquest activities by the king that had established the area east of the Liao River as Kogury? territory. Additionally in the portion of the narrative providing concrete descriptions of conquest, references to Later Yan were deliberately avoided. Later Yan fell during the latter part of the reign of Kwanggaet"o. Northern Yan, which subsequently appeared, established cordial relations with Kogury?, a state of affairs that King Changsu continued. Kogury?, indeed, supported Northern Yan. This was a policy measure at this time designed to resist the NorthernWei, which was expanding eastwards. In response, the narrative of the Kwanggaet"o stele avoided content that might threaten Northern Yan or provoke an expansion of the Kogury? people into the Liaoxi region. The content of the Kwanggaet"o stele reflects both the facts of the reign of the monarch and also the intent of the policy of the Kogury? court during the reign of Changsu.
Kungnaes?ng, as the capital of Kogury?--which already the early fifth century had grown to be a great state--was geographically constrained and inconvenient for travel, conditions that necessitated a move of the capital. At that time the Kogury? court could not under any circumstances have expanded further westward. From the time of Kwanggaet"o onwards Kogury? had sought to expand its territory into the Korean peninsula, making the military and political importance of P"y?ngyang all the greater. In accord with this situation P"y?ngyang gained prominence as a candidate site for the new capital and became so in reality. The portrayal of Kwanggaeto’s territorial expansion became a vital part of the background for the movement of the capital to P"y?ngyang.
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
2026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KCI등재 |
2017-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등재 |
2013-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1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08-07-07 | 학회명변경 | 영문명 : The Korean Ancient Historical Association -> The Society for Ancient Korean History | KCI등재 |
2008-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05-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KCI등재 |
2004-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2-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
2016 | 1.69 | 1.69 | 1.84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1.64 | 1.57 | 3.463 | 0.17 |
서지정보 내보내기(Export)
닫기소장기관 정보
닫기권호소장정보
닫기오류접수
닫기오류 접수 확인
닫기음성서비스 신청
닫기음성서비스 신청 확인
닫기이용약관
닫기학술연구정보서비스 이용약관 (2017년 1월 1일 ~ 현재 적용)
학술연구정보서비스(이하 RISS)는 정보주체의 자유와 권리 보호를 위해 「개인정보 보호법」 및 관계 법령이 정한 바를 준수하여, 적법하게 개인정보를 처리하고 안전하게 관리하고 있습니다. 이에 「개인정보 보호법」 제30조에 따라 정보주체에게 개인정보 처리에 관한 절차 및 기준을 안내하고, 이와 관련한 고충을 신속하고 원활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개인정보 처리방침을 수립·공개합니다.
주요 개인정보 처리 표시(라벨링)
목 차
3년
또는 회원탈퇴시까지5년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3년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2년
이상(개인정보보호위원회 : 개인정보의 안전성 확보조치 기준)개인정보파일의 명칭 | 운영근거 / 처리목적 | 개인정보파일에 기록되는 개인정보의 항목 | 보유기간 | |
---|---|---|---|---|
학술연구정보서비스 이용자 가입정보 파일 | 한국교육학술정보원법 | 필수 | ID, 비밀번호, 성명, 생년월일, 신분(직업구분), 이메일, 소속분야, 웹진메일 수신동의 여부 | 3년 또는 탈퇴시 |
선택 | 소속기관명, 소속도서관명, 학과/부서명, 학번/직원번호, 휴대전화, 주소 |
구분 | 담당자 | 연락처 |
---|---|---|
KERIS 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정보보호본부 김태우 | - 이메일 : lsy@keris.or.kr - 전화번호 : 053-714-0439 - 팩스번호 : 053-714-0195 |
KERIS 개인정보 보호담당자 | 개인정보보호부 이상엽 | |
RISS 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대학학술본부 장금연 | - 이메일 : giltizen@keris.or.kr - 전화번호 : 053-714-0149 - 팩스번호 : 053-714-0194 |
RISS 개인정보 보호담당자 | 학술진흥부 길원진 |
자동로그아웃 안내
닫기인증오류 안내
닫기귀하께서는 휴면계정 전환 후 1년동안 회원정보 수집 및 이용에 대한
재동의를 하지 않으신 관계로 개인정보가 삭제되었습니다.
(참조 : RISS 이용약관 및 개인정보처리방침)
신규회원으로 가입하여 이용 부탁 드리며, 추가 문의는 고객센터로 연락 바랍니다.
- 기존 아이디 재사용 불가
휴면계정 안내
RISS는 [표준개인정보 보호지침]에 따라 2년을 주기로 개인정보 수집·이용에 관하여 (재)동의를 받고 있으며, (재)동의를 하지 않을 경우, 휴면계정으로 전환됩니다.
(※ 휴면계정은 원문이용 및 복사/대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습니다.)
휴면계정으로 전환된 후 1년간 회원정보 수집·이용에 대한 재동의를 하지 않을 경우, RISS에서 자동탈퇴 및 개인정보가 삭제처리 됩니다.
고객센터 1599-3122
ARS번호+1번(회원가입 및 정보수정)